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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힐링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민병식


문을 열고 들어서자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는지요"


활짝 웃는 미소와 사무적인 말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 여성의 목소리가 잔잔한 클래식 음악위로 리듬을 타고 흐른다. 간단히 증상을 설명하고 소파에 앉았다. 진료실 안 쪽에서 흐르는 '드르륵 치익 치익' 기계음 소리가 꽤나 신경에 거슬린다. 다음에 온다고 하고 일어나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추스렸던가. 여러 날의 고민과 수 일의 기다림 후에 스스로 찾았다는 생각에 그냥 주저 앉고 만다.


왼쪽 아래 어금니 두 개에 문제가 생겼다. 원래 썪은 이를 치료받고 그 비싼 금으로 씌웠는데 이것도 유통기한이 다 된 모양이다. 그러나 막상 치과를 찾으려니 더럭 겁이 났었다. 아마 신경치료를 한 덕분에 시간은 지났어도 머리가 그 고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취 주사의 기분 나쁜 느낌과 목구멍으로 침과 섞여 넘어갈 때의 주사약의 쓰디쓴 맛, 바늘로 생살을 찔러대는 이상야릇한 통증은 지나가다가 이빨 모양이 그려진 치과 간판만 봐도 피하고 싶어질 정도다.


사진을 찍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하다. 의사 선생님이 임플란트를 해야한다는데 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을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선다.


상담을 하는 분과 사람의 턱과 이빨을 여실히 드러낸 해골 모형이 떡하니 올려져 있는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당일에 시술이 끝나고요. 하나도 안 아파요. 다행이 우리 원장님이 임플란트 전문이거든요. 아무 걱정마시고요. 임플란트는 세가지 형이 있는데 가격이 각기 다르니 평생 써야할 거니까 그리 비싸지도 않고 고객 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것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재질부터 비용 계산까지 순식 간에 해낸다.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니라며 할인까지 해준다는 말로 끝을 맺는데 사실 비싸다고 생각은 되지만 그자리에서 감히 비싸다고 말할 수는 없는, 알았다고 저절로 대답을 하게 되는 묘한 설득력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먼저 발치를 하고 붓기가 가라 앉은 후 인공뼈를 이식함과 동시에 뿌리에 해당하는 나사를 박아넣는 시술을 해야한다고 한다. 자리에 누워 눈을 꼭 감는다.


"자, 마치 들어갑니다. 조금 따끔할 수 있어요."


이 말이 더 무섭다. 따끔하다는 뜻은 경험상 아플거니까 마음의 각오를 하라는 일종의 엄포이기 때문이다. 신경이 온통 주사기에 쏠린다. 이럴 땐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서걱 서걱 틱틱' 생니를 뽑는 거칠면서도 미묘한 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옆에 서 있는 간호사는 흡입기로 연속 침을 빨아들이고 거의 끝나간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시간은 멈춰있는 듯 흐르지 않는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유아치가 나면 일정기간이 지나고 빼야 영구치가 난다. 이가 흔들 거리면 어머니는. 흔들리는 이를 실로 단단히 묶고 실의 반대쪽 끝을 문고리에 묶은 후 문을 열었다가 쾅 닫는 방식으로 이를 빼내곤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아프지도 않고 말끔히 이가 뽑혀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나도 모르게 새 이가 돋아나있는 것이다. 난 그 이유를 어머니가 시킨대로 주문을 외우며 뽑은 이를 지붕 위로 던졌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이제 까치는 더 이상 내게 새 이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까치가 잘 오지도 않을 뿐더러 헌 이를 던질 지붕도 없고 아마 요즘 도시의 까치는 새 이를 가져다 주는 일을 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고향의 까치가 가져다준 어금니 두 개는 마취를 하지 않았어도 아프지도 않고 쉽게 뽑혔는데 지금은 턱이 얼얼하면서 감각이 없고 약도 먹어야하고 저절로가 아닌 강제로 나사를 돌려 박아야하고 공짜도 아니다.


"끝났습니다. 이제 6개월에 한 번씩 오셔서 망가진 곳이 없는지, 기능에 이상은 없는지 점검만 받으시면 됩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어금니를 발치한 곳에 임플란트를 식재하듯 비운 곳을 때우고 채워가는 일인 듯하다. 헌 이빨을 내어주고 새 이빨로 채우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젊은 날의 청춘과 땀흘려 일했던 씩씩함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경험과 원숙함을 덧 씌우는 것, 나의 중년도 중간역에서 손님이 내리면 그 빈자리에 다른 사람이 올라타 앉는 열차처럼 지나온 세월을 내리고 맞이할 시간을 태우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종착역을 향해 끊임없이 섰다, 달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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