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로빈슨 크루소' 시대
민병식
오늘도 어김없이 사무실 내 자리에서 점심을 먹는다. 가끔 외식을 하기도 하나 그건 가뭄에 콩나듯이고, 벌써 3년 가까이 거의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 초기였던 2021년, 동료의 가족이 코로나 확진을 받은 후 동료가 감염되었고 같은 사무실을 쓰는 직원들은 모두 밀착접족자로 분류되어 관할 보건소의 지시로 모두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 적이 있었다. 사무실은 업무가 완전 마비가 되었고 코로나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백신도 도입이 안되었던 때라 그 혼란함과 부침은 이루말할 수 없었고 그날 이 후 우린 마치 습관처럼 거의 각자의 자리에서 도시락으로 혼밥을 먹는다.
1인가구가 대세가 된 현대의 인간들을 '홀로족' 또는 '혼족'이라고 부른다. 물을 사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수돗물을 먹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인 세상이 되었듯 예전에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친구도 없나 라고 의아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이상한 취급을 받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혼밥'은 현대인을 상징하는 특징으로 진화를 이루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혼밥을 먹으려면 결심을 단단히 해야 했다. 일단, 식당에서 반기지 않는다. 여러 명이 들어와야 매상이 오르는데 커다란 테이블을 혼자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눈치가 보이고 괜히 주위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친구도없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이 외롭게 앉아 꾸역꾸역 밥을 넘기는 모습으로 비춰져 보는 사람이 불쌍하게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식당을 가도 혼밥족을 위한 자리가 있다. 칸막이가 설치된 다닥다닥 벌집처럼 생긴 1인용 좌석과 남들 눈에 뜨이지 않는 혼자만의 식탁에서 TV를 보거나 친구나 동료 대신 sns나 유튜브와 대화하면서 밥을 먹는다.
거기에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청년 세대의 결혼기피현상은 가족 구성을 더 이상 반기지 않는다. 이제 가까운 시일 내에 리모컨만 누르면 사람 못지 않은 따뜻한 체온이 전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장착 하느냐 따라 원하는 외모에 성격까지 마음대로 세팅 할 수 있는 로봇 연인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올 듯하다. 인공지능 로봇은 사람 피부와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질 것이기에 거부감이나 이질감도 딱히 없을 것이고 외출 시는 승용차 뒷자리에다 태우고 밥을 먹을 때는 식탁 앞자리에 앉히고 뭐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조정할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하다. 내가 뭘 하든 간섭하지 않을 뿐더러 잔소리는 커녕 흔한 사랑 싸움조차 없이 나만을 바라만 볼 뿐이다.
얼굴을 내밀어야 사람 구실한다고 생각하던 많은 일들이 비대면의 ‘언 택트’로 이루어진다. 가뜩이나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 ‘혼자’가 편하다고 외치는 시대에 코로나는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이 보내는 경고 아니었을까. 외롭게 망망대해를 떠도는 한 척의 고깃배가 동력이 떨어지고 파도를 견디지 못하면 난파하듯 혼밥과 혼술 속에 살다가 노쇠하여 자력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할 때가 오면 자동적으로 요양원에서 머물다 때가 되면 쓸쓸히 영원한 혼잠의 세상으로 떠날지도 모르는 현대인의 삶이 스산하게 느껴진다.
몇년 전부터 부모님이 계속 아프시다. 두 분 다 이미 80을 넘으신지 오래, 고령에 수술도 몇 차례씩 하셨고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노환으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고 퇴원하시더니 어머니가 뒤를 이어 입원, 결국 한 분이 병원에 가실 때는 다른 한 분은 혼자 생활을 하셨다. 로빈슨 크루소는 외딴 섬에서 나이라도 젊어 버티었지, 혼자 계시는 부모님은 사람이 절박하다. 아니 사랑이 절박할 것이다. 두 분 다 혼자 계셔야 했던 밤을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켜놓고 주무셨다고 하니 혼자라는 것이 자유로움이나 홀가분함이 아닌 엄청난 공포가 되었을 듯하다. 함께 계신 지금,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안부부터 챙긴다고 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온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깨닫는다. 수 천 수 만개가 넘는 인연 중 하나의 끈이 이어져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이루고 가족이 되고 이웃이 되어 공동체 안에서 때론 기뻐하고 슬퍼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느껴왔던 사람 사는 세상은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의 길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빈 손으로 태어나 빈 손으로 간다. 좋은 집에 살고 높은 지위를 갖고 모든 것을 누려도 결국에는 가져갈 것이 없이 버릴 것만 남는다. 무덤 속에 들어갈 때에 어차피 혼자가 되는데 사람과 사람사이를 애써 외면하는 군중 속에 있으면서 외로운 섬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낮에는 혼밥, 저녁에는 혼술, 밤에는 혼잠, 이제 여럿이 무엇인가를 하려면 두렵고 어색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작 누군가가 필요할 때 곁에 아무도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착잡하기만 하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지에 대해 생각한다. 고시원 옆방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르는 세상, 온갖 바이러스와 기후 이변으로 흔들리는 시대,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무엇이 필요한 가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면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라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혼밥과 혼술, 혼잠의 상황보다 혼자가 되어가는 마음이 어렵고 힘든 요즘, 나부터 '함께'라는 마음을 다시 배워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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