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힐링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버킷리스트

민병식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라는 그 행복의 궁극적 목적과 기준은 다르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살아온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생의 목적과 가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고향은 경기도의 작은 농촌 마을이다. 서울로 유학을 오기까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마음의 안식처였던 곳으로 내 정서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당에서 보는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물고기가 춤을 추는 맑은 냇가, 마당에서 펌프 질을 하며 빨래를 하시던 젊었을 때 어머니의 모습과 나팔꽃 향기 가득했던 앞 뜰이며, 채송화 가득했던 꽃밭

에서 노래를 부르던 나의 옛 모습, 아버지와 함께 길 다란 장대로 밤송이를 따던 추억들, 겨울철 흰 눈이 소복 소복 쌓이던 장독대에 오르면 그런 나를 보고 뭐하냐는 듯 '멍멍'하고 짖던 검둥이의 모습까지 고향은 나에게 있어서 생각의 근원지였고 늘 내가 돌아가고 싶어 하던 자연이었다.


이런 영향을 받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내 삶의 지향점은 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다. 흔히 말하는 배산임수의 지역에 조그만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안빈낙도 하는 삶인데 그렇다고해서 요즘 유행하는 TV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원시인에 가까운 자연인처럼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완전한 자연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의사소통의 동물이기에 아예 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삶이 내 지향점은 아니라는데 있다. 이미 문명의 단 맛을 실컷 누려왔기에 그것을 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문명과 자연이 적절히 조화된 삶을 살고 싶은데 자연의 사랑을 받으며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 있었다. 바로 세상과 타협을 하는 것이다.


이른 바 반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 오징어도 반 오징어가 있는데 반 자연인이 없을까. 그렇다 마을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 복잡함을 피하고 자연의 맛을 그대로 누릴 수 있고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 집에는 반드시 전기가 들어오고 욕조를 만들고 정화조도 설치할 것이다. 당연히 컴퓨터와 휴대폰은 사용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이 정도면 그냥 도시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생활의 편의를 도모할 뿐 자연과 진배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나름 귀촌에 대한 책을 읽는데 전원생활

이나 우리나라 약초, 버섯 재배법 등을 공부하고 있다. 늘 이런 책들을 늘 곁에 두고 사는데 버스를 타고 출퇴근 할 때나 시간이 날 때마다 읽으면서 이제 곧 다가올 은퇴 후의 삶을 미리 꿈꾼다.


요즘엔 주말을 이용해 고향 인근 마을을 비롯 충청도, 강원도 등의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가 되었는데 옛날처럼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을 뛰어넘어 1인 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시대, 은퇴 후의 정서적 욕구 및 생활의 만족에 대한 목표는 당연한 것이다. 은퇴 후에 나는 조용한 시골마을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 것인데, 이미 '사랑 가득, 작은 도서관'이라고 이름까지 지어놓았다. 이곳은 마을 사람 누구라도 찾아와 책도 일고 휴식도 취하며 오고 싶을때 오고 가고 싶을때 가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랑방 역할을 할 것이다. 약초 차를 마시면서 마을의 발전에 대해,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 건강에 대해 대화하고 웃을 수 있는 공간에 더하여 시집과 에세이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책을 비치해놓고 마음껏 읽으며 행복하고 싶다. 나무와 숲, 책 냄새에 둘러싸인 생활은 지금의 꿈이기도 하고 미래 진행형인 희망이기도 하다.


삶은 여행이기도 하고 방황이기도 하고 정책했다가 떠나는 집시의 방랑생활 같은 것기도 하다. 내 삶도 열심히 달리기를 한 결과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는 속도 조절을 하며 후반부를 위한 정착지가 필요할 듯한데, 오늘 만을 위해서 살아온 지금, 막상 나를 위해 살지 못했던 날도 많았던 터라 삶의 여행을 마칠 시간이 다가오면 그 누가, 그 무엇이 내 곁에 남아 있을까. 헌 책방에 들어가 오랜 시간을 묵은 고서의 종이 냄새 같은 추억과 원하는 책을 발견했을때의 보물을 얻은 듯한 기쁨과 약삭빠른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아닌 평상에서 별을 헤던 여름밤의 소박함을 빠뜨리지 않고 가져갈 수 있도록 꿈을 꾼다.


오랜만에 금요일, 월차를 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숲에 든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밝게 빛나는 푸른 하늘이 나를 향해 웃어주고 코끝을 간질이는 나무 향을 맡으니 마음이 한결 상쾌하다. 숲 길을 따라 조금 거닐면 산모퉁이의 꽃향기가 온 몸을 감싸고 바닥에서는 낙엽이 삭은 부엽토 냄새가 은은한 향으로 다가온다. 숲 속에는 언제나 자연의 향기가 가득하다. 멀리서 이제 이름 모를 새의 울음 소리가 들리고 다람쥐가 먹이를 찾으려고 부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이보다 더 평화로운 휴식은 없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는 자연 안으로 들어가면 평안의 세상이 펼쳐 진다. 무언가에 눌리고 마음이 빼앗겨 허허로울 때 자연은 늘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듬어 준다. 계절의 순환은 곧 인생의 순환이다. 꽃봉오리 같은 봄의 계절, 청춘을 지나 푸르른 신록이 우거진 여름같은 청년기, 빨갛고 노란 단풍이 드는 가을 같은 중년을 맞은 지금,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봄에는 들꽃을 친구삼아 들과 숲을 걷고 여름에는 강가에 텐트를 치고 밤새도록 낚시를 하고 가을에는 낙엽 을 밟으며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고 겨울에는 벽난로를 피우고 불멍에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어린 시절 서울로 전학을 간후에도 도시 생활에 적응을 못하다가 촌사람 냄새를 탈피한 수십 년이 흐른 후에도 늘 자연의 삶을 그리워했던 한 소년이 지금은 중년이 이 되어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 자연과 친구가 되어 사는 최고의 버킷리스를 꿈꾸고 있다.


사진 네이버(위 배경사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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