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난로같은 세상
민병식
출근 길 쌀쌀한 기온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지는 걸 보니 금방 겨울이 올 듯하다. 추위라면 강원도 산골의 유명한 칼바람과 매서움을 모르는 이 들이 없을 것이나 휴전선과 가까웠던 경기 북부의 나의 고향도 추위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었다. 그때는 핸드크림이나 로션이 귀한 때여서 날씨가 추워지면 되면 대부분의 아이 들이 꼬질꼬질 손등에 때가 끼고 터서 씻을 때가 되면 튼 부분이 따갑고 아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나와 동무들은 한 겨울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과 들로 하루 종일 쏘다니곤 했다. 요즘 누구나가 입고 다니는 거위 털은커녕 솜으로 만든 패딩 점퍼도 없던 때 내복에 옷을 몇 개 씩 껴입고 털실로 짠 스웨터가 제일 좋은 옷 일정도로 변변한 옷 하나 없던 시절이었어도 마음은 따뜻한 시절이었다.
추운 날이면 가끔씩 손꼽아 기다리던 음식 잔치가 열리는 날이 있었는데 바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음식 찌꺼기와 버린 것들을 모아서 한데 넣고 끓인 꿀꿀이죽 파티였다. 꿀꿀이죽에는 모든 재료가 다 들어간다. 옥수수, 땅콩버터, 치즈, 심지어 토마토케첩에 각종 야채, 초콜릿. 과자 까지 미군들이 먹다 버린 모든 음식을 가마솥에 넣고 사골 끓이듯이 푹 고아 만든 것이다. 그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가장 한국적이지 않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 가장 한국적인 음식을 만든다. 최근 한류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한식의 위대함은 내 고향마을에도 있었다. 그 시절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겨울철 별미가 있었는데 바로 이 꿀꿀이죽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대찌개’라는 먹 거리로 변한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 소시지, 다진 고기, 통조림 콩, 치즈 따위에 고추장, 김치, 떡을 넣고 물을 부어서 끓인 게 부대찌개의 시초인 것이다. 부대찌개는 주로 미군 부대 근처 마을에서 많이 팔기 시작하다가 조리법이 자연스럽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찾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금의 부대찌개에는 햄에 소시지에 라면 등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지만 그 당시 꿀꿀이죽에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갔다. 추운 겨울에 펄펄 끓은 꿀꿀이죽을 한 사발 받아먹으면 콧물을 질질 나면서도 겨울 추위도 두렵지 않았고, 음식물을 가지러 들어가는 동네 아저씨를 따라 구경삼아 미군부대에 들어가면 운이 좋은 날엔 크래커와 초콜릿, 통조림도 공짜로 얻어올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왜 미군들은 뜯지도 않는 과자나 초콜릿을 그냥 줄까 의아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만큼 보급품과 물자가 풍부한 나라였다.
지금은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 다른 어려운 나라를 도와줄 정도로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고 추웠던 그 옛날 보다 난방이 잘 되는 따뜻하고 편안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 예전보다 지금이 더 추운 듯 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 마음이 춥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코로나 19의 펜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위기의 상황,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제 불황, 실업, 청년문제, 출산율 저하 등 위기에 봉착해 있다.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하는 실정이지만 돌이켜보면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는 이미 춥지 않았던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 타인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는 배타, 생존 경쟁의 전쟁터에서 점점 강퍅해지고 옹졸해지지 않았는지 돌아본다.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이다. 내가 어려울수록 주변에 나보다 더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이다. 비록 내가 원하는 만큼 풍족하지 않더라도 가지고 있는 것 중 조그만 불씨 한 점을 추운이 들에게 나눠준다면 그 불씨가 활활 타올라 어려운 시절, 미군부대에서 구한 음식 찌꺼기마저도 온 마을 사람들이 살갑게 나누고 기뻐했던 그 옛날의 따뜻함처럼 세상을 밝히고 온기를 나누는 난로 같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차가운 바람이 외투를 파고드는 날씨,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사람냄새 나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해지는 아침이다.
사진 네이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