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욕심을 미니멀할 때

힐링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지금은 욕심을 미니멀할 때

민병식


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80이 넘으셨다. 부모님 세대는 못 먹고 못 배운 세대였다. 그 무서운 한국 전쟁을 겪었고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시작해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참고 남의 나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나가 외화를 벌며 새벽 종과 함께 시작되는새마을 운동에 열심이셨던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주역 들이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자식 잘 되라는 부모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열심히'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도록 살아왔다. 비단 부모님 뿐만 아니나 친척 어른 들, 심지어 마을 이장님으로부터도 "열심히 공부해야 훌륭한 사람 된다", 길을 가다가 행색이 초라한 사람을 보면 "열심히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 등 '열심히' 는 바위를 파서 새긴 글자처럼 나의 삶을 인도하는 강제적인 좌우명으로 머리에 새겨졌다. 그런데 이 열심히란 말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늘어나는 거다. "공부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간다", "열심히 공부해야 밥벌이하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어떤 것이든 무조건 열심히 해야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르쳐 주는 듯 했다.


결국 '열심히'라는 말은 좋은 성과물을 생산하기위한 단련의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도, 하기 싫어도 하지 않으면 남보다 뒤쳐져 인생의 실패자가 될 것같은 불안하고 찝찝한 기분을 조성하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회사 생활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살아남으려고 당연히 열심히 할 수 밖에 없고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을까.


해도 해도 안되는 그 놈의 공부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지만 부모님은 나의 적성과 능력에 상관없이 오로지 공부만을 열심히 해서 뭘하든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일방통행이었다. 당신 들의 희생을 자식 들이 잘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이기도 했을텐데 비록 크게 입신양명은 못하였으나 부모님의 '열심히' 덕분에 그나마 밥은 굶지 않고 사니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지금은 감사한 일이 되었다. 하긴 청춘 시절에 나 스스로 거울을 보며 '넌 도대체 뭘 해먹고 살거냐'라고 물어볼 때가 있었으니 지금에 와서 내게 하는 말은 '야 너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네가 스스로 밥먹고 살 줄은 몰랐다.'이다.


신은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주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과정과 그 결과에서 행복을 찾는데 그 안에는 물질도 있고 있고, 입신양명도 있고, 자유로운 삶도 있고 모든 조건이 다 들어있다. 그러나 살면서 그 누구든 물질의 예속화를 피할 수 없기에 극히 아주 적은 물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실도피 내지는 자연과의 물아일체식 삶을 추구하는 자연인도 속세와 인연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당연히 물질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에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이 있으니 남들 눈에 작게 보여도 내 마음이 만족하면 그게 행복이라는 생각이다.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있다. 무엇이 행복인지 각자가 답을 구할 것이다. 조금 모자라도 원하는 만큼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떠냐라고 하는 안분지족의 마음을 조금은 아는 나이, 되도록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한다. 퇴근 후에 커피숍에서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는 내가 행복하고, 금요일 밤, 토요일 새벽의 여유로운 시간이 주는 정적을 사랑하고, 가끔 주말에 교외로 나가 목장 분뇨 냄새에서 얻을 수 있는 향토적인 세로토닌의 분비에서 만족을 얻으려한다. 바로 양 어깨에 짊어진 짐으로부터의 자유다.


어쩌면 난 지금까지 마음은 원치않는데 그저 눈에 보이는 행복의 조건 들을 충족하기기 위해 누리고 싶은 많은 것 들을 포기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조건 들을 얻기 위한 연마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손에 쥔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허욕의 인생인 줄 알면서도 극히 인간적인 마으로, 매사에 분별없이 일어서는 욕심으로 나의 삶은 중요하고 다른 이의 삶에는 가볍지 않았는지 돌이켜본다. 잘 살아야한다는 명제를 내 기준으로 정해놓고 과도한 욕심으로 범사가 주는 행복과 기쁨을 놓치는 우를 범하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라는 현실을 내세우며 좀 더 나은 삶이라는 기대를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황망히 뛰어다니는나를 보게될 때가 있다.


이미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으면서 가진 것이 적다고 투덜거린 불평,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버둥거리는 불안, 남을 돕는다면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고 내 만족을 위한 우쭐한 마음이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묻는다. 누군가를 위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나였으면 한다. 인간적인 욕심은 한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후회라는 쓴 교훈을 되새기지 않도록 철들 나이가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의 성숙을 먹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깊어 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던 것 들이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즈음, 지금은 욕심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한 때, 욕심을 미니멀 할 때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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