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골 촌놈 서울 상경기
민병식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 경기 북부 휴전선 인근에 위치한 농촌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름이면 동네 개울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 잡이를 하였고, 겨울이면 썰매타기, 앞 산에 산토끼 잡으러 다니기 등 자연과 더불어 내 삶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기억을 하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겨울방학을 얼마 안남기고 갑자기 서울로 전학을 가야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서울에서 공부시켜야한다는 부모님의 불타는 교육열을 나의 향학열이 따를 수 없었음 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강제전학을 당해야
했는데, 얼떨결 이었지만 나를 필두로하여 뒤를 이어 몇 명의 친구들이 서울로 전학을 했으니 나는 고향의 초등학교 동문 중 학문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선구자적 역할을 본의 아니게 수행한 셈이 되었다. 밑으로 어린 여동생이 한 명 있었고 가족 모두가 이주할 형편은 못되어, 서울 청량리 시장
에서 포목점을 운영하시는 어머니의 먼 친척뻘 되는 분의 집에서 나만 당분간 생활하기로 하였다.
서울로 오던 날 저녁, 청량리 역 앞에서 신호등을 난생 처음 보았다. 내가 살던 고향은 도로를 그냥 신작로라고 불렀고, 지나다니는 차라고 해봐야 몇 시간마다 다니는 완행버스와 가끔 택시가 있었고, 주로 군인들이 탄 트럭이나 지프차, 경운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마저도 신호등이 없어서 건너는 곳이 횡단보도가 되곤 했는데 촌놈이 서울에가서 그 수많은 버스며 택시,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를 보았으니 놀라고도 남을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는 도심에서 벗어난 강북의 변두리 지역이고, 서울시의 한 작은 동네에 지나지 않는 곳이지만, 그때는 수많은 인파와 모두 똑같이 생긴 집들, 처음 본 백화점 ,텔레비젼에서만 보던 아파트 들을 접한 나의 눈에는 충격적일만큼 신기하고, 넓은 세상이었다.
나의 서울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일주일 중 6일은 친척집에서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면 다시 고향 집으로 가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를 반복하였다. 주말에 집에 내려갈 때는 부모님 생각에, 오랜만에 만날 동무 들과 놀 생각에 너무 신이나고 좋았으나 일요일만 되면 서울로 돌아가기가 너무 싫었다. 부모님과 떨어지기도 싫었을 뿐아니라 친구들과 더 있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일요일마다 서울 갈 시간이 되어 기차역으로 갈때면 어머니와 동생이 대문 앞에서 배웅을 해주었다. 손을 흔들면 잘가라는 어머니와 동생의 외침에 괜시리 눈물이나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갔던것, 서울에 올라와서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집이 그리워서 혼자 훌쩍 훌쩍 울었던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시간이 흐르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도 촌티를 조금씩 벗기 시작했고, 동생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어머니가 서울에 방을 얻으시면서 고향 집과 부모바라기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 같다. 그땐 왜 그리도 고향의 집이 그리웠을까.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란 곳,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셨고 정원의 밤나무와 배나무가 친구가 되어주던 곳, 나팔꽃과 채송화가 지천이었던 앞 뜰이며 나를 유독히 잘따랐던 검둥개가 있던 집, 여름이면 발가벗고 물장구치던 냇가, 가슴 졸이며 수박서리 를 하다가 동네 할아버지에게 걸리면 줄행랑을 치곤했던 순간 들, 겨울이면 연날리기, 썰매타기, 토끼를 잡겠다고 눈 덮힌 산을 오르던 추억 들이 그 당시 나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부모님이 아프시기 전까지는 빈 집으로 남아있는 고향집에 1년에 한 두 번씩은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왔었다. 집에 도착하면 앞마당에서 뛰어놀던 그 시절의 내 모습과 무더운 여름 날, 펌프질을 하는 나와 빨래를 하시던 어머니, 전나무와 향나무 전지작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고 또, 대문 밖으로 나가면 골목길에서 사방치기를 하며 깔깔거리며 뛰어놀던 코흘리개 동무들이 나를 부른다.
나도 벌써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코흘리개 동무 들도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나보다 작았던 앞 뜰의 향나무는 내 두 배의 크기로 자랐다.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고 그 뒤로 삶의 흔적이 남는다. 어려서 뛰어 놀던 마당의 밤나무와 배나무는 지금 없지만 아버지와 함께 밤을 따던 모습, 병충해를 방지하려고 배에 봉지를 씌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 지금도 그리운 것을 보면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서 40년을 넘게 살면서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시골길의 풀내음과 꽃향기, 푸르른 나무들과 대화하는 냇물의 소리가 늘 그립고 밭에 뿌려져 있는 퇴비의 냄새가 정겹다고 느끼는 것을 보면, 난 역시 서울 사람이 아닌 영원한 시골 촌놈인가보다.
사진 네이버(위 배경사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