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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Sep 24. 2023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9월 셋째 주 목요일, 유치원을 나오며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그냥 눈물이 흘러내리게 두다 몇 번을 손으로 눈물의 흔적을 훔쳐낸 후에 빨간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고, 방황하는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편의점으로 갔다. 캔맥주에 빨대를 꽂아 나와 시원하게 원샷을 했고 그제야 내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무협지에 혹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외로운 검사처럼 나를 향해 오는 누군가의 공격을 쳐내도, 끝이 없었다. 살기가 가득 담긴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치고 쳐내다가 결국 내가 쓰러질 판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3~4월까지는 복직으로 적응을 하지 못해서, 손이 느려져서인가를 의심했었고 5-6월까지는 행사가 많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7월 방학 전까지는 맡은 업무에 대한 운이 없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나 보다,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방학 때는 1정 연수를 받느라 바빴고, 그 이후에는 다시 몰려드는 급식과 학비 관련 그리고 교육활동보호를 위한다는 공문이 쏟아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방학이었으니까. 그런데 개학을 했다. 개학과 동시에 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공문이 쏟아졌고, 다음 행사를 위한 준비도 동시에 시작했다. 현장체험학습도 다녀왔다. 난 교육공무원이 아니라 행정공무원에 가까운 거 같았다. 수업 준비를 하기 위해 잠을 줄이니 피로가 쌓여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그냥 잠을 자고 싶었다. 그 와중에 나는 내 가정이 있었기에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새벽에 깨거나 다리가 아프다고 깨면 같이 일어나서 아이를 돌봐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배가 아픈 아이의 배변활동을 돕고 따뜻한 물을 마시며 배를 문질러 주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2시간 반 후,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다 문득 생각했다.


'다들 이렇게 사나?'


워킹맘의 삶이 그러하다 했다. 그래서 힘들다고 했다. 아빠가 아닌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그래서, 나는 워킹맘이라 힘든가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도 나와 같은 목요일에, 울며 집에 갔다고 했다.

좀 이상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똑같이 바쁘겠지. 그럼 그 사람들도 이렇게 매일매일 바쁘고 잠을 줄이면서까지 무언가를 준비하나? 아니던데....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다, 공립유치원 선생님들이라고 모두 나처럼 주말에도 일하고, 잠을 줄여가며 수업을 준비하지 않듯이 일반 회사원 중에서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공립유치원 교사에 대한 기대감(좋게 말해 기대감이라 썼지만 요즘 많이 쓰는 디폴트라고 읽는다)이다.


나는 공무원이기에 행정업무를 모두 처리해야 한다. 

나는 유아교사이기에 우리 반의 놀이를 관찰하고 배움이 일어날 수 있게 지원을 해야 한다.

나는 '유아'교사이기에 우리 반에 관련된 학부모 민원을 처리하고 적절한 서비스로 응대해야 한다.

나는 교사이기에 좀 더 나은 교육을 하고자 다양한 연수에 참여하며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교육에 이바지해야 한다.

나는 공립유치원에서 제일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교육공무원직에 있기에 행정공무원, 교육공무직이 하지 않고 싶어 하는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교직관은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성직관, 둘째가 노동직관, 셋째가 전문직관이다. 사회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성직관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시위나 집회와 같은 행동을 할 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거 같다. 

그래서, 우리는 성직자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가?

누구나 답할 수 있듯이 우리는 노동자의 대우를 받고 있다.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월급을 받는다. 

그렇지만 아직 올바른 가치가 정립되지 않은 어린이를 대하고 있으며 발달에 적합한 교육이 있음을 알고 이를 교사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며 학급을 운영하기에 나 스스로는 전문직관으로 내가 가진 교직을 정의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직관이고 성직관이고 다 때려치우고 노동직관의 마음으로 교사의 길을 가고 싶다. 

그게 제일 마음이 편하니까. 

받은 만큼 일하면 되니까. 내 남은 에너지는 내 가정에 쓸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님의 마음에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 나를 다독인다. 


그렇지만, 얼마나 내가 나를 더 다독일 수 있을까.

더 이상 내가 나를 다독이고 싶지 않아 진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

엄마니까 강하고 교사니까 강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 강함이 이어질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주길 바란다.

그 누군가는 교육부일 수도 있겠고, 일부 학부모님일 수도 있겠다. 

혹은 결국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나설 우리 자신(공립유치원 교사) 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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