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신호등은 언제 파란불로 바뀌는 거야
힐링 에세이
[에세이] 이 놈의 신호등은 언제 파란불로 바뀌는 거야
민병식
어려서부터 난 덤벙대는 성격 때문에 물건을 놓아두고 다니는 일이 잦았다. 예를 들면 전날 저녁에 책가방을 교과서 한 권 씩은 꼭 빼놓고 책가방을 챙긴다든지 체육복을 안 가져간다든지, 만들기 숙제 한 것을 빼놓고 가서 기껏 열심히 준비해놓고 선생님께 혼이 난다든지 하는 등 손해를 보곤 했다.
덤벙거리는 성격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일상생활에 문제가 자주 생기는데 아무래도 건망증까지 겹친 것 같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일은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나갔다가 비가 그치면 우산을 놓고 온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그러면 우산이 남아있겠으나 우산을 들고 버스를 탔다가 바닥에 내려놓고 그냥 내린다거나 커피 숍 우산통에 넣어두고는 무의식적으로 그냥 돌아온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우산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날씨만 웬만한 비는 그냥 맞고 다니는 편이다. 우산을 계속 사고 잃어버리고에 이어, 최근에 자주 겪는 것은 물건을 어디다 놓았는지 잘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안경을 벗어 놓아두고 어디에 놓았는지 한참을 찾다가 겨우 찾으면 이번에는 휴대폰이 안보이고 휴대폰을 찾고 나면 지갑이 안보이고 뭐 이런식이다.
커피 숍을 가려고 하는데 지갑이 없다. 어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한참을 찾으니 소파 위에 덜렁 놓여 있다. 그때서야 기억이 난다. 바지를 세탁하기 위해 주머니에 있던 것을 다 꺼내어 놓았던 것이다. 커피 숍에가면 휴대폰 충전기를 콘센트에 그냥 꽃아 두고 오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늘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다시 사고 악순환이다. 충전기도 그렇고 우산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아 맞다 하고 놔두었던 기억은 나니 치매는 아닐것이다. 건망증이 치매의 중요 증상 중 하나지만, 단순한 건망증과 치매에는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건망증은 나중에라도 기억을 되살려주면, ‘아차 그랬었지.’ 깨닫는 반면, 치매인 경우는 그런 사실을 기억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애써 잊으려하지 않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는 소멸된다. 머릿 속을 청소해주는 이 망각의 작용이 없으면 나쁜기억이 계속 생각나 스트레스로 폭발하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것에 대한 망각은 이로운 점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문제는 쓸데없는 망각이 날 괴롭힌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매일 물건을 찾는 것은 곤욕이다. 그래도 중요한 약속 같은 것은 잊지않으니 아직까지는 쓸만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집중력이 발휘할 수 있도록 찾기 쉬운 장소를 택해 주요 물건 지정석을 만든다. 소파 옆에 사방이 탁트인 4단함을 가져다 놓았다. 안 쓸때는 필수품을 무조건 거기에 놓아둔다. 설마 일부러 사방이 트인 사물함을 골랐는데 못찾지는 않겠지. 대비책을 강구해 놓고 뿌듯한 마음이다. 이제 우산하고 휴대폰 충전기만 어디에 빠뜨리고 오지 않도록 신경쓰면 되는거다.
준비를 마쳐놓고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커피숍을 간다. 따뜻함과 고소한 커피 향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 음악의 선율도 휴일의 평온함을 더하고 쉼의 시간을 갖는다.
집에 가까워져간다. 오늘은 평온하게 보람있는 하루였다고 뿌듯하게 생각하는 순간,
'앗! 이런!, 커피 숍에서 휴대폰 충전기를 꼽은 채 그냥 왔네'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삭이면서 아무리 바빠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야한다고 되뇌며 빨리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차분함을 배우는 날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아주 천천히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뿐 급한 마음에 길을 건너기 전 투덜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도대체 이놈의 신호등은 언제 파란 불로 바뀌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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