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빨간 등대
민병식
어느 날 문득 바닷가에 가고 싶은 날엔 오이도를 간다. 집에서도 가깝고 전철과 버스를 이용하는 대중교통도 이용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오이도는 섬의 모습이 까마귀 귀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까마귀 귀를 실제로 본적은 없다.
아뭏든 오이도는 약 1.5km정도의 둑방길을 산책길로 조성해 놓아서 서해의 갯벌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특히 일몰이 아름다워서 노을이 바다에 은은히 잠기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 갯벌이 드러난 경치를 바라 볼 수 있는 의자도 구비되어 있어서 비릿한 바다내음을 마음껏 원없이 맡을 수 있다. 의자에 혼자 앉아 포구 쪽을 바라보노라면 어선 한 척이 외로이 쉬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삶의 고행길을 저들도 쉬임없이 떠돌다가 이제서야 잠시 쉬임을 갖는 것이리라 어차피 삶은 외로움의 연속인 것을 인정하면 갯벌 위에 털버덕 주저앉은 배의 모습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나 큰 차이는 없다.
오이도 빨간 등대 전망대에 오른다. 탁트인 바다 위를 갈매기들이 날아 다닌다. 파란 하늘을 유유히 날으는 갈매기처럼 나도 어디론지 날아가고 싶은 걸까.. 갯벌에 깊이 파인 갯골처럼 나의 이마에도 주름이 깊이 패인 자국을 보이기 싫어 바다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바다를 보고싶어 빨간 등대를 찿았고 빨간 등대를 보고 싶어 바다를 찾았다. 그렇게 오랫시간 떨어져 있었어도 바다도 등대도 나를 잊지 않았다. 밑을 내려다보니 오이도 산책길이 육지와 바다를 경계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답답함을 훌훌 던진다. 식도에 걸려 소화되지 않는 삶의 찌꺼기들, 다 걸러내지 못한 일상의 분순물을 조금이라도 게워내고 그 자리에 바다의 짠 내음과 하늘의 파랑으로 채우려 한다.
제방 둑을 걸으며 시시각각 다른 색깔로 변하는 시간을 감상한다. 그나마 시름을 덜어주는 듯 하다. 노을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즈음 바다 건너 송도가 보이고 불빛이 하나 하나씩 잠을 깬다. 끝없이 뻗은 산책길 따라 걷는다.깜깜한 바다를 밝혀주는 건너 편 아파트 불 빛 사이로 박자를 맞추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추억도 따라오고 등대 불 빛에 다다르면옛 사랑의 기억이 새겨져
있겠다사랑은 가고 향기는 남아비릿한 바다 내음과 함께 코끝을 지나고 젊음이들의 불꽃놀이는 그들만의 추억은 만들기위해 타오르는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그 사이 바다는 갯벌만을 남기고 떠났다. 뻘로 가득한 바다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밀물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연인을 기다리듯이.. 오이도의 커피숍 확 트인 넓은 창 너머로 갯벌과 갯고랑의 번쩍거림으로 가득하다. 커피한잔을 마시는 사이 밀물이 용트림하듯 아주 천천히 쿰틀거리며 아주 조금씩 가까이 오고 있다. 마치 연인 한 쌍의 천천히 진행되던 대화가 갑자기 은밀한 입맞춤으로 바뀌는 광경처럼 순간적이고 경이롭다. 바로 바다가 갯벌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갯골 들을들을 잠식하면 그 틈을 이용해 갯골은 주름진 이마를 펴며 휴식을 취할 것이다.
커피숍 앞 전선에 자리잡은 갈매기 들은 강태공이다. 밀물이 몰려오자 갯벌을 유영하며 생존을 위한 날재짓을 멈추고 한 마리 두 마리 돌아오기 시작한다. 다음 썰물 때까지 그들은 날개를 정비하고 부리를 다듬을 것이다. 삶의 전선은 젓깃줄하나에 몸을 맡긴 갈매기처럼 위태롭다. 그들 에게는 바다가 전부이듯이 전깃줄 한 가닥이 제일 편안한 안식처이듯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밀물과 썰물의 반복 사이에서 바다를 만나고 갯벌을 만나고 한 가닥 전깃줄에 의지하여 또 날개짓을 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삶의 광경들이 가슴에 새겨진다. 바다가 감고 있는 오이도, 잔잔한 물결의 파고가 오늘도 고운 음악을 흐르게 만든다.
오이도 밤 하늘아래 세상을 비추는 불 빛앞에 발걸음을 멈춘다.밤의 고요함과 쓸쓸함이 전해져 온다. 하늘과 바다가 구분 되지 않는 밤, 사람 들이 다가올 언젠가의 미래에 이곳에서의 사랑하는 연인을 추억한다면 나 또한 이 밤을 기억할 것이다. 표현할 수없는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삶의 부스러기 들을 털어 놓으려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마웠던 날이라고 전하며 그렇게 등대와 작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