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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an 20. 2023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에서 읽는 연민과 사랑

뛰어난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로 널리 알려진 독일 문학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자원입대하여 전쟁문서 보관소에서 근무했으며 이 시기에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영향으로 반전주의적(反戰主義的) 신념을 굳히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에세이 ‘세 사람의 거장’을 비롯하여 ‘로맹 롤랑’ 등 유명 작가들에 대한 평전을 출간했고,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 등을 집필하며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


2차 세계대전의 분위기가 무르익던 오스트리아, 나는 우연한 두 차례의 만남으로 알게 된 전쟁 영웅, '호프밀러' 대위에게 25년 전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지방 소도시에 주둔하고 있던 25세의 호프밀러 소위는 그 지역의 최고 부호이자 귀족인 ‘케케스발바’의 만찬에 초대된다. 즐거운 분위기의 무도회에서 호프밀러 소위는 ‘케케스발바’의 딸 ‘에디트’에게 춤을 신청하는데 에디트는 울면서 발작을 일으킨다. 알고 보니 에디트는 수년 전부터 걷지 못하는 하반신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호프밀러 대위는 밤새 미안함으로 초조해 하다가 그 다음날 사과의 표시로 꽃다발을 보내고 마음이 풀린 에디트의 초대를 받는다. 호프밀러 소위는 그녀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겨 친절하게 다가가고 ‘에디트’ 또, 에디트를 돌보는 사촌 일로나, 케케스발바와 모두와 친해진다. 딸의 치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온 ‘케케스발바’는 딸의 주치의인 ‘콘도어’ 박사의 방문을 앞두고 ‘호프밀러’에게 딸의 완치 여부를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콘도어 박사의 진료가 끝나고 함께 돌아가는 길에 콘도어 박사로부터 케케스발바의 과거이야기를 듣는다.


케케스발바는 원래 가난한 유대인 출신으로 원래 성의 주인이었던 후작 부인이 친척 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자신의 하녀에게 모든 재산을 주었고, 케케스발바는 순진한 하녀에게 사기를 쳐서 헐값으로 성을 사고 그 죄책감과 연민으로 그녀와 결혼했다는 미천한 과거를 들려주며, ‘에디트’의 완치 여부는 장담할 수 없고, 최근 비슷한 환자를 치료한 의사에게 자문을 구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와 헤어진 호프밀러 소위는 케케스발바를 보자 연민에 휩싸여 새로운 치료법으로 그녀를 치료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음 날 케케스발바와 에디트는 완치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당장 스위스로 치료받으러 갈 계획을 세우고, 에디트는 그동안 숨겨왔던 ‘호프밀러’에 대한 감정을 갑작스런 키스로 고백한다. 그녀를 여자로 생각해본 적 없는 호프밀러 소위는 당황하여 그 자리에서 뛰쳐나오고 그녀의 마음과 치료 결과가 부담스러운 그는 제대 후 이곳을 떠날 결심을 하고 콘도어를 찾아간다. 예전에 자신의 환자였지만 눈이 멀게 된 여자와 결혼한 콘도어와 그의 부인을 만난 호프밀러 소위는 ‘에디트’가 스위스로 떠날 기간인 일주일 동안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에디트’를 안심시키기로 설득당한다. 케케스발바가 초췌한 몰골로 찾아와 딸이 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한다며 딸의 마음을 받아 달라고 애원하고, 무릎까지 꿇는 모습에 또 연민에 휩싸여 완치된다면 이라는 조건을 건다. 다음날 그들을 찾아간 호프 밀러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과 자신을 우러러 보는 분위기에 취해 에디트에게 약혼 반지를 받고 헌신을 맹세한다. 그렇게 헤어지려는 순간, 완치를 향한 마음이 급한 ‘에디트’가 일어서서 그를 배웅하려다 몇 발자국 걷다가 주저 앉아 버리고 불구인 그녀의 모습에 공포와 혐오감, 남들의 조롱을 떠올린 호프밀러 소위는 또 그 집을 뛰쳐 나온다. 여기 저기 다니다가 동료들을 만나고 그 사이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약혼 사실 여부를 묻자 극구 부인한다. 정신이 든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자살까지 생각하고 연대장에에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연대장은 일을 무마 시키겠다며 다음날 새벽 그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호프밀러 는 떠나는 길에 콘도어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을 용서해준다면 에디트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내용을 남기고 에디트에게 전보를 치지만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으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그의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에디트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후 그는  현실을 잊고자 하는 마음으로 참전 끝에 전쟁 영웅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책의 서두에서 츠바이크 자신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호프밀러와 에디트, 케케스팔바와 콘도어라는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며 '연민' 이라는 감정에 대해 알게 되는데 호프밀러의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으로 모든 일이 시작되었고, 중간쯤 에서 그만둘 수 있었던 시점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이미 연민의 늪으로 빠져든 그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에디트의 불구를 알아차리지 못한 무례함을 용서 받기 위해 꽃을 선물하고 직접 찾아 가 말 동무가 되어주며 그녀를 즐겁게 해주는 자신의 행동에서 그는 자기 만족을 강화 시켜 나간다.


' 나 호프밀러 소위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고? 누구를 위할 수 있다고? 내가 하루나 이틀 저녁을 장애를 가진 아가씨와 함께 수다를 떨면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고 볼에 생기가 돌고 내 존재로 인해 암울했던 집 안이 환하게 밝혀진다고?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어두운 골목을 빠른 속도로 걸었다.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외투를 열어 젖히고 싶을 만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호프밀러의 행동은 에디트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만 끝났어야 했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발생하는 뿌듯함이 순식간에 나르시즘으로 번져간다. 에디트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게 그토록 친절했던 호프밀러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후회를 시작하면서도 쉽게 끊어 내지 못하다가 타인의 칭찬이나 자존감 상승과 같은 보상을 넘어 원하지도 않는 사람을 책임져야 할 막대한 임무의 지경에 이르렀다. 극도의 자기 희생 이 필요 한 이와 같은 일을 호프밀러는 감당하지 못한다. 호프밀러는 '진정한 연민' 을 대변하는 존재인 콘도어가 되지 못하기에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콘도어가 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닐지라도 '에디트'를 감수할 수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호프밀러에게 진정한 연민을 행하는 자가 되지 못했느냐고 절대 비판할 수 없으며 에디트에게 왜 호프밀러를 사랑했냐고 나무랄 수 없다. 설 익은 감정, 감당하지 못할 연민을 남발하는 호프밀러와 호프밀러의 사랑을 갈구하는 에디트도 이기심을 보면서 연민과 사랑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감정이며 정확히 구분 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 진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아야한다.


나 또한 호프 밀러의 상황이 되어 보면  그리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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