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이름은 나비
그대의 이름은 나비
사실 고양이도 굉장히 잔인한 동물이라 아이들이 가진 순수악과 비교하자면 우위를 가리긴 어려울 수 있다. 고양이라는 존재와 함께 살며 그 행동들을 관찰하다 보면 정말 놀라울 만큼 잔인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완벽한 집냥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골에 사는 마당냥이들은 정말 무섭다.
여러 번 일기에 적는 내용이지만 나는 털 짐승과 함께 살아갈 생각이 없었던 인간이라 고양이의 그런 모습들에 많이 놀랐었다. 내가 나비의 잔인한 모습들을 처음 보게 된 건 나비가 우리 집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인식하게 된 이후인 것 같다. 처음 나비는 마당에서도 움직이는 행동반경이 무척 좁은 녀석이었다. 정원수, 백합이 피다 지고 상사화가 올라오기 시작한 화단, 그 옆에 장독대들. 나비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바람에서도 한창 여름 냄새가 나고 있을 때라서 온갖 풀벌레가 서식하고 있었다. 거기에 개구리까지.
나비는 내방 창을 통해 마당으로 나가는 걸 참 좋아했다. 내가 청소를 위해 창을 열면 늘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래도 나비는 내가 이름을 부르면 곧장 창틀을 넘어 집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은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사냥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내가 여러 번 부르면 못 이기는 척 돌아오곤 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나비는 밖에 나간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창틀을 훌쩍 넘어 방으로 돌아왔다. 이슬이 많이 내린 날이라 물기가 싫어 그랬거니 하고 나는 창문을 닫고 청소를 마무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나비는 아직 털이 많이 빠지진 않았지만 우리 집은 논과 밭으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흙먼지가 날려 들어온다. 그 흙먼지와 내 머리카락들이 나비에게 비위생적으로 보여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를 한다. 여하튼, 나는 일찍 돌아온 나비를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구엑,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나비는 내가 얼마 전에 구매해서 깔아 둔 장모 러그 위에 앉아 있었다. 무슨 소리지.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내 나는 나비가 러그 위에 무언가를 찾는 듯 코를 킁킁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비는 곧 목표물을 찾았는지 러그 위에 무언가를 콱 이로 물었다. 구엑.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러그 위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개구리였다. 나비가 마당을 나갔다가 개구리를 사냥해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나비는 그 개구리를 장모 러그 위에 던져두고 개구리가 움직임을 멈추면 발로 톡톡 건드렸다. 그러다 개구리를 죽일 만큼의 힘은 아니지만 제법 위협적일 정도의 힘으로 개구리를 깨물어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러면 개구리는 볼을 부풀리며 울어대는 것이다. 그 소리에 나비는 잠시 행동을 멈춘다. 조용해진 나비의 모습에 개구리는 도망갈 수 있다는 희망에 차 팔짝 뛰어보지만, 나비의 입에 물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나비는 그것을 개구리가 죽을 때까지 반복했다. 내가 개구리가 죽을 때까지 그것을 지켜봤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보통 나비가 데려온 개구리를 건져서 밖에 풀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잠시 다른 일로 나비의 사냥놀이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늘 피칠갑이 된 바닥과 마주해야 했다. 개구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형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사방에 피가 묻어 있는 그 잔혹한 살해 현장이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 나는 개구리를 반드시 살려서 밖으로 내보내는 편이다.
나비의 그런 잔인한 사냥놀이는 개구리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온갖 풀벌레가 그 희생양이다.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귀뚜라미, 거미, 심지어 바퀴벌레도 나비를 피해 갈 수가 없었다. 그 녀석들은 주로 도망갈 의지마저 잃을 때가 되어서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반항을 포기했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죽을 수 있었다. 작은 개구리 정도는 내가 잡아서 밖으로 풀어줄 수 있지만 살아있는 풀벌레는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 늘 나비가 죽이고 난 사체만 치우곤 했다. 그중에 절반 정도는 말릴 틈도 없이 나비가 먹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아는 나비의 벌레 사냥은 절반 정도겠지.
그러니까 나비는 우리 집안 최상위 포식자다. 정말로 집 ‘안’에 있을 땐 그렇다.
나비는 외부 침입자로부터는 최상위 포식자일 수 없었다. 우리 큰 조카는 이제 곧 중학생이라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지만 작은 조카는 ‘미친 4살’이다. 내가 알기론 미운 4살이었는데, 언니에게 듣자 하니 요새는 미친 4살이란다. 벌써부터 정신이 산만해지는 조합이다, 이 두 조카는 평소에도 자주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라 ‘이모가 할머니 집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과 ‘고양이인 나비도 함께 산다’라는 사실 모두를 알고 있었다. 나비와 첫 대면을 하기도 전부터 나비를 만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던 녀석들이라 나는 걱정의 바다에 빠지게 되었다.
간혹 아이들은 반려동물을 움직이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것을 보호자가 바로 잡아주어야 하고. 하지만 나는 초보 집사다. 그리고 나비는 캣초딩이고, 조카는 미친 4살.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렀고 조카들이 방문하는 당일이 되었다.
나는 나비를 일부러 방에 격리해 두었다. 아이들이 집에 도착하기로 예정된 시간은 나비가 낮잠을 자는 시간이라 편안한 휴식 시간을 가지게 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조카들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나비의 존재를 찾기 시작했고, 나비는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에 나오고 싶어 하며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비는 관종이다.
나는 조카들에게 고양이를 만나는 자세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나도 초보라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전달할 뿐이었다. 큰소리를 내면 나비가 놀라니까 조심해야 해. 나비가 아직 발톱을 자르지 않았으니까 조심해. 먼저 만지려고 하지 말고 나비가 먼저 와서 인사하게 기다려줘.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조카들과 나비의 첫 만남은 난장판이었다. 나비가 궁금했던 둘째 조카는 막상 나비를 만나서는 겁을 잔뜩 먹었다.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도망을 가는 걸 나비가 사냥감으로 인식해 발톱을 세우기도 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큰 조카는 나름 나비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 츄르가 큰 몫을 했겠지만 작은 조카처럼 요란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나비는 큰 조카를 싫어하지 않았다. 내 빈백에 앉아 게임을 하는 큰 조카에게 스스로 다가가 몸을 부비기도 했으니. 하지만 작은 조카와는 여전히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한 번은 미친 4살 답게 발을 쿵쿵 구르며 나비를 몰고 다니려고 하는 걸 내게 현행범으로 걸려 혼이 난 뒤엔 나비의 이름도 소곤소곤 부른다.
나비는 조카들의 방문을 어른스럽게 잘 넘겨주었다. 작은 조카는 워낙 말이 많아서 사람인 나도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라 나비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물론 스트레스는 받았을 것이다. 일부러 방에 혼자 두긴 했지만 카랑카랑한 아이들 목소리는 벽을 뚫고도 전달이 되었을 테니까. 게다가 나비와 나의 보금자리인 벙커 침대까지 침범했던 조카들 덕에 나비의 심기도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하악질도 하지 않았고 조카들을 다치게 하지도 않았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조카들과 나비가 조금 더 안전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을 텐데. 나는 여전히 초보 집사이지만 그래도 그때보다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나비와 우리 조카들의 첫 만남은 그랬다. 일기로 적으니 별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날 나는 나비가 스트레스받을까 긴장을 많이 한 상태였다. 내가 그렇게나 예뻐하고 사랑하는 조카들보다 나비가 우선이었으니까. 낯선 경험이긴 했다. 한정적인 시간이긴 했으나 조카들보다 더 우선인 존재가 생기다니.
아마 조카들은 내 일기에 자주 등장하게 될 것 같다. 얼마 전에도 조카들이 다녀갔었으니까. 다음으로는 내가 이런 귀농생활을 하며 나비라는 존재를 만나고 마음의 병을 차차 이겨갈 수 있게 도와준 내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써보려고 한다. 나비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경기도에서 홀로 지내는 남자 친구를 단 한 번도 만나러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비를 이해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