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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클 Oct 04. 2022

주소 : 즐거운 나의 집 가는 길 1005-5

귀농한 초보 집사와 나비의 일상 기록

[즐거운 나의 집 가는 길 1005-5 : 초보 집사와 고양이 나비가 사는 곳] 01


여기는 해남이다. 흔히들 ‘땅끝마을’로 알고 있는 전라남도 끝자락의 동네.

나는 대략 3개월 전, 이 한적한 곳에 정착했다.


이곳은 사실 내 고향이나 다름이 없다. 출생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하지만 나는 이곳을 잘 모른다. 내가 여기에 있었던 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이었다. 등하교가 힘든 시골 동네라 부모님은 나를 외조부모님이 계셨던 다른 지역으로 보내셨다.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상경을 했으니 낯선 곳이면서도 친근한 곳이다. 내가 여기서 보낸 시간은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과 동일하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도 짧게나마 적어보고 싶지만 오늘의 목표는 이 소소하고 단출한 전원일기의 첫 장을 쓰는 것이므로 사소한 건 건너뛰기로 하자.


여하튼, 나는 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이 서른이 넘어 왜 여기로 ‘돌아’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나 해야 하는지 나는 제법 신중하게 고민해야 했다. 생략하자니 아쉽고, 적어보자니 끝도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이건 내 일기니까 그냥 쓰고 싶은 것들을 두서없이 적기로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의 병이 생겼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섭지만 누군가를 만나면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일지라도 그 기억 속에 ‘괜찮은 사람’으로 남겨지길 바랬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병이 깊어졌다. 사람이 싫어졌다. 더 이상 서울에서의 삶이 어렵다고 판단이 되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의 배려로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올해 6월 말의 일이다.


첫 달은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냈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자연 속에서 휴식을 즐겼다. 하지만 마음의 병에서 시작한 불면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아 28일에 한 번 서울의 병원을 가야 했다. 그 사이 해는 점점 뜨거워지고 완연한 여름이 되었다. 나는 이상하게 더위로 고생을 했다. 살면서 더위가 힘들어본 적이 없어서 체중이 줄었다. 겨우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건 8월 중순이 되어서였다. 시골의 여름은 이때 거의 끝난다, 아침과 저녁의 기온이 확연하게 떨어지기 시작하고 여름 이불은 이때가 되면 모두 장롱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나비를 만났다.


아주 작고 어린 고양이. 조금 낯을 가리지만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는 녀석.


나비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이유는 ‘쥐잡이’가 목적이었다. 우사가 가깝고 논밭 사이에 있는 집에는 늘 벌레와 쥐, 들짐승들이 가득했고 가족들은 이 작은 고양이가 우리를 도와주리라 믿었다.


우리 집에 온 첫날, 220823


나비는 작고 어렸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스러워서 나는 한낮의 마당에서 나비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작은 고양이가 빛이라곤 없는 마당에서 밤을 보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 엄마를 도와 우사의 일을 끝낸 나는 결국 나비를 작은 상자에 담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다. 그래도 나비를 내보낼 수 없었다.


우리 집은 주변에 민가가 없어 가로등 불빛도 닿지 않는다. 밤이 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게 되는. 그런 집 마당에서 이렇게 어린 고양이는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어설픈 화장실을 만들어주고 물과 사료를 담아 구석에 두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내 침대는 벙커 침대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고 어린 나비에게는 조금 어려워 보였다. 나비는 처음 온 곳이 낯선지 내 작은 방을 탐색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이제 궁금하지도 않은 벌레 두 마리를 사냥했다. 그러더니 나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몸을 동그랗게 말더니 나비는 곧 잠이 들었다.


우리의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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