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미안해
나는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타노스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자원은 한정적이고 인간은 많은 것을 훼손하며 살아간다.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지만 마치 전유물인 듯 휘두른다. 나는 타노스와 같이 스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늘 기도한다. 어느 날 지구가 반으로 똑 갈라지길, 달이나 태양이 사라지길. 지구만 한 운석과 정면충돌은 어떨까? 이게 힘들다면 인류의 절반 이상을 죽일 강력한 전염병. 박진감 넘치는 좀비 아포칼립스도 나쁘지 않다. 나는 사람이 싫다. 전 세계의 사람이 모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렇다면 처참하게 죽어가는 북극곰도, 작살에 찔려 피 흘리는 고래도, 바로 가까이에 학대당하는 고양이도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인간이 늘 문제나. 나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려지는 죽음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비와 함께 살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치과 치료 때문에 자주 방문하는 광주의 버스 터미널의 광고판이 그러하다.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길냥이들을 위한 문구가 적인 광고판은 그렇게나 내 삶 근처에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터미널을 걷다 발견한 광고판에 나는 괜히 울컥했다. 길에 사는 고양이의 수명을 길어야 2~3년. 여러 가지 이유로 수명의 절반도 살지 못하는 녀석들.
그 외에도 집 주변의 농지에 어설프게 묻어진 어린 고양이들의 감자 역시 그러하다. 나는 나비와 함께 살기 전에는 고양이들이 모래에 싸 둔 대소변을 맛동산이나 감자라고 칭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비가 내게 알려준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렇게나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모금 또는 기부 광고,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북극곰들을 보며 늘 안타까워한다. 나중에 내 생활에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면 꼭 북극곰을 위한 후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북극곰이 안타까운 반면, 나는 늘 환경오염에 앞장서고 있었다. 여름엔 에어컨과 냉장고, 겨울엔 온수 매트와 스토브와 같은 전자 제품을 늘 애용했고 일회용품의 편안함에 가슴이 옹졸해지는 나날들도 많다.
이걸 무엇이라 비유해야 할까. 동전? 아니. 동전의 양면은 장단점이다. 마땅한 비유를 찾지 못하겠지만 인간은 늘 모순적이다. 그러면서 자기 위로를 한다. 나 하나 달라진다고 북극곰이 평화롭게 살지는 못할 거야. 물론 내 이야기다. 이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바꾸었다. 나비는 내 인생에 즐거움과 평화로움, 따스함과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렇다면 나도 나비에게 그런 것들을 주면 어떨까? 하루 종일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즐겨보는 사냥놀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보금자리,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고 걱정한다는 포근함, 많은 양을 주지는 못하지만 소소하게 먹는 간식.
왜 이렇게 거창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오늘의 기록은 ‘나비의 행복을 찾아서’다.
초보 집사의 입장에서 기록하는 것이니 베테랑 집사들은 절대 분노하지 말 것. 뉴비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나는 나비와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후 어설프지만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했다. 고양이의 간식은 사료와 비교하면 하루에 10% 이하로 급여할 것. 고양이에게는 캣 글라스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보통은 보리, 귀리 등의 어린 새싹이라는 것. 사료는 무척 다양한 종류로 생산되고 있다는 것. 귀를 닦아줄 것. 대소변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는 것. 고양이들도 영양제가 있다는 것. 그것들은 너무나 방대해서 초보 집사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차근차근 바꿔 나가기로 했다. 우선 나비의 주식인 사료다. 엄마가 애옹이를 데려오면서 사온 대용량 건식 사료를 나비가 이어서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첫 번째로 사료의 종류를 찾아보았다. 건식, 습식. 습식은 캔과 파우치가 있다. 다음은 고양이의 연령. 4개월 미만은 보통 마더 앤 베이비, 1년 미만은 키튼, 1년 이후부턴 어덜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초보 집사의 기준에서 정리한 내용이다.
나는 이후 현재 나비가 먹고 있는 사료의 포장지를 유심히 살폈다. 전 연령용, 주재료는 닭고기와 연어. 사료는 작은 알갱이라 나비가 씹는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건식 사료는 사료의 크기, 모양 등으로도 여러 가지로 나눠지니 더 이상의 정리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여하튼, 건식 사료는 수분 함유가 낮다. 나는 물을 잘 먹지 않는 나비를 생각하며 사료를 바꿔보기로 한다.
한동안 주식 캔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간식처럼 생겨서 영양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파우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키튼 파우치는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가격이 사악하다는 한 브랜드의 젤리, 그레이비 형태의 파우치를 주문했다. 잘 먹지 않으면 바꿔줄 생각이었다.
사료를 바꾸고 나니 먹이고 있던 간식들도 슬슬 걱정이 되었다. 나비는 정말 정말 물을 잘 먹지 않았는데 내가 손가락에 물을 묻혀 코를 살짝 톡 두드려주면 혀로 날름 핥아먹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스스로 물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내 손을 따라와 물을 마시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인지를 시켜줘야 하는 수준이라 음수량은 처참했다. 더불어 나비는 주로 사람이 먹는 컵에 담긴 물을 좋아했다. 내가 머그잔에 물을 담아오면 달라는 듯 내 얼굴을 보며 야옹야옹 울었다. 책상에 컵을 올려두고 잠시 한눈을 팔면 머리를 박고 물을 마시곤 해서 자주 놀랐다. 그래서 나중엔 일부러 컵에 물을 떠서 책상 위에 올려두곤 했다.
그쯤 나비가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는 트릿과 열빙어였다. 트릿도 열빙어도 모두 건조 간식이라 나는 열빙어를 먼저 끊기로 했다. 나비는 열빙어를 정말 좋아해서 열빙어가 보이면 멀리서도 뛰어오곤 했기에 조금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나비의 건강을 위한 거니까 어쩔 수 없었다. 주문한 간식은 캔 수프와 파우치에 들어있는 찐 간식이었다. 건조가 아니니 수분도 넉넉하고 절반씩 나눠서 주니 보관만 잘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 후에 눈이 간 건 캣 글라스다. 나비는 마당 산책을 나가면 잡초를 씹어 먹곤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참 이상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도 아니고 고양이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그에 대한 해답도 얻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하루에 2/3를 수면으로 보내고 깨어있는 시간의 25%는 그루밍을 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털을 어쩔 수 없이 먹게 되고 소화가 되지 않아 뭉쳐있던 헤어볼을 토해내기 위해 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어린싹에는 여러 영양분도 있으니.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캣 글라스 재배 키트를 같이 주문했다.
이틀 뒤, 택배가 도착했다. 나는 주식 파우치, 간식 순으로 정리를 했다. 캣 글라스 재배 키트는 사용법을 정독한 후에 바로 재배를 시작했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 캣 글라스는 곧 나비의 최애 간식이 된다. 파우치 위에 솔솔, 간식 위에 솔솔 뿌려주면 사각사각 씹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주식 파우치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젤리와 그레이비 타입 모두 나비가 좋아했고 나는 건식 사료와 1:2 정도로 급여를 하며 동일 제품을 추가로 주문했다.
그렇다면 간식은? 이게 바로 나비의 행복일 것이다. 나비는 찐 생선류의 간식을 너무나도 잘 먹었다. 나는 캣 글라스를 예쁘게 수확해 함께 급여를 했고 나비는 이제 내가 간식 상자 가까이에만 가도 난리가 나서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열빙어의 빈자리는 느낄 틈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간식들로 인해 나비의 여동생(또는 누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고양이 별로 먼저 간 애옹이와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나비 외에 이웃 어르신의 댁에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더 남아있다. 이름은 ‘고양’이다. 어르신은 고양이에게 밥을 줄 때마다 ‘고양아!’라고 부르셨고 그러면 어딘가에서 놀던 고양이는 꼬리를 세우고 야옹거리며 어르신에게 달려온다고 했다.
왜 고양이의 이야기가 나오냐면, 나는 나비에게 간식을 주다 문득 내게 나비를 보내주신 어르신이 떠올랐다. 그 집에 남은 한 마리 고양이는 나비가 우리 집으로 떠난 직후, 밤마다 나비를 찾아 마당을 돌아다니며 울었다고 했다. 그때가 아마 생후 2개월이 막 지난 후라 어미도 없는 어린 고양이 둘이서 서로 체온을 나누며 지내고 있었으니 서로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게다가 나비와 달리 고양이는 완벽히 마당냥이다. 70세가 넘은 어르신이 키우고 계시니 환경 또한 나비보다 부족할 게 뻔했다.
나는 출근을 준비하는 엄마에게 어르신의 댁을 방문할 예정이 있는지를 물었다. 목요일에 방문 예정이라는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아침에 출근 전에 나 좀 불러. 엄마는 이유를 물었다. 고양이네 간식 주고 싶어서. 엄마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목요일. 나는 트릿 반 통, 캔 수프와 찐 생선, 츄르를 챙겼다. 엄마에게 해당 간식들을 어떻게 먹이는지 설명을 해주고 꼭 어르신께 전달해 달라고 했다. 고양이도 소소한 행복을 조금 느꼈으면 해서.
그날 저녁, 퇴근한 엄마에게서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도 봤다. 고양이는 치즈였다. 꼬리가 조금 짧았으며 어르신이 하도 이것저것 많이 퍼주셔서 배가 볼록하고 나비보다 몸집이 조금 더 크다고 했다. 어르신은 고양이를 정말 예뻐하셔서 드시던 고기들을 자주 나눠주곤 하셨다고. 그래서 우리 나비보다 몸집이 더 크다고 했다.
고양이는 간식을 정말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엄마가 어르신께 고양이 간식을 주는 법을 알려드리자 어르신은 트릿을 먼저 꺼내 고양이에게 주셨다고 했다. 고양이가 연어 트릿을 너무나 잘 먹자 어르신은 내가 보낸 트릿 반 통을 그 자리에서 다 주실 기세였다고 한다. 고양이가 야옹야옹 울며 더 달라며 자꾸 보채자 예쁘다 예쁘다 하시며 계속 주신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먹으면 고양이가 설사를 한다며 어르신을 말렸다고.
야옹야옹-
아유, 예쁘다. 더 먹을래?
야옹야옹-
오구, 예뻐라. 더 먹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나비의 간식 절반을 보낸 것뿐이었는데 그 간식들로 고양이도 행복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르신도 행복했다는 이야기가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최근 5년 간 들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평화롭고 벅찼다. 아쉬운 점은 그 이후로도 간식을 보냈으나 얼마 뒤 엄마의 근무지가 옮겨지면서 더 이상 어르신을 뵙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양이는 아마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어르신이 하도 예뻐하니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있겠지. 부디 아프지 말고 어르신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원래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자.
그렇게 주식과 간식을 고른 나의 다음 행선지는 장난감이었다. 나비와 동거한 초반에 우리 집에 있는 나비의 장난감이라곤 낚싯대와 스크래처가 전부였다. 나비가 좋아하는 숨숨집은 내 서랍이었고 리빙박스였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다. 결국 다른 형태의 스크래처 하나와 낚싯대의 미끼를 추가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후 고양이의 워너비 장난감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터널이었다. 사냥 본능을 깨워주는 공이 들어간 탑 장난감도 꽤 흥미가 생겼다. 나는 이것들도 모두 장바구니에 담았다.
도저히 질리지가 않는 쇼핑 삼매경의 끝에 내 눈에 닿은 것은 영양제였다. 일전에 병원에 방문했을 때 영양제는 6개월 이후부터 급여해도 괜찮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비도 곧 6개월(추정)이 된다. 영양제는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혼란스러웠다. 요로계 질병이 흔한 고양이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유산균이 대표적이었다. 구강 질환 역시 고양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기에 덴탈케어 제품들도 많았다. 그런 제품들을 볼 때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이렇게 백수 생활을 즐기다가는 나비를 완벽하게 케어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를 위한 제품은 내가 쓰는 제품들보다도 가격이 높았다. 사람의 영양제는 천차만별이라 가격대도 다양하지만 고양이를 위한 제품은 종류가 다양하긴 했으나 사람의 것보다는 적었고 가격대도 비슷하게 형성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나는 식구들이 쓰는 제품에 묻어가면 그만이었지만 나비는 그럴 수 없으니, 나는 조만간 나비를 안정적으로 케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비는 정말 나의 인생을 많이도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