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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클 Oct 04. 2022

나와 나비 사이의 애옹이

내 인생의 첫 털 짐승과의 첫날밤


첫날밤, 220823_003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아팠다. 아직 벌레가 많은 이 동네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라 혹여 이름 모를 벌레가 밤새 내 몸을 타고 오르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몸이 굳어 있었다. 거기에 수시로 잠에서 깨어 나비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그 결과가 근육통이었다. 어깨를 주무르며 몸을 일으키자 이미 잠에서 깬 나비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털 달린 짐승이랑 밤을 보내다니.


나는 단 한 번도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가끔 지나치게 멀리 보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작은 짐승들을 거부하게 된 이유다. 이 아이들은 언젠가 나를 떠날 것이다. 내가 본 멀리는 이런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이야기다.


반려 동물. 나의 삶을 반려하는 존재.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언젠가 떠나갈 존재. 나는 개도 고양이도 그 어떤 동물과도 함께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집에는 푸르른 반려 식물들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가끔은 간식을 먹는. 그들의 기분은 잎의 색과 가지의 모양, 예쁘게 핀 꽃들로 알 수 있다. 그들은 너무 과한 관심을 바라지 않지만 너무 멀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 존재들이라 내게 적당한 거리감을 알려준 스승이기도 했다. 이사를 하면서 여러 사정으로 다 챙기지 못했기에 나는 이곳에 와서도 소소한 반려 식물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반려식물, 221004_001



그런 내 일상에 털짐승이라니.


이 작은 고양이는 하룻밤을 함께 보내더니 내가 많이 친근해졌는지 손을 핥거나 몸을 비비며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게 낯설고 무서웠다. 스윽 밀어내니 또 살랑살랑 다가와 근처에 몸을 눕히는 나비를 보며 나는 이제 돌아갈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창문 밖으로 부모님이 우사로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창문을 열고 나비를 창틀에 올려주었다.


밤이 지나갔으니, 이제 그만 나가.


어린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호기심이 생겨 냉큼 잔디밭을 내달렸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나비가 꽃밭을 뛰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닥을 뒹굴던 휴대폰에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아주 흔한 택배 도착 안내 문자였다. 하지만 나에겐 이틀 전의 충격을 떠올리게 하는.


고양이 스크래처 배송 알림 문자는 내 감정을 아침 일찍부터 뒤흔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일생일대의 사건.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한다.


사실 나비에게는 두 명의 형제가 있다. 애교가 많고 사람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 골골송을 부르던 애옹이,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마당을 뛰놀며 엄청난 친화력으로 강아지와 놀고 있다는 아이.


나는 오늘 애옹이의 이야기를 일기로 남길 생각이다. 애옹이는 잊혀지면 안되는 존재이고 나는 애옹이를 잊을 생각이 없으니까. 다만 애옹이와의 일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기에 애옹이에 대한 이야기를 꼼꼼하게 수정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엉망진창일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써보기로 한다.


사실 애옹이와 나비는 먼 이웃집의 마당냥이었다. 여느 농촌과 같이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적 특성 덕에 엄마는 독거노인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엄마는 매일 어르신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를 하고 방문도 한다. 그렇게 방문하던 어느 이웃집의 마당에서 애옹이는 내가 아닌 엄마와 첫 묘연을 맺었다. 엄마를 보면 달려와 무릎에 눕고 애교를 부리는 작은 고양이. 엄마는 어르신의 권유로 애옹이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다. 마당에서 지내며 쥐를 잡아줄 다른 의미의 ‘반려묘’로 말이다.


나는 애옹이가 무섭고 낯설었다. 언제 봤다고 달려와 다리에 몸을 부비고 골골거리며 발라당 배를 보여주는 애옹이는 너무 작고 예뻐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나쁜 버릇은 이때도 건재했다. 어차피 얘는 곧 떠날 텐데 정을 주면 결국 나만 힘들 거야.



애옹이, 220818_001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을 했다. 부러 마당에 잘 나가지 않았고 애옹이가 집안에 들어오고 싶어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저 물그릇의 물을 갈아주고 사료를 담아주고. 반드시 필요한 일만 하기로 했다. 나비가 몸을 숨길 만한 상자를 찾아 먼지를 털고 폭신한 수건을 깔아 주고 내가 아끼던 인형 하나를 그 안에 넣어준 건 아마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스크래쳐와 츄르를 주문한 것도 아마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우리 가족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집 근처엔 고양이가 없었고 우리는 애옹이를 마당에서 키웠다. 마당에는 애옹이의 사료 냄새가 났다.


곧 해가 지고 밤이 깜깜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냥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평소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등 뒤로 난 창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던 것.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방의 창은 카페의 폴딩 도어들 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라 작은 고양이도 쉽게 창틀에 올라올 수 있었다. 애옹이는 가로등 조차 없는 깜깜한 밤에 따뜻해보이는 불빛을 따라 내 방 창문까지 온 것이다. 나는 창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애옹이는 열리지 않은 창문 앞에서 한참 울다가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일어나자마자 마당을 내다보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당의 평상에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무언가를 손질하고 계셨다. 그 평상 아래서 애옹이가 벌레를 사냥하며 놀고 있었다. 애옹이는 겨우 내 두 손에 몸을 다 가릴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래도 사람을 좋아했고 호기심이 많아 마당과 마당에서 이어진 창고를 오가며 우리 집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다른 것들은 하지 않았다. 애옹이의 상자가 더러워지지 않았는지 확인했고 날이 더워 수박을 한 조각 담아다 주었다.


그 다음 날에는 할아버지가 애옹이의 장난감을 만들어주셨다. 그냥 작은 수세미를 실에 달아주신 것 뿐이었지만 애옹이는 그 장난감이 마음에 든 듯 냥냥펀치를 하다 물어 뜯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결국 애옹이의 장난감도 주문을 했다. 주말이라 주문 내역만 늘어갔다. 담주에 받을 수 있겠네. 막연히 생각하고 또 하루가 지났다.


사건이 터진 건 애옹이가 우리 집에 온지 5일째가 되는 날 아침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햇빛이 뜨거웠다. 나는 마당에 있을 애옹이를 슬쩍 확인하고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담아올 겸 주방으로 향했다. 컵과 얼음을 꺼낸 순간, 낯선 고양이 소리가 밖에 들려왔다. 나는 주방에서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벌컥 열었다. 처음보는 커다란 고양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빠르게 달려 마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애옹아. 애옹아?


사실 애옹이도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는 이름이 나비였다. 시골의 고양이는 대부분 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비는 그 이름보단 애옹이라고 자주 불렸고 결국은 애옹이가 되었다. 나는 그 이름을 부르며 마당을 살폈다. 평소라면 문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꼬리를 세우고 골골송을 부르며 달려와 애교를 부릴 작은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애옹아. 나는 몇 걸음을 더 걸어다가 애옹이를 발견했다. 애옹이는 나를 보더니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급하게 다가가 애옹이를 살펴봤다. 부드러운 털을 쓸자 손바닥에 피가 묻어났다. 어떡해, 괜찮아? 애옹아. 손이 벌벌 떨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집 근처엔 고양이가 없었고 우리는 애옹이를 마당에서 키웠다. 마당에는 애옹이의 사료 냄새가 났다. 산을 떠돌던 들고양이가 그 냄새를 맡고 집에 들어올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애옹이가 떠나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옆으로 쓰러진 채 움직이던 네 다리. 그건 애옹이가 마당 화단에 핀 여름꽃 위를 날아가던 나비를 쫓던 모습과 똑같았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겁을 내느라 마음껏 예뻐해주지도 못했던 그 모습.


애옹이를 마중 나온 이가 있었을까. 애옹이는 가쁜 숨을 내쉬다 천천히 멈췄다. 내가 시원한 음료 한잔를 위해 자리를 비우지 않았더라면, 새카만 밤에 유일하게 빛이 새던 내 방 창틀에 놀러온 녀석에게 문을 열어주었더라면. 정이 쌓이는 걸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 더 너랑 함께 지내줄 걸. 애옹이는 이 집에 와서 일주일도 지내지 못하고 고양이 별로 가버렸다.


우리 이런 애들 키우지 말자. 나는 펑펑 울면서 말했고 엄마는 조용히 애옹이를 묻어주었다. 키우지 말자. 나는 밤새 울었다. 가족들과 함께 농촌 생활을 한 덕에 서서히 줄이고 있었던 약을 꺼내 먹었다. 안정제도 소용이 없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반려동물은 먼저 저승에 가서 주인을 기다리다 마중을 나온다고.


아마 애옹이는 나를 기다리진 않겠지. 나 역시 네가 날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말고 고양이별을 뛰놀고 있기를 바란다. 부디 그곳에선 다칠 일도 아플 일도 없기를.



애옹이, 220818_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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