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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Mar 27. 2023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과 국민의 눈

이 소설은 동물을 의인화 하여 인간의 삶을 동물의 행태에 빗대어 언급하면서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러시아에 불어온 근대화 바람에 따라 가난과 빈곤에 허덕이던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은 성공했고 사람들은 행복을 기대했다. 그러나 통치자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다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야했다. 바로 이 책에서 동물들이 평등을 외치며 인간을 쫓아내고 농장을 점령하지만 동물 중 하나가 권력을 잡아 독재재가 되어 권력을 남용한다. 바로 볼셰비키의 사회주의 혁명이 어떻게 타락되어 가는지,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동물 사회를 통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지오웰(1903~1950)은 ‘소비에트 정권은 신화에 가까운 독재 체제를 벌이고 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매이너 농장이 부산스럽다. 인간들의 지배를 받는 동물들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소홀히 대접받는 것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들은 매이너 농장의 주인인 ‘존스’와 그 일꾼들을 몰아내고 동물들이 직접 운영하는 ‘동물농장’을 건설한다. 그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메이저 영감’이 대장이 되고, 동물농장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 그리고 ‘스퀼러’가 지도자가 되어 “동물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기본 원칙을 내걸고 자신들의 농장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이 농장의 동물들은 평등하고, 각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며, 글자를 배우기도 하고, 일요일마다 회의를 열어 다 같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풍차를 건설하는 문제로 내부 분열이 생기게 된다. 나폴레옹은 경쟁자인 스노볼을 변절자로 몰아붙여 내쫓고 ‘스퀼러’를 필두로 농장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바꾸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의 측근들은 기존의 인간 ‘존스’가 다스리던 때보다 더한 부귀영화를 누리며, 심지어는 존스의 집에 들어가 사람의 침대 위에서 자고, 사람의 옷을 입기도 한다.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방을 따로 마련해주고, 교육을 하지만 나머지 동물들에게는 일만 시킨다. 일요회의도 없애고,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내쫓거나 숙청 해버린다. 나중에는 인간들과 조약을 맺어 실제로 돈을 만지기도 하고, 그 어느 때보다 삼엄한 독재 체제를 만든다. 이후 ‘나폴레옹’은 핀치필드 농장, 폭스우드 농장의 주인들과 밀약을 하기도 하고, 배신도 하면서 인간들과 전투를 벌인다. ‘외양간 전투’, ‘풍차 전투’로 불리는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동물농장도 잃은 게 많고, 또 인간 역시 잃은 것이 많다. 작품 말미에 인간과 나폴레옹은 서로 화해하기로 하고 카드놀이를 하는데 지배를 받는 동물들은 나폴레옹과 인간을 보면서,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소설에 나오는 나이 많은 수퇘지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에 비유되고, 돼지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또 ‘스노볼’은 스탈린이 내쫓은 ‘레프 트로츠키’ 와 탄압받은 여러 혁명가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풍차 전투’는 소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핀치필드의 ‘프레드릭’은 ‘히틀러’를 가리키고 폭스우드의 ‘필킹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윈스턴 처칠 수상’을 가리킨다고 한다. 냉전의 시대, 국가 간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우화로 풍자한 것이다.


‘외양간 전투’나 ‘풍차 전투’에서 다친 것은 지배층이 아니라, 지배층의 명령에 복종한 피지배층 동물들이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풍차 훈장을 수여받고, 나머지 동물들에게는 사과 하나를 선물해준다. 새에게는 2온스의 옥수수를, 개에게는 3개의 비스킷을, 공로를 치하하는 대가라며 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계속하여 사치와 향락을 누린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을 쓰면서, 동물만도 못한 지배층의 만행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굳이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에만 비유할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든, 제국주의든 자본주의든 대중을 수단이나 도구로 삼는 정치체제는 모두 비판대상이 된다. 또한 어느 정치 체제나 국가가 아닌 어떤 조직에 대입을 해도 적용이 가능하다.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부패하고 권력을 남용한 지배자에게 소설 속의 수퇘지만큼 글을 읽을 수 있는 당나귀가 자신의 재능을 쓰지 않고 무관심한 모습의 비유를 통해 당나귀 ‘벤저민’ 같은 무관심이 지배계급이 악을 행할 수 있는 빌미를 주니 침묵하지 말고 분연히 일어나서 독재와 맞서 싸우라는 역설의 의미를 전달한다.


모두가 합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득권을 몰아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면 좋은데 처음엔 영웅이었다가 종말에는 추하게 면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신이 외쳤던 신념을 버리고 온갖 부정한 일에 휘말리며 명예를 잃어버리고는 결국 자신이 타도의 대상이 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모습에 대해 맹목적으로 따라가거나 부당한 현실에 옳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습들이 결국은 대중을 무시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1945년에 출판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작품이 출간된 시대 배경에도 적용이 되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나폴레옹’ 같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고, 권력을 얻으면 쉽게 변질할 수 있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대중들은 농사를 짓거나, 잡초를 뽑거나 ‘동물농장’에서처럼 풍차를 만드는 대신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을 받는 정치인을 고용하여 풍차로 무엇을 할지 연구하는 일을 맡기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복잡다변하고 커다란 문제들을 우리를 대신해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전달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대중이 똑똑해야 그 어떤 누구도 대중 위에 군림하려들지 않을 것을 작품은 시사하고 있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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