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루살이
민병식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손에 상처가 생겼다. 상처가 생기면 흉터로 남는다는 것이 기정 사실임에도 요즘은 상처 전용으로 사용하는 연고가 나와서도 그런지 치유가 빨라 아물면 흉터조차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다 나았음에도 그 상처가 커서 흉터를 남기기도 하고 또 어떤 상처는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하는 커다란 상처도 있다. 문제는 어찌하든 아물기라도 하면 좋은데 그 상처의 골이 너무 깊어 끊임없이 치료가 필요한 상처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가슴에 남는 마음의 상처다. 그 상처는 겉이 아물어도 안에는 딱딱한 응어리가 만져진다. 더운 날에는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따가운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너무 깊이 새겨진 상처다. 넘어져살짝 긁히기만 해도 쓰라리고 아픈데 깊이 새겨진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이 아프고 다 나았다고 생각되어도 불쑥 불쑥 후유증이 올라온다. 시간이 흐르면 잊어 지는 기억 재생을 중지 시키는 망각이라는 프로그램이 뇌에 없었더라면 모든 상처가 그대로 가슴에 남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간은 좌절과 후회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다가 제 수명을 다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 우리의 가슴에 남는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다. 회사, 동료, 이웃, 고객, 심지어는 가족에게서 까지 받는 상처는 치유가 된 것처럼 보여도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살다가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회상을 빙자한 원망, 서운함, 후회, 미움 등의 감정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살면서 매일 매일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이별, 죽은 것들에 대한 이별,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과 만나고 전날 밤 잠자리에서 만났던 까만 밤과 이별하고 수많은 종류의 것들과 만남과 이별을 한다. 월요일에는 주말과 이별하고 주말을 만나면 친구를 만나고 좋아하는 취미를 만나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다. 이러한 만남은 다음을 기약한 이별이다. 다음이 있는 이별은 즐겁다. 또다시 만나서 그동안 이별
했던 서운함을 재회로 풀 것이기에 기대와 설렘과 기다림이 있는 이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어짐이 좀처럼 어려운 이별이 있다. 바로 내 마음의 상처와의이별이다. 이별을 해야 상처가 덧나지 않을 텐데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대상이 누구든 그 무엇이든 만남과 이별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이별한 사람의 첫 날은 이제 막 과거가 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영혼이 야윈다. 이별 앞에 오래도록 외롭고 쓸쓸한 날로 기억되어 습관처럼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씁쓸히 웃음 짓거나, 이별 후 차라리 아니 만나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 이별이 내게 오지 않도록 현재 있는 사랑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채우고 가꾸는 것이 현명현명하지 않은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랑은 그 어느 외풍에도 바람을 타지 않는다. 오늘 당장, 사랑하는 친구를, 동료를, 가족을 못 본다고 생각하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영원히 보지 못할 상대 앞에서 얼마나 많은 후회와 회한,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자책이 들까를 생각하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상대방에 대한 애틋함이 넘쳐나 숨겨 놓았던 내 안의 사랑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사랑은 이타적이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없다. 편하게 받으려고 만 하는 사랑, 자신이 아프지 않으려고 하는 사랑, 내 것만 챙기려고 하는 사랑은 사랑의 탈을 쓴 이별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온실 안에서 자란 화초 같은 꽃 보다 거센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핀 들꽃이 더욱 아름답듯 살아감에 아픔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아파도 힘들어도 딱정이가 지어 아물고 새 살이 돋을 때 까지 서로를 보듬으면 우리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할 텐데. 날마다 구름이 끼고 비 오는 가슴이어서는 사랑의 마음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있다. 가정 사, 직장 문제, 세상살이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있던가. 사람이 미움의 감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만 미움을 희석 시키고 배출하도록 내 마음 밭에 용서와 이해의 씨앗을 뿌리면 그것이 풍성한 사랑의 열매가 되어 기쁨으로 돌아올 것이다.
퇴근 시간이다, 날이 캄깜해질 무렵 도착한 집 앞, 아침에 넘어졌던 그 장소에 섰다. 재수없게넘어져 상처가 생겼다고 원망했던 곳에 예쁘게 빛을 발하는 가로등이 켜지고 어찌 어찌 살아보겠다고 끊임없이 날개 짓을 하는 하루살이가 가득하다. 아! 생에 대한 몸짓이 얼마나 치열한가. 수천 마리가 모여서 날개 짓을 하면서도 단 한 번의 부딪힘이 없다. 오늘을 시작해 오늘 마지막임에도 저처럼 뜨겁게 살아가는 삶의 의지를 보라. 한 뼘도 되지 않는 불 빛 아래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마지막 생의 아름다움을 발하는 저들에게 서로를 밀어내려는 미움의 마음을 찾아 볼 수 없다. 비록 하루를 살다 떠나는 생명이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에게서 내가 우리를 만들고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교훈을 배우는 날이다.
사진 전체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