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禮誼)
인성을 시험으로 보면 좀 나아질까요?
(2024년 5월에 임시 저장한 묵힌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얼마 전, 핫한 뉴스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교감의 뺨을 때린 동영상이 유튜브에 돌아다니고 각종 기사와 뉴스에도 나왔다. 사실 요즘 상황에서는 너무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 놀랍지도 않았다. 그리고 놀랍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에 더 놀라기도 했다.
징검다리 연휴에 마침 자율휴업일이 생겨 모처럼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에 마찬가지로 요즘 핫하다는 예산시장에 들렀다. 아직 공사 중이었으나 제법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마침 점심시간 즈음이라 시간대를 잘못 선택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15분 정도를 고민하고 헤매다 결국 남편은 앉을자리를 찾아 대기하고, 나는 아이와 먹을 음식을 찾아서 대기했다.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아 요깃거리를 찾아 줄을 섰다. 내 앞에는 약 10팀 정도가 있었고, 내 뒤로도 2팀 정도가 금세 줄을 섰다. 아이와 대화를 하며 앞 팀과 거리를 줄이려 이동하는 순간, 어떤 자매가 우리 앞으로 끼어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저학년 자매로 보이는 아이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더 뒤로 가야 줄 끝이야. 뒤로 가야 해."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말했다.
"알아요, 그래서? 먼저 가면 되잖아요."
"우리가 먼저 가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건데? 너희는? 내 뒤로 줄을 선 사람들은 어떡하니?"
"뭐가요, 그냥 가시라고요. 가시면 되잖아요."
더 말하면 애랑 싸우는 꼴이 될 거 같아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는 옆에 있는 동생의 어깨를 감싸 쥐어 자신의 품으로 기대게 하며 도끼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고, 줄 끝부분을 쳐다보다(이 사이에 어느새 내 뒤로 5팀 정도로 줄이 늘어났다)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태도의 어딘가가 잘못되었나를 점검했다. 그리고 약 5분 후, 어떤 중년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왜 말을 제대로 못 했냐, 줄을 다시 서면 되지 않았냐’ 등의 말이 이어지다가
"그래서, 누구야? 누가 그랬어?"
라고 말하는 소리에 몸을 돌려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는 없고, 저학년 아이가 엄마로 보이는 여자와 서 있었다.
잠시 당황하던 여자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좀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말, 상대방의 비언어적 표현(몸짓)과 언어를 다 들려주었다.
"아,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요, 사춘기라 그런가 봐요."
라는 말을 나의 말에 추임새처럼 반복하던 여자의 뒤로 마찬가지의 사춘기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성인 없이, 오롯이 형제 둘이서. 그 뒤에도 사춘기로 보이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체 뭐가 오해였던 걸까 싶어서 말했다.
"뭐가 오해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오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줄을 제대로 서야 한다고 알려주려고 했는데 전달이 안 되었어요."
내 말에 여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후, 맨 뒤로 가서 줄을 섰다.
장황하게 나의 사연을 적은 이유는 교감의 뺨을 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나,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나 나에겐 크게 다를 바 없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래도 뺨을 치지 않았으니 그래도 줄을 '잘못' 선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가 낫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나을 수 있다. 그래서 괜찮다, 로 끝나선 안 될 일이지 않을까.
그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는 내 앞에 끼어들기까지 많이 기다렸다고 했다. 줄을 잘못 섰기 때문에, 그래서 기분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고 그 '엄마'가 말했다. 그럼 그 아이는 줄 서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인데, 그게 왜 오해인 걸까. 그게 왜 '사춘기'라서 그런 걸까. 만약 다른 여성분이 그 '엄마' 앞자리로 끼어들어 비슷한 상황이 되어 '대화'를 할 때, 다른 여성분이 '갱년기'라고 말했다면 그 '엄마'는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어쨌든, 자신의 상한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풀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봤을 때 만약 내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일단 내 아이가 상대방에게 사과시킬 수 있도록 하고 (같이 사과하고) 같이 줄 서는 '연습'을 했을 거 같다. 만 3세, 예전 나이로 5살이 된 우리 아이도 안다. '연습'을 하면 된다는 걸. 해봐야 안다는 거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모르니까. 그런데 그걸 '오해'라고 표현한 그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말 나들이 겸 일찍 찾아간 온천장에서 물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나에게 강력한 물싸대기를 보내왔다.
"어,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런데 아이가 있어서 잠깐 멈췄다가 우리 지나가고 난 다음에 해줄 수 있을까"
워터파크에서 물싸대기는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싫을 수 있다. 그럼 되도록 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불편을 겪은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현했다. 그게 참으로 고마웠다. 별 거 아닌 일인지 모르겠으나, 이 시대의 저 나이 아이들에게는 어렵다는 걸 이제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