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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T Oct 20. 2022

코미디의 보편성이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코미디는 종종 무시받거나 과소평가 당한다. 광대라는 직업이 천시되었듯이, 현재까지도 ‘코미디언’이나 ‘개그맨’이라는 직업은 ‘배우’나 ‘영화인’이라는 이름보다 저급하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이 인식은 아마도 코미디에 대한 오해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코미디의 본질은 웃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웃음이 코미디의 모든 것이라고 쉽게 착각한다. 마치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웃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잘못된 생각이다. 분명히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얻는 가볍고 큰 웃음을 전달하는 코미디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주 세밀하게 계산되고 설계된 웃음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같은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방식을 보면 각본상으로 아주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미디도 마찬가지이다.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위해 전개를 쌓고 복선을 설정하며, 쉽게 예측하지 못하도록 사건을 비트는 제작은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글에서 다룰 두 작품은 코미디 또한 어떤 다른 장르 예술과 같이 매우 정교한 작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매우 좋은 예시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코미디 자체에 관한 훌륭한 영화이다. 2시간이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속에 세 개의 단계로 이루어진, 당돌하고 야망이 넘치는 작품이다. 첫 번째 부분은 30분간 라이브로 송출된 원테이크 좀비 드라마를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드라마가 송출되기 한 달 전부터 시작해 영화의 주인공이 드라마를 제작하게 된 배경을 그리는 부분이며,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첫 번째 부분에서 나왔던 드라마의 비하인드 내용이다. 일단 각 단계가 어떤 방식으로 코미디로서 활용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첫 번째 원테이크 드라마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 자체로도 매우 재미있다. 분장사 역할의 배우가 좀비에게 날라차기를 하거나, “퐁!”을 외치며 호신술을 사용하는 장면, 춤추는 좀비, 아무 이유 없이 뛰어나가는 단역, 갑자기 상처 스티커를 떼어내는 장면 등등 그 자체로도 웃긴 요소들이 넘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부분에 대한 복선을 계속해서 깔아 좋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두 번째에는 드라마 속 감독 배역의 배우가 따로 있었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감독 스스로가 감독 배역으로 등장했다. 그 이유는 세 번째 장면에서 나오기 때문에, 세 번째 부분에 도달할 때까지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궁금함을 심어준다. 위의 예시 말고도 첫 부분의 거의 매 순간이 이런 복선으로 작용한다. 중간중간 살짝 어색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지점은 모두 의도되어 세 번째 부분의 반전을 위한 복선으로 작용했다.


두 번째 부분은 영화의 주제의식이나 감동(개인적으로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점에서는 세 번째 부분과 이어져 결론에서 주제의식을 폭발하게 한다. 또한 세 번째 부분에서 복선을 해결하는 방식에 힘을 가해준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부분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하는 연기는 두 번째 장면에서 소속사 입장이라며 빼기로 한 장면들이다. 우리는 세 번째 장면에서 이 장면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기대하면서 보게 되고, 이 기대는 두 번째 부분이 해낸 성취이다. 그리고 마지막인 세번째 부분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며, 모든 복선이 해결되는 부분이다. 첫 번째 부분에서 나왔던 약간의 어색함과 의문점, 두 번째 부분에서 등장한 의심스러운 설정들은 모두 세 번째 부분을 위한 완벽한 초석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초석이 펼쳐 놓은 자리 위에서 클라이맥스는 거의 폭죽이 터지는 듯한 마무리를 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대단함은 분명히 미친 듯이 터지는 각본에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구조일 텐데, 사실 구조 자체는 매우 고전적이고 시도된 적도 많다.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이 영화에서 달라지는 것은 서술의 시점이지만, 갑작스러운 결과를 먼저 선보이고 이를 설명해 나간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면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과도 공통점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시도들이 있겠지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만의 특별한 점은 단순함과 스케일을 동시에 잡았다는 점이다. 다른 예시들을 보면 복선의 양 자체가 적다. 혹은 <테넷>같이 복선이 많은 영화라면 매우 복잡해지기 쉽상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직관적이면서도 3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방대한 양의 복선을 다룬다. 이러한 작법과 연출은 매우 섬세하지 않고는 높은 퀄리티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이뤄낸 것은 아주 복잡하고 정밀한 계산을 통해 만들어진 고농도의 웃음이다.


두 번째 영화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이다. (이하 <보랏>) 우선 제목이 매우 눈에 띈다. 원제는 <Borat: Cultural Learnings of America for Make Benefit Glorious Nation of Kazakhstan>으로, 사실 번역된 제목이 그나마 양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제는 더욱 <보랏>다운 모습이다. <보랏>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넘쳐 난다. 그 중 하나는 분명히 <보랏>의 논란일 것이다. 작중 보랏은 카자흐스탄 출신인데, 보랏의 언행은 마치 카자흐스탄인들이 비문명인인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점에서 카자흐스탄에서는 상영 금지를 당할 정도로 큰 논란이 일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보랏>의 코미디적 요소 외의 윤리적인 요소를 평가해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이 부분은 생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글은 코미디의 작법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보랏>이 상영 금지 처분을 받은 이유는 이 영화를 너무나도 잘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랏>은 카자흐스탄에서 미국으로 파견을 나간 보랏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보랏은 호텔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해상 구조대> 드라마에 등장한 여주인공과 짝사랑에 빠지게 되고, 여주인공을 찾아 대륙횡단을 떠난다. 이는 <보랏>은 커다란 줄거리이며, 디테일한 부분은 하나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만들어졌다. 그 이유는, 이 영화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와는 달리 오히려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가깝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실제로 연기하고 있는 인물은 보랏과 동료 아자맛, 그리고 창녀 루에넬뿐이다. 이들만이 ‘보랏‘의 존재와 배경이 허구임을 이해하며, 나머지 인물들은 보랏이 실제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오프닝에서 보랏의 소개 장면을 보면 보랏을 연기한 사샤 바론 코헨만 배우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실제 주민들이다. (단,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샤 바론 코헨의 대사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앤티크샵에서도 보랏이 사고를 칠 때 사샤 바론 코헨은 ‘보랏이 사고치는 연기’를 했지만, 앤티크샵의 사장은 보랏이란 인물이 실제로 사고를 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때 정해진 것은 ‘보랏이 앤티크샵의 물건들을 깨트린다‘ 정도이고, 나머지는 전혀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샤 바론 코헨의 연기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 다음 내용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장편 영화 작법과 완전히 다른 것이며, 더 나아가 이런 혁신적인 작법 속에 블랙 코미디를 집어넣었다는 것은 <보랏>만의 대단한 성취이다. <보랏>이 그 수많은 논란 속에서 쏟아지는 호평을 받았던 이유 또한 이 성취 덕일 것이다.


그렇다면 코미디라는 거대한 장르 속에서 위 두 영화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와 <보랏>은 완전히 양극단에 놓여져 있는 영화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원테이크, 복선, 예상을 빗겨가는 반전 등이다. 이들은 모두 고도의 합의를 요한다. 원테이크라는 것은 모든 스태프가 모든 동선과 타이밍을 합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복선 또한 이후 나올 반전을 위한 연출 상의 합의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합의로 이루어진 코미디이다. 액션도 합의되어있고, 리액션도 합의되어있으며, 연출과 촬영도 원테이크로서 합의되어있고, 웃음 포인트, 편집, 인물 설정 모두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을 향해 합의되어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보랏>은 미합의의 코미디이다. 정해진 것은 인물과 세계관밖에 없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합의 없이 일어난다. 사샤 바론 코헨의 액션도, 이를 본 시민들의 리액션도 합의되어있지 않고, 그렇기에 각본과 촬영 모두 최소한의 합의만을 가지고 있다. 배우의 동선, 대화와 티키타카, 사람들의 반응, 모든 것이 합의되지 않은 채 카메라에 담겼다. 다시 말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합의의 코미디, <보랏>은 미합의의 코미디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다 훌륭한 코미디로서 작용한다. 그 이유는 서두에서 말했듯이, 코미디는 세밀하고 정교한 계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 한 군데라도 있었다면 영화의 완성도는 크게 하락했을 것이다. 말 그래도 모든 부분이 계산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보랏>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일 계산하지 못한 돌발 상황을 마주했다면 이 영화는 만드는 과정에서 폐기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주 정밀한 계산을 통해 수용 가능한 방향으로 영화를 끌고 나갈 수 있었다. 즉, 합의와 미합의는 코미디의 방법론에 불과하고, 그 기저에 치밀한 계산이 있어야만 훌륭한 코미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위 두 영화 말고도 모든 코미디에서 성립한다. 예를 들어 스탠드업 코미디나, 흔히 TV에서 볼 수 있는 공개 코미디, 연극, 영화, 혹은 코미디 소설이나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코미디는 치밀한 계산 하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계산이 충분히 치밀하지 못하다면, 그 방법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0443453/mediaviewer/rm2516815616?ref_=ttmi_mi_all_sf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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