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클 Oct 17. 2022

책임의 무게

나비가 내게 해 준 인생 교육


이동장을 처음 만난 나비


오늘은 남자 친구 덕에 조금은 가볍게 진행하게 된 나비의 중성화 수술에 대한 기록을 하려고 한다. 나는 사실 나비가 수컷인지 암컷인지를 아주 오래 고민했다. 처음엔 수컷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 암수 구분법을 인터넷에 열심히 찾아본 결과 나비의 성별이 모호해졌다. 그래서 병원 예약을 할 때도 성별을 모른다고 대답했고 수술비도 암수 모두의 것을 안내받았다. 병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나비가 남자 애인 것이 확실해졌다. 유명한 밈이 떠올랐다. 내가, 내가 고자라니!


하지만 나는 이미 나비의 중성화 수술을 결심했기에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나는 동물병원에 온 것이 처음이라 접수대에 계셨던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수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아이가 마당을 돌아다녀서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발톱을 자르지 않았어요. 잘라 줘야 하나요? 수술한 이후에 아이가 아파하진 않나요? 혹시 집에 돌아가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죠?


대부분 고양이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보호자들이 겁에 질려 호들갑을 떠는 편이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마취 주사는 조금 아파도 수술 후에 아프진 않아요. 다만 그루밍을 너무 자주 하면 넥카라 해주세요. 발톱을 잘라주시는 게 좋아요. 어차피 마취하니까 그 사이에 제가 잘라줄게요. 다음부턴 직접 해주시면 되고 빈도는 보통 2-3주에 한 번 정도예요.


나는 그날 몹시 긴장했고 걱정이 많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어디가 아파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어린 짐승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나중엔 모두가 힘들게 된다.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때 나비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두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나는 나비가 중성화 수술을 하던 날, 나비의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걱정하느라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읍내에 나온 김에 심부름을 몇 개 해야겠다. 나비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병원을 지킬 수 없었고 바쁘게 읍내를 돌아다녔다. 선생님이 알려준 수술 시간은 40분가량. 나는 가능하면 나비의 수술이 끝나자마자 나비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나비가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나비는 수술을 마치고 이동장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너무 짠하고 미안해서 후다닥 다가가 이동장 위에 내 옷을 덮어 시야를 가려주었다. 고양이들은 이러면 안정을 취하기 쉽다고 배웠다. 그 행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은 밥 안 먹을 수도 있어요. 내일 아침에 아마 많이 먹을 테니까 급하게 먹지 않게 봐주세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나비를 태우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나비는 마취에 정신이 없는지 울지도 않고 계속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이동장을 나와 돌아다니면 다칠 수 있으니 몇 시간 정도는 이동장에 두라던 선생님의 조언이 떠올라 나비를 이동장 채로 방에 두었다. 하지만 열린 부분이 있었는지 나비는 방 밖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평소라면 울면서 돌아다닐 텐데 입을 꾹 다물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자기는 너무 걱정이 많아. 나비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걱정을 줄여봐.


남자 친구가 내게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비가 마실 수 있도록 깨끗한 물을 준비해두고 밥도 준비를 해두었다. 나비는 자꾸 돌아다니려고 했고 나는 혹여 나비가 어딘가 부딪히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갇혀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가둬두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비는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집에 도착해 3시간 만에 밥과 물을 먹고 5시간 정도 되었을 때는 평소와 똑같았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회복력이 어마어마했다. 저녁이 되었을 때는 오늘 수술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쌩쌩 돌아다녔다.          

이불을 숨숨집 삼아 노는 나비


나는 아마 이때도 나비의 정체성이 마당냥에 가깝다고 여기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나비의 마당 산책이 건강한 생활 중 하나라도 여겼다. 나비는 하네스와 리드줄을 하고도 산책을 잘하는 편이었다. 나비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여주면서도 늘 가까이에 있어 위험을 막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공기 좋고 물 맑고, 게다가 고양이들이 좋아한다는 자연의 흙도 많았다. 천연 사냥감들이 사방에 널려있고 운 좋게도 우리 집은 주변에 민가도 없고, 딱히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늘 가족들이 마당을 돌아다니며 나비를 봐줄 수 있었다. 나비 역시 마당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비의 중성화 전후로 집 근처에 다시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옹이를 다치게 한 녀석의 새끼들일지도 몰랐다. 나비보다 어린 고양이들과 가족들이 자주 마주치기 시작했고 나 역시 발걸음을 자주 하지 않는 창고 쪽에서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비의 산책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외부에 있는 고양이들과 접촉은 감염의 위험도 있었으며 만에 하나 다치기라도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일이었다. 혹시 내가 집에 없을 때 녀석이 익숙해진 마당을 배회하다 다른 곳으로 영역을 넓히게 돼버리면 나는 나비를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ㄱㅇㅇ


나는 나비를 집냥이로 키우기로 결심했고 그로 인해 아빠와의 갈등이 다시 한번 시작되었다. 아빠는 나비를 애초부터 탐탁잖게 여겼으므로 언젠가는 부딪힐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우리 아빠에게는 아주 커다란 단점이 있다. 바로 대화 방식.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만 객관적, 주관적 관점 모두에서 아빠는 ‘좋은’ 아빠는 아니다. 아빠의 대화는 보통 일방적으로 던지는 형태였고 되돌아올 상대의 말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론 매사에 그렇다는 건 아니다. 만약 모든 대화가 저런 식이었다면 내가 아빠와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좋은 아빠가 아닌 우리 아빠는 단 한 마디로 나를 반발하게 만들었다.


고양이 내보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책임’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 그리고 나는 이미 누가 봐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는 건, 나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나비의 묘생에 너무 많은 손길을 뻗은 상태였다. 나비는 이미 내게 길이 들었다. 그런 어린 고양이를 내보낸다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이란 말인가.


내가 나갈게.


사실 이 말을 하기 전에 내 목까지 차오른 말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우리 가족 모두를 아프게 할 말이라 차마 입 밖으로 내보내지는 못했다.


[만약 나비 내보내서 죽게 되면, 나도 죽을 테니까 무덤에 같이 묻어줘.]


내가 우울증을 앓으면서 이상하게 가까이하게 된 단어가 죽음이었다. 나는 선생님한테도 늘 말했지만 죽고 싶지 않았고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건 늘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언제든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늘 마음속으로 유서를 쓰곤 했다. 이 이야기를 아는 건 정신과 선생님뿐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우울증으로 물의를 일으킨 건 내가 처음이 아니다. 우리 언니도 가벼운 산후 우울증이 있었으며 내 남동생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 그런 모든 것을 지켜봤으며 함께 상처받았던 내가 가족들 앞에서 죽음을 논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 말을 꾹 참았다.


나는 아빠를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에게 꼭 한 가지는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의 그 무뚝뚝한 대화 방식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하고는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지내면서 이제는 잘 지내는 딸내미마저 밀어낼 생각이냐고.


이렇게 일기를 쓰다 보니 내 인생에는 설명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는 걸 느낀다. 왜 아빠와 남동생은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는지, 남동생의 우울증은 어디서 왔는지. 그로 인해 가족들이 받은 상처와 내가 받은 상처는 무엇인지. 그런데 아빠의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는 걸 보니, 언젠가는 다 풀어내질 이야기라는 건 확실한 듯하다.


여하튼, 아빠와는 그런 이야기로 잠시 소란이 있었다. 나는 그날 남자 친구에게 나비와 피난을 가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홧김에 아빠 앞에서 투덜거리며 부러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남자 친구를 비롯한 다른 가족 모두가 우리 집에서 나비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나비는 우리 가족들이 하루에 잠시라도 모여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나 역시 나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몇 번씩 웃음이 나는 상황이니 나비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은 생기를 불어넣어줬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가족 모두 아빠가 나비의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빠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직 집을 나가지 않았고 나비의 짐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빠도 이제 반쯤 포기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가족 모두가 아빠가 나비를 내보내라고 했던 날을 없던 일 취급하며 지내고 있어서 그런 걸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대화 방식의 문제로 좋은 아빠라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아빠를 정말로 사랑한다. 우리 삼 남매 중에서는 아빠와 가장 격 없이 살갑게 지내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 증거다. 다만, 나비에 대해서라면 아직 우리는 대화가 더 필요하고 더 많은 벽을 넘어야 할 것이다.

이전 06화 내가 가장 뿌듯한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