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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데기

한결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뻔데기

한결


난 뻔데기를 무지 좋아한다. 요즘은 큰 규모의 시장에도 뻔데기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뻔데기가 생각날 때면 통조림을 사다가 먹는다. 통조림의 분량이 얼마되지 않고 양념이 부족하기에 내용물을 냄비에 넣고 물을 조금 더 부은 다음 파를 숭숭 썰어놓고 마늘다진것을 약간 넣는다. 다음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넣고 고춧가루를 한 술 넣고 매콤한 맛을 첨가한다. 이렇게해서 팔팔 끓여내면 그냥 데워서 먹는 거보다 한 단계 상승한 맛을 내는 뻔데기탕이 완성되는데 물은 부은덕에 짜지도 않고 천상의 맛을 낸다.


번데기는 곤충이 애벌레에서 어른벌레로 탈바꿈을 준비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고 고치 같은 것의 속에 가만히 들어 있는 몸이다. 아버지가 번데기를 매우 좋아하셔서 내가 어렸을 때는 밥반찬으로 종종 밥상으로 올라왔는데 그 때 나도 번데기를 처음 접했다. 색깔도 거무퉈튀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이 마치 벌레처럼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움직일 것같이 보였다. 징그러워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강권으로 인한 반강제로 먹은 번데기의 맛은 고소하고 짭짤한 것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입 안 안에서 황홀한 맛의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번데기를 무지 사랑하게 되었는데 집에서 먹거나 간식으로는 괜찮았으나 곧 곤란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번데기를 좋아하다보니 어머니께서는 번데기를 도시락반찬으로 싸주신게 문제였는데 지금이야 그러려니 하고 그냥 먹겠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번데기는 어울리지 않았을 분더러 친구 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학교에 번데기를 반찬으로 싸온 사람은 내가 최초였고 그 후 번데기는 내 별명이 되었다. 난 어머니께 번데기를 도시락반찬으로 싸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나 소용없었다. 이유는 도시락반찬으로 싸주려고 시장에서 잔뜩 사왔다는 것이고 아버지는 반찬으로 싸드려도 잘도 드시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께선 배가 불러 그러신다며 굶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도시락을 싸주지 말고 날 굶기라고 하셨다. 요즘같으면 언감생신 꿈도 못꿀 일이지만 그때 아버지의 말은 법과도 같았다. 후로 난 집에있는 번데기를 다 먹을 때까지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지고 다녔다.


요즘은 번데기 구경하기가 어렵다. 횟집에서 밑반찬으로 나오거나 대규모 공원 앞 도로의 노점상에서 가끔 파는 것을 구경할 뿐, 그것도 요즘 아이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도 난 뻔데기를 좋아한다. 모양은 흉해도 번데기는 우리 몸에 이롭다. 혈당조절에 도움이되고 고단백 저지방식품이며 항산화 작용으로 미네랄도 풍부하다고 한다. 조금 섭취해도 큰 효과를 볼 수있는 완전식품으로 미래 식량으로 각광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번데기의 주름만큼이나 세월이 흘러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번데기를 볶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계시고 그렇게나 뻔데기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90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그 옛날의 젊고 힘찼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다 사라진 부모님의 세월이 아마도 안에 들어있는 좋은 것은 자식들에게 다 내어준 말라비틀어진 뻔데기가 아니었을지. 오늘은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외출시켜 아버지가 계신 부모님댁에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편의점에서 번데기 통조림 하나를 사왔다. 이제 짜고 매운 것을 못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국물은 쏟고 날이갈수록 점점 일상생활을 힘들어하시는 아버지께서 이 번데기를 드시고 원기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파, 마늘, 양파, 덜 매운 고추를 잘라 넣고 번데기 볶음을 한다. 보슬 보슬하니 번데기 특유의 냄새와 함께 윤기가 좔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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