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지금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사실 나는 나비와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도 생각도 없었다. 다만, 어린 시절에 정말 귀찮고 번거로운 숙제 중에 하나였던 일기 쓰기가 생각보다 재밌고 즐거웠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내가 이 일기를 가능하면 오래오래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다니. 나비는 정말 내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존재임은 틀림이 없었다.
나는 약 4개월 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꾸준히 약을 먹고 있었다. 약은 대부분 신경안정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같은 것들이다. 나는 사실 이 약을 오래 먹지는 않았다. 햇수로는 2년 정도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고 했다. 나 역시 그런 부류였고 2년 전 처음 만났던 선생님은 나를 우울증 중증으로 진단했다
정신과 진료를 예약하던 날에 나는 참 생각이 많았다. 현대인 중 정신적,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엔 나한테서 발생한 문제라고 단정하고 있었기에. 그런 상태였던 내가 병원을 찾은 것은 아주 간절하게 약의 힘이라도 빌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얻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를 가장 가까운 내 편인 남자 친구에게 많이 풀어내고 있었고 우울은 전염이 되는 것이라 남자 친구 역시 나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는 상태였다. 나에겐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선생님을 처음 만나기 전까지 심리 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혼동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실 정신과 진료를 꺼리게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가 그 혼동이기도 했다.
너무 힘들었겠어요.
많이 힘들었죠?
어떤 마음인지 잘 알아요.
충분히 공감이 돼요.
내가 생각하는 심리 상담이란 위에 있는 것들이다. 아마 나는 정신과 진료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이런 입에 발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아서 선뜻 병원을 찾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조금 당황했다. 우리 선생님은 세상 쿨하고 무심한 스타일이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선생님의 첫 질문이다.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두 가지 대답이 떠올랐다.
1. 집이 가까워서 걸어왔어요.
2. 잠을 좀 자고 싶어요. 약을 먹어서라도.
나는 2번을 골랐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잠을 못 자요? 나는 가장 쉬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최근 이사를 했는데 층간 소음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잘 못 자요. 사실이었다.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정신과 진료를 마음먹게 해 준 큰 계기였다. 어쩌면 핑계이기도 했다. 나는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야, 다만 층간 소음이 너무 심하니 약을 먹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른 하고 싶은 말은 없냐고 내게 물었다. 다른 하고 싶은 이야기. 막상 판이 깔리자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울컥했던 것 같다. 거절하는 게 힘들어요. 사람도 싫고. 처음엔 그런 말들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약을 뭉텅이로 받았다. 약의 개수는 나의 하자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고작 일주일 치 약이 무겁게 느껴졌다.
처음 먹어본 정신과 처방약은 역했다. 그럼에도 이 약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 않아서 잠자기 전 꾸준히 7일을 먹었다. 구역질이 나서 입맛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격히 살이 빠지기 시작한 것도 대충 그 정도다.
그리고 나는 그쯤 반려식물이라는 걸 처음으로 집에 들였다.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녀석들을 고르고 골랐다. 보스턴 고사리, 이오난사, 디시디아. 행잉 플랜트와 에어 플랜트가 주종목이었다. 나중엔 남자 친구의 도움으로 화원에 가 제법 큼직한 녀석들도 샀다. 사실 그 녀석들의 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 녀석들에게 붙여준 이름이 기억난다. 매튜, 네티, 연두, 그린, 애기, 페니.
그중 가장 먼저 나의 반려 식물이 된 녀석들은 연두와 그린이었다. 디시디아였다. 그리고 나는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초보자가 당연하게 하는 실수를 녀석들에게 하고 있었다. 지나친 애정과 지나친 물 주기. 어느 날 갑자기 똑똑 입을 떨구기 시작한 연두를 보며 나는 거의 오열을 했다.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프지 않았을 텐데. 반려인을 잘못 만나서 이 식물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다음 주에 선생님을 만나러 가서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게 휴지 한 장 건네주지 않아 진정이 된 내가 ‘휴지 한 장만 써도 될까요?’라고 물어봤었다. 선생님은 내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진단을 내리기 위해 차가운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게 마음이 편했다. 저 사람은 내게 공감해주기 위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 아니구나. 그다음부터 선생님이 오히려 편해졌다. 물론 선생님이 내 반려 식물들은 아픔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말해줘서 약간 웃음도 났다. 식물이 아픔을 느끼지는 못할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 반려 식물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다음 주말에 남자 친구를 불러 식물들을 데리고 화원에 갔다. 화원 사장님은 그저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줬을 뿐이라고 하셨다. 두 친구들에겐 열흘간의 금식 처분이 내려졌다. 물도 영양제도 줄 수 없었다. 나는 그게 또 미안했다.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남자 친구는 그런 나를 도와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우리는 원래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내게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 서로에게서 독립을 했다. 남자 친구가 이사한 집에서 내가 이사한 집까지는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였지만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그 시간들을 길에 버려주었다. 내가 지금의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준 가장 큰 조력자이다. 그 덕에 내가 해남에 내려와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다 느낄 정도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을 받자마자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이유는 나비였다. 아직 나비가 어리고, 내 껌딱지고, 내가 집을 비우면 나만큼 나비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남자 친구는 서운해하면서도 이해해주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결국 근 두 달을 남자 친구와 만나지 못했고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남자 친구가 해남에 내려올 일이 생겼다. 사실 남자 친구의 고향인 목포에 내려올 일이 생겼다는 말이 더 맞지만. 어쨌든 내려와 해남에도 올 수 있었다. 남자 친구는 드디어, 나를 만나지 못하게 한 나비의 존재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들도 오랜만에 내려온 남자 친구를 반가워했다. 다들 남자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했다. 남자 친구는 성실하고 우직하고 인내심이 깊었다. 그러니 나를 무려 8년이나 만났겠지. 사실 일기를 쓰지 못한 지난 연휴에 남자 친구를 만나러 경기도에 올라갔다가 우리가 만난 시간으로 말실수를 했다. 내 기억은 남자 친구를 만난 뒤 5년에 멈춰있었던 것 같다. 아주 당당하게 우리가 만난 시간을 5년이라고 내뱉었으니까.
그렇게 오랜만에 우리 집에 방문한 남자 친구는 첫날, 고생을 좀 했다. 알레르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눈이 따끔하게 아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쓰는 침대는 슈퍼 싱글 벙커 침대라 우리는 전기 매트를 깔고 바닥에서 잠을 이뤄야 했고 남자 친구는 침대가 아닌 구들장에서 잠을 잘 못 잔다. 그래도 밤 9시만 되면 사방에 어둠이 내리고 인위적인 소음이 사그라든 시골의 밤은 평온했던 모양이다. 아침 6시가 되면 시작되는 하루와 우사의 송아지 우는 소리, 나비의 젤리 펀치도 그 평온함에 더해졌다. 남자 친구는 우리 집의 그 고요를 즐길 줄 알았다. 게다가 우리 엄마의 음식도.
남자 친구는 해남에 내려와 있는 동안 휴식을 즐겼다. 그리고 내게도 편리함을 선물해줬다. 도시와 달리 배달이 불가한 시골엔 야식이 먹고 싶어도 그저 참아야 했다. 더불어 나는 면허도 차도 없기 때문에 읍내에 나가 먹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그 욕구를 해소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남자 친구는 집에 머무는 동안 그런 것들을 해주었다.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먹고 싶은 걸 잔뜩 먹었다.
그리고 나비의 병원비를 부담해줬다. 남자 친구가 나비에게 그런 호의를 베푼 것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나비와 함께 지내는 내가 좋아 보여서. 나비가 나를 많이 좋아지게 만들어서. 남자 친구는 나비가 건강하게 오래 내 곁에 있게 하기 위해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 비용을 부담했다. 원래는 내가 혼자 부담했어야 하는 나비에 대한 것들을 함께 나눠 들어준 것이다.
우리는 제법 힘겨운 시간을 지나왔다.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있었고 힘겨운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이제는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곧 남자 친구는 경기도 생활을 정리하고 해남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우리의 일생일대의 꿈은 엄마가 가진 커다란 땅에 가족과 함께 살 번듯한 집을 짓는 것이다. 그걸 위해 조만간 약소하게 우리만의 집을 지을 예정이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나비도 함께 할 그런 날이 있는.
*브런치 사용이 서툴러 매거진을 만들다가 바보같은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에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