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밥과 외로움

사랑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밥과 외로움

한결


전기밥솥이 망가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망가뜨렸다. 범인은 큰 아이다. 배가 고프니 당장 밥을 먹어야하는데 난감하다. 아내는 지인의 결혼식장에

가고 이곳 저 곳 뒤져 봤으나 그렇게 많던 햇 반이 한 개도 없다. 자기 방에 있던 큰 아이가 나오더니 미안했던지 밥을 해주겠다고 냄비를 찾기 시작한다. 굳이 시키기가 미안해서 내가 한다고 해고 쌀을 씻는다. 사부작 사부작 스며드는 쌀알갱이의 감촉이 간지럽다. 밥을 할 줄은 알지만 냄비 밥은 오랜만이어서 잘 될지 모르겠다. 쌀을 불리고 30분쯤 후 손등이 조금 드러나게 밥물을 맞춘다. 역시 오랜만에 하는지라 서툴다. 현미가 섞여있어 평소보다 많이 불려야하는데 생각하지 못했다. 꼬드밥이 탄생한다. 쌀은 그런대로 되었는데 현미가 딱딱해서 돌맹이 같다. 오래 씹으면 되겠지하고 씹는데 하도 씹으니 턱이 아프다 못해 관자놀이가 뻐근하다.


이제 얼마후면 삼식이가 될터인데 미리 연습을 하는 셈치고 한 밥은 실패작이다. 하긴 요즘은 전기밥솥이 있어 쌀을 앉히고 버튼만 누르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밥이 나오니 걱정은 안되지만 혹시라도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야한다. 밥 뿐만이 아니다 김치도 담글줄 알고 나물도 데치고 무칠줄알아야한다. 내 또래의 남자는 아직까지도 가부장의 습성이 남아있다. 나 또한 직장의 끈이 떨어지면 그 길로 찬밥신세가 될 것인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한다. 천덕꾸러기가 되지않으려면 뭐든지 혼자할 줄 알아야한다는 거다.


얼마 전 노인들의 성지였던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을 출입제한시켰다고 한다. 국가 사적지인 공원에서 고성방가, 음주, 쓰레기, 방뇨, 싸움 등 무질서 행위 때문이라는데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탑골공원은 그동안 서울과 서울근교 노인 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기에 아쉬움이크다. 그 수많았던 어르신 들은 어디로 갔을까. 많은 분들이 근처 서울 노인 복지센터 바둑실이나 인근 종묘광장공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탑골공원과 그 주변에는 장기나 바둑을 두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많은 노인들이 있다. 밥 때문이다. 공원근처에 무료급식소가 있어서 끼니를 해결하려는 노인들이 모인다. 노인의 가장 큰 적은 돈과, 질병, 외로움인데 한 끼니의 밥도 해결하고 건강도 챙기고 친구들과 시간 보내기를 하기 위해 일부러 탑골 공원을 찾는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셔서 아버지는 요양보호사가 오는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혼자계신다. 그런데 점심은 꼭 집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식사를 하신다. 거길가서 점심을 먹어야 입맛이 돋는단다. 한끼에 천 원인 점심을 드시기 위해 아침 일찍 식권을 사러 복지관을 가신다. 척추관 협착 수술로 다리가 불편하셔서 심하게 절룩거리며 힘에 부치면서도 꼭 가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운동과 외로움이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이 무척 고되지만 그렇게라도 움직여야 걷기 운동을 하게되고 복지관에가서 말 벗 들을 만나 밥을 먹어야 그나마 입맛이 난다고 하신다. 노인들이 탑골공원으로 모여드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노인 빈곤율 세계 1위, 노인 자살율 세계 1위의 오명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 재산을 축적하여 노후를 준비한 일부 노인들을 제외하고 독거노인, 빈곤 노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초고령화 시대를 맞은 우리의 당면한 문제다. 그나마 걸어다닐 힘이 있으니 탑골공원을 찾는 것이고 특히 혼자사는 노인일수록 밥과 외로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곳임을 감안할 때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도 필요하지만 이번 조치는 우리나라에서 늘 소외되어왔던 노인 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을 터 그 대안 마련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나 늙어감은 슬프다.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고 아픈 곳은 많아지고 우리나라에서 늙어가는 것이 잘못일 수 있다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맴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한결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구독자 4,176
이전 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