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옹이의 죽음이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작고 어린 고양이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울다가 퉁퉁 부어버린 눈을 하고 그 다음날 늦은 오후에 눈을 떴다. 약 때문인지 머리가 멍했다. 침대를 내려와 약간은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를 맞으며 물을 한 잔 떠먹고 나오니 마당에서 무언가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그머니 밖을 내다보았다.
할아버지가 마당 한 구석에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울타리? 조금 더 자세히 보니 견사와 비슷한 형태였다. 사실 이때의 이야기는 나비와 시끌벅적하게 살게 되고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엄마를 통해 듣게 되었다. 애옹이의 죽음에 힘겨워하는 나를 보면서 할머니가 엄마에게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겐 고양이가 오면 지낼 묘사를 지어달라고도 하시고.
나중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이 따듯해지면서도 죄송스러웠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처음 고향에 돌아왔을 때 내 모습이 할머니에겐 마치 시체처럼 보였다고 말씀하셨다. 마르고 핏기도 없고 생기도 없어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애옹이의 죽음 앞에서 펑펑 울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으셨고 애옹이의 빈자리를 다른 고양이와 교감하게 채우길 바라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이웃집 마당냥이네 어르신께 고양이 별로 간 애옹이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하셨고 어르신은 나비를 보내준 것이다. 애교 많고 예쁜 아이를 데려다가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냈음에도 어르신은 내가 나비와 함께 이 힘든 경험을 이겨낼 기회를 기꺼이 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비가 깜깜한 밤을 혼자 버텨내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비를 보면 애옹이가 떠올라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비를 보면서 하루에 꼭 한 번은 속으로 하는 말.
애옹아, 미안해.
애교를 부리던 애옹이
그래서 나비는 애옹이를 위해 주문한 물건들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애옹이를 위해 샀지만 애옹이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것들을. 스크래처, 장난감, 츄르를 비롯한 간식들.
애옹이의 몫까지 나비가 행복하길 바라지만 과연 이게 나비에게는 미안하지 않을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비의 행복은 나비의 것이지 애옹이의 것이 아니다. 내가 나비를 애옹이의 대신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나비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이 생각에 잠시 갇히곤 한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나비를 사랑해야 애옹이에게도 나비에게도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었다.
복잡한 마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는 듯 나비는 애옹이를 떠나보낸 충격에 빠져있던 나를 일상으로 빠르게 돌려놓았다. 낯을 가리던 나비는 내가 익숙해지자 열어둔 창문을 통해 마당과 내 방을 오가며 이곳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몇 장 없는 애옹이의 사진을 보고 또 보다 나비와의 시간들은 사진으로 남겨보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쉬는 동안엔 휴대폰을 잘 확인하지 않는 내가 매일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어서 다니게 된 시작이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더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장실, 그 안에 들어갈 모래, 숨숨집, 캣타워. 나비와 사냥놀이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고양이용품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스크래처를 보자마자 타고 올라 박박 긁어대던 나비
그렇게 나비는 점점 집냥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비를 볼 때마다 웃으며 쥐는 안 잡고 맨날 집에서 논다고 구박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비를 만져주는 손에 애정이 가득해서 나는 엄마도 애옹이의 죽음이 그저 덤덤하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왜 고양이를 집안에 들이냐고 하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어느새 침대 위에서 TV를 보며 나비를 쓰다듬고 계셨다.
나비 덕에 내 생활도 점점 농부가 되어갔다. 나비는 보통 저녁 9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내 침대 위로 올라가 잠을 잤다. 내가 게임을 조금 늦게까지 하는 날이면 자다가 일어나 책상 위 또는 내 다리 위에 누워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리고 아침엔 보통 6시 30분이 되면 기지개를 켜며 말랑한 젤리로 일부러 나를 툭툭 건드려 깨운다. 그리곤 침대를 내려가 물과 사료를 조금 먹고 창문 앞에 앉아 문을 열어달라고 울기 시작한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창문을 열어주고 나비가 화단에서 뛰노는 걸을 지켜본다. 혹여, 그때의 그 들고양이가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건 우리 가족들도 마찬가지라 나비가 마당에 있는 모습이 보이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보초를 서게 되었다. 마당 잔디밭을 뛰어놀고 화단의 땅을 파며 노는 나비를 가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비는 우리 가족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마당의 정원수를 캣타워 삼아 등반하는 나비
사실 이때까지는 나비의 정체성이 마당냥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나비가 출입할 수 있는 범위였다. 우리 집은 이전에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 관리동처럼 지었던 집이 점점 증축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형태를 하게 되었다. 게다가 방이 3개라 방1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방2에 엄마와 아빠, 방3에 남동생이 지내고 있어 내가 내려오면서 가벽을 세워 방4를 만들었다. 그 방4가 현관문 밖에 있다는 게 내 방이 아주 특별한 이유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우리 집은 조금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해를 돕고자 급하게 그려온 평면도
거실2와 방4는 사실 집 외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나비가 오기 전에도 내가 거실2를 벗어나는 건 한여름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에어컨을 찾아가는 경우뿐이었다. 방4는 에어컨을 달 공간이 마땅치 않아 힘든 여름을 보냈었다. 이제는 날이 추워져 카펫을 깔고 빈백을 끌어와 창가에 두었다. 창가 옆 빈백은 나와 나비의 낮잠 명소다.
무튼, 나비는 암묵적으로 거실2와 방4에서만 지냈다. 거실1로 들어가는 건 왜인지 가족 모두가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와서 2주가 지나고 나서야 나비는 거실1과 방1, 방3까지 자유롭게 드나들기 시작했고 종래엔 주방을 침범했다. 이때 가장 큰 트러블은 아빠였다. 아빠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비를 보면 톡톡 만져보거나 한 마디씩 말을 걸곤 했다. 아빠와 나비의 관계는 아직도 커다란 숙제다. 이 이야기는 아마 의식의 흐름을 따라 다시 한번 내 일기에 등장하게 될 것이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기록할 예정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사실 브런치의 작가가 되기 전엔 브런치가 도대체 뭘 하는 공간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작가 신청을 한 건 이번 연휴 전날인 9월 30일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비와의 일상을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초보 집사의 냥냥일기와 전원일기를 모두 쓰고 싶었던 내게 인스타그램은 조금 버겁고 답답한 공간이었다. 그때 문득, 최근에 작가가 되었다며 링크를 보내줬던 언니가 생각나 브런치에 접속해 아무렇게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작가가 아니면 글을 발행할 수 없다는 걸 몰랐다. 그렇게 쓴 일기를 등록하려고 했을 때가 돼서야 브런치의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충동적으로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작가가 되었다는 알림이 온 것이다. 그 후엔 작가 신청을 하며 적었던 일기를 발행하고 적어뒀던 일기를 추가로 발행했다.
별거 없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브런치에 다른 고양이 집사님들의 이야기가 더 있을까 해서 둘러보던 나는 조금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거였나? 브런치 작가가 되는 방법과 노하우, 조언들을 적어둔 글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나비의 사진을 올리면서 어깨가 으쓱해져 나 재능 있을지도? 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