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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예찬(禮讚)

힐링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호수 예찬(禮讚)

민병식


밤새 하늘을 밝히며 공원을 비추던 달이 호수 아래로 잠겨 스스르 잠이 들 무렵 일상은 잠에서 깨어난다. 빨갛게 달아오른 영산홍이 호숫가를 붉게 물들이고, 새들과 나무 그리고 바람이 인사를 나누는 시간, 호수는 잔잔하게 아침을 맞고 한강의 수원지로부터 흘러온 강물로 온 몸을 정갈하게 씻어 내린다.


일산의 호수는 도심에 있으면서도 자연과의 호흡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도시 보물 중 하나이다. 몇년 전 일산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처음 가본 곳, 우뚝 솟은 빌딩 만큼이나 커다란 소나무가 그늘이 되고, 튜울립이며 형형색색의 장미, 붓꽃 등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꽃을 다 모아놓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세상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화원이다. 다른 공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산 호수 공원의 전통 정원의 수련을 만나면 어느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의 단아한 규수의 모습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게 되고, 그 곁에서 함께 소곤 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작약도 만날 수 있다. 그 뒤로는 강원도 인제나 가야 볼 수 있는 자작나무가 병품처럼 둘려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늘 그렇듯이 회사에서 일단 업무를 시작하고나면 그럴듯한 휴식 시간이라고는 점심시간뿐인데 사실 밥을먹고 커피 한 잔 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업무와 업무의 연결고리는 계속 부산물을 만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말잇기처럼 이어지는 때가 많아 결국 지치게 마련이다. 삶은 늘 그런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때가되면 퇴근하고, 저녁먹고 잠을 자는 시계추 처럼 동일한 무한반복을 하고 있는나의 일상 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굴레에 더 매여있는듯 하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로보트처럼 지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정도로 현실은 나를 기계처럼 만들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요구한다.

먹고 살기 위해 참고 견디며 열심히 움직여야 하고, 과도한 업무와 잦은 스트레스의 공격으로 사는 재미가 점점 없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마음의 병이 생긴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하는 극도의 긴장감, 그 마음을 위로받을 곳이 없는데서 오는 외로움, 현실에 안주하고픈 권태감 등이 짓누를때면 현재 모 프로그램에서 방영하는 자연의 삶이나,귀농과 귀촌 프로그램을 부러워하 되는데, 이는 쉼을 원하는 현대인을 대리만족 시켜주어 인기있는 트렌드가 된 것이 아닌가 유추해본다.


어디 나만의 문제일까? 최근 경제가 침체 되면서 불황으로 인한 구조조정에 많은 직장인 들이 떨고 있고, 젊은이들에게는 높은 취업 장벽과 평균수명의 연장에 따른 노인문제, 출산율의 저하 등 수많은 어려움 들을 어떻게 이겨낼지 사람 들은 불안하고 막막 하기만하다. 오죽하면 한번 탈진하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고 하여 번 아웃 증후군이나 피로사회라는 신조어가 생겨나니 말이다.


그럴때 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든지 퇴근 후에든지 호수공원을 찾았다. 마치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영산홍 가득한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제비꽃과 산딸나무꽃부터 이름 모를 들꽃까지 하나 하나 정감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호수공원 곳곳을 걸었다. 공원에는 시원한 바람과 흙 내음과 꽃의 향기가 가득하다. 저녁이 올 무렵 노을이 비치는 호수를 바라보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편안해짐을 느끼는데 특히 우울한 날의 공원은 마음의 쉼터가 된다. 공원의 호수는 언제 찾아 가도 반겨주는 정겨움이 있다. 그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는 그대로 나를 맡기고 나와 호수는 말없이 하나가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 하는 호수와 꽃과 나무들을 눈으로 한껏 안고 때묻지 않은 순수함의 전형을 즐기며 공원의 자작나무 길을 걷는다. 사르락 사락 나뭇잎 들이 합창하는 곳에서 숨겨놓았던 나의 가면을 벗고 걷노라면 서서히 공원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호수를 배경으로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기시작, 밤의 적막함 속에 눈을 감고 하루의 피로를 내려 놓는다.


늘 빡빡한 일상에 얽매여 시계의 초침같이 살아가는 나와는 반대인 늘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꽃,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초록의 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호수의 파동을 따라 보이지 않는 끝을 바라본다. 호수 건너편에는 자전거를 타는 연인 들의 웃음 소리가 사랑을 가득 싣고 달리고 있다. 천천히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는 곳,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느린 시간이 흐르는 곳, 산책을 하면서 지친 마음이 생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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