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한 인물열전
[에세이] 미스터 멍 야반도주하다
한결
대학 졸업반일 때 나와 고시원에서 공부를 함께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시원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말이 없어도 너무 없어 있는듯 없는듯 하던 사람이었다. 그땐 고시원에서 자면서 생활을 했는데 그는 가끔씩 며칠마다 어딜가는지 들어오지 않곤 했다. 4학년 여름방학 때였던 듯하다. 어느날 밤 술을 진탕 먹고 와서는 잠이 들었는데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 것이었다. "씨x, 조가튼 세상, 에이 씨x 세상이 왜 이래" 등 욕이 절반인 누구를향해 욕하는 것인지도 모를 쌍욕과 신세한탄을 더한 잠꼬대를 하다가 잠이드는 것이었다. 아주 가끔 새벽시간에 그나 외출했다가 온 날은 취침 시간 대에 그의 푸념섞인 잠꼬대를 들어야
했으나 사람들은 으레 그러니 하면서 뭐라그러는 사람이 없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는 하루에 한 두번 사발면으로 식사를 하는 것인데 그를 정식으로 알게 된 것은 고시원 옥상에서 였다. 우리 집은 고시원에서 가까웠기에 난 공부를 하다가 집에가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 왔는데 그날 따라 집에 가기가 귀찮아서 고시원 동료와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식사장소가 따로 없었더래서 옥상 휴게실에서 사발면이나 커피를 먹곤 했는데 다먹고 휴지통 옆에 1회용 빈그릇과 남은 단무지를 비닐로 곱게 싸두었다. 그때 그 사람이 사발면을 들고 올라오더니 갑자기 우리가 버린 비닐봉지를 뒤지는 것이다. 비닐봉지 않에서 먹다남은 단무지와 양파가 담긴 것을 꺼내 그 것을 반찬삼아 사발면과 함께 먹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사람 보는 눈도 있는데 그는 전혀 스스럼없이 우리를 신경도 안쓰고 한 쪽 구석에가서 맛나게 먹고 사라졌다. 난 같이 식사를 했던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저 사람 대단하다. 남이 먹던 걸 꺼내서 먹다니. 그렇게 먹을게 없나."
"그러게, 남들 의식도 않고, 저런 사람 처음보네."
그날 저녁, 옥상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그가 또 올라온다. 내가 먼저 가서 인사를 하고 서로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그는 시골에서 대학 합격 후 서울로 유학와서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을 못해 현재 취업 재수 중이며 집에서 학교 졸업후 생활비를 보내줄 형편이 못되어 일당제로 노동일을 가끔하여 고시원비도 내고 밥도 사먹는다고 하였다. 돈이 있을 때는 밥도 사먹고 담배도 사 피지만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해서 노동일만 할 수는 없으니 여기 저기 이력서도 내보는데 쉽지 않다고했다.
그 후 내가 점심을 먹으러갈 때 가끔 그를 우리집으로 데려가 밥도 먹여주고 담배도 사주면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가 며칠간 사라졌다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어디 갔다가 왔어요?"
"저, 사실은 예전에 학습지 교사를 모집한다고 해서 면접보러갔었는데 합격 해서 합숙으로 연수받으러 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갔는데 자꾸 구호를 외치게 하고 율동과 발표를 자꾸 시켜서 도망쳤습니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와 똥그란 눈으로 설명을 해주는데 그는 국내 굴지의 학습지 "ㅇㅇ 어쩌구 저쩌구' 라는 글귀와 로고가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단 벌 신사였던 그가 새 옷을 얻었다고 무지 좋아하던 천진 난만한 얼굴이 생각난다. 그 후 얼마 뒤 그는 고시원에서 말없이 사라졌다. 몇달 치 고시원비도 못내고 외상을 깔고 있었는데 사장이 고시원비 좀 내달라고 재촉하자 야반도주를 했던 것이다. 그 후 세상이 무섭고 사회의 냉정함을 느낄 때마다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