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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클 Oct 07. 2022

마당냥과 집냥이

그것이 문제로다


나비가 오기 전부터 나는 치아 교정을 위해 치과를 알아보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광주로 치과를 다녀야 하지만 해남엔 교정을 할 수 있는 치과가 없었기에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나비와 만나서 처음으로 거의 하루에 가까운 긴 시간을 떨어져서 보내게 되었다. 치과 예약이 오전 11시면 보통은 8시부터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여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9시가 되면 터미널로 출발한다. 거기서 광주까지 고속버스를 타는 여정이다. 왕복으로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내가 없어도 가족들이 워낙 나비를 예뻐해서 나비 역시 가족들을 좋아한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선 것처럼 굴던 나비도 이제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서서히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나는 집을 나서며 나비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혼자 잘 놀면 다녀와서 츄르줄게.


야옹. 나비는 마치 대답하듯 울었다. 남동생도 나비를 워낙 좋아해서 내가 없는 동안 사냥놀이를 해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비를 두고 첫 외출을 했다. 광주에 도착하자 치과 진료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었다. 나는 미리 알아봐 두었던 치과 근처 동물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근 나비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벌레들을 먹기 시작했고 가끔 마당에서 개구리를 잡아 방으로 와 실컷 가지고 놀다가 물어 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마당에서 가까운 논에는 아직 물이 가득 차있었고 개구리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인 탓이다. 나는 나비의 그런 이상한 식습관이 좀 불안했다.


음, 마당에 사는 고양인데요. 구충제랑 진드기 약 같은 거 살 수 있나요?


그러고 보니 나는 이때도 나비가 마당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뭐, 우선 마당을 돌아다니긴 하니까? 병원 접수대에 계시던 선생님은 나비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몇 살이에요?

정확히 몰라요. 크기가 이 정도예요.

먹는 약이 있고 바르는 약이 있어요. 먹는 약이 편하시겠죠?

음. 둘 다 해도 되나요?

어? 고양이 만질 수 있나요?


선생님은 나비가 길고양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질 수 있어요. 그러면 발라주는 약이 좋죠. 한겨울엔 안 발라줘도 되고 한 달에 하나씩 발라줘야 해요. 선생님은 인형을 가져와 어떻게 바르는지 상세하게 알려주셨다. 우선 나는 나비가 병원에 함께 방문하지 않아도 약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고 선생님이 고양이에 진심인 분 같아서 조금 더 놀랐다. 그리고 이때쯤 나비의 식량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간식을 주문했는데 택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그래서 약을 발라주고 먹을 소량의 간식이 필요했다. 닭고기로 만들어진 간식을 하나 고르다 그 옆에 있는 캣닢볼과 마따따비 스틱이 보여 함께 집어 들었다. 나는 고양이에겐 낚싯대 장난감으로 신나게 사냥놀이를 하는 게 최고라고 알고 있는 신입 집사라 그런 작은 장난감들이 신기해 보였다.


이건 선물이에요. 길고양이 챙겨주시는 분들은 언제나 환영이죠.


음. 정정을 해야 하나. 하지만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정정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전화는 고양이 중성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나비가 우리 집에 조금 더 적응을 하고 나면 병원에 방문에 예방접종을 할 예정이었다. 나는 카드를 내밀어 약을 계산하며 선생님의 통화 내용을 유심히 들었다. 남자애는 4개월부터 여자애는 보통 5-6개월 정도에 해요. 여자애인가요? 상담받아보시도록 전화 연결해드릴게요.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내 카드도 긁어졌다. 이후에 다시 나와 대면한 선생님은 이미 나를 길고양이를 챙겨주는 착한 집사로 여기신 건지 간식은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하고 조언을 해주셨다. 선생님이 선물로 챙겨주신 건 캣닢볼과 마따따비 스틱이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하고 질문을 던졌다.


중성화를 해줘야 하겠죠?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나비요.

나비 중성화해주시게요?

발정기가 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도 하고. 나비가 걱정되네요.


선생님은 이쯤에 무척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비랑 더 오래 지내고 싶으시면 해주시는 게 좋죠. 남자애 같은 경우는 발정이 오면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호기심도 강해서. 그렇구나. 나는 고양이 중성화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자고 다짐하며 약을 가방에 챙겨 밖으로 나왔다. 세상엔 참 다정한 사람들이 많구나. 나는 가방을 슬쩍 매만지며 치과로 향했다.


치과는 제법 오래 시간을 잡아먹었다. 교정을 위한 첫 진료이기도 했고 여러 검사를 위해 CT까지 찍었다. 나는 이미 교정을 결심한 터라 짧지 않은 상담 이후에 바로 교정 진료를 예약했다. 처음엔 거의 매주, 이후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나비와 이렇게 떨어져야 한다. 나비는 잘 있겠지?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걸음을 빨리했다. 터미널 안에 들어가니 서울에 있을 때 가끔 사 먹던 도넛 가게가 보여서 가족들과 먹으려고 잔뜩 포장을 했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 반의 고속버스 여행을 마친 나는 나비와 감격의 재회를 했을까? 아니. 나비는 그냥 따뜻한 햇빛 아래서 최애 담요에 파묻혀 꿀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나간 이후에 남동생에게 트릿을 몇 개 받아먹고는 내가 돌아갈 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주 조금은 서운했다. 분리불안은 사실 나한테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가족들과 도넛으로 요기를 하고 바로 약을 꺼냈다. 핥지 못하도록 목 뒤에 털들을 이렇게 치우고 여기다가 이렇게 살살살살. 선생님이 설명해준 그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튼 엄청 노력을 했다. 약은 정말 쥐똥만 한 사이즈였는데 막상 발라주려니 제법 양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나비에게 약을 발라주고 얌전히 참은 녀석에게 보상으로 간식을 조금 꺼내 주었다. 나비가 간식을 먹는 사이에 나는 중성화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무지했다. 강형욱 훈련사를 좋아해서 세나개, 개훌륭 같은 프로그램은 간혹 유튜브 클립으로 보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프로그램을 본 건, 반려견을 키우기 위함은 아니었다. 나는 동물과 함께 살 거라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인간이니까. 그래서 나비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많은 걸 배워가는 중이었다.


결국 나는 나비의 중성화를 결심했다. 여기서 나는 내가 나비에 대해 하는 모든 결정에 나비는 조금도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나비는 이걸 원할까? 물어봐도 나비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비는 나의 반려묘다. 그리고 나는 나비의 반려인. 정말 이기적인 반려였다.


분명히 우리는 일상을, 앞으로의 날들을 반려하는 존재인데 나는 그 모든 시간들에서 나비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나비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은 매번 그렇게 불쑥 생겼다.



나비는 이런 일상이 만족스러울까.



나비가 우리 가족이 되고 2주 정도가 지나가자 집은 점점 나비의 물건들로 소란해졌다. 나는 커다란 창에 해먹을 달아주었다. 간식도 고심해서 골랐다. 가능하면 여러 종류를 주문해서 나비가 가장 좋아하는 걸 확인해서 추가로 주문하는 형태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택배로 도착한 간식 샘플과 체험팩을 정리하고 과하지 않게 나비에게 급여하며 보냈다.


눈을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지겨워지면 빈백에 누워 간식을 먹으며 핸드폰이나 들여다보던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생산적인 일이라곤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내 백수 생활에 드디어 패턴이라는 게 생긴 것이다. 나비 덕분에 나는 이렇게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즐기게 된 것이다.




요상한 포즈로 잠을 자는 나비



그러다 어느 날, 이 평화를 깨부술 녀석들의 방문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바로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네는 광주에 살고 있었고 제법 자주 집을 방문한다. 보통 방문할 때는 당일치기지만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자고 가는데 그게 바로 명절이다. 그리고 나는 두 명의 조카가 있었다. 언니의 딸과 아들. 이 두 녀석이 나비가 같이 살게 된 후 처음으로 이 집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무서운 이유는 너무나 순진무구한 얼굴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악을 보여주는 존재들이라 그렇다. 나는 벌써부터 나비에게 관심이 많은 두 조카를 떠올리며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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