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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모아 Nov 24. 2022

내가 오지를 사랑하게 된 이유

서울

토론토

뉴욕

상하이

방콕


위 국가들이 내가 태어나서 20대 초반까지 거주한 도시들이다. 모두 하나같이 인구가 바글바글한, 밤문화가 왕성한 대도시이다.


도시에서만 자랄 때는 그곳의 편리한 생활이 “기본”인 줄 알았다. 시골생활에 대해서 일말의 기본 지식이 없었다. 내가 소비자로서 도시에서 먹는 것, 사는 것이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결과물이란 것을 망각하고 그 유통경로의 반대편엔 누가, 뭐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농업, 어업, 축산업에 대한 지식도 거의 전무했다. 과일이나 채소를 직접 재배해본 적도 없었고, 야생화나 들풀 이름을 하나도 몰랐으며 비포장도로 위를 차로 달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눈 가린 경주마처럼 내가 보이는 시야만 세상인 줄 알고 살아왔다.


사실 도시에서 자라면서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격식을 차리는 자리는 어딘지 항상 불편했다.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숨통이 좁혀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예를 들면 호텔, 로펌, 면접장, 파인 다이닝 등.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사람들이 다 가면을 쓴 가짜 같이 느껴진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 가짜의 일원의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러던 2018년, 한국에서 술 강요, 위계질서, 직장의 부정부패를 수년간 경험하며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내가 기약 없이 다시 해외로 나가며 판이 바뀌었다. 태어나서 처음 완벽한 “오지”에 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시골/전원이 아니었다. 내가 첫 7개월을 거주한 곳은 250명 남짓한 인구가 거주하는 모래섬(Moreton Island; 모튼 아일랜드)이었다. 모든 섬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개발이 되지 않아 섬 전체에 포장도로가 하나도 없었으며, 인터넷은 섬에 단 하나 있는 3성급 리조트 센터에서만 터졌다.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슈퍼를 제외하곤 싱싱한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마트 하나 없어서 배를 타고 본섬(mainland)에 가서 장을 봐와야 했다 (난 리조트 직원 자격으로 세 끼 식사를 배급받았다).


내게 그 섬은 마치 새로운 행성 같았다. <어린 왕자>에 나온 “의자만 몇 발자국 옮기면 하루에도 마흔네 번의 석양을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별”이 바로 모튼 아일랜드였다.

그곳에서 난 매일 아침 새소리와 햇살에 눈을 떴고, 종일 사막의 뜨거운 기운을 모든 세포로 받으며 모래언덕을 뒹굴며 포토그래퍼 일을 했다. 몸도 마음도 한껏 건강해졌다. 해가 떨어지면 바닷가에 매일 밤 야생 돌고래들이 찾아왔는데,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관광객들 사진을 포착하기 위해 비가 오는 궂은날에도 바닷물에 들어가 파도에 등이 떠밀리며 사진을 찍었다. 태어나 처음 완전히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희열이 느껴졌다. 체력적으론 한국보다 훨씬 고된 일을 하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섬에서 마지막 페리가 떠나는 저녁 8시가 지나면 섬 전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최소의 가로등만이 리조트를 비추고, 그 외 지역은 아무런 인공 불빛이 없다. 창문을 열어두면 개구리, 컬루(curlew), 귀뚜라미, 그리고 파도소리가 조용히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 소리에 매일 밤 잠이 들었다.


내가 그 섬에서 봤던 석양, 바다, 은하수, 사막의 고요함과 바람소리, 한 밤중 불빛 하나 없는 호수를 밝히는 파란 플랑크톤까지... 아직도 그때와 함께 있는 친구들을 떠올리면 마치 현실이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때부터였다. 서서히 호주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호주에 살고 있고, 웬만하면 “오지” 특히 “섬” 생활을 고집하고 있다.


내 눈에 있던 눈가리개를 벗고 나니 새로운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농업, 축산업, 리조트 운영 관련 일을 밑바닥부터 경험했다. 그 과정 속에서 항공운항, 환경과학 등 다양항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학문에도 관심이 생겼다.


지금 이 글을 쓰는 2022년, 나는 세 번째 대학교를 졸업하고 또다시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수입은 아직 내가 2018년 한국에서 벌던 수입에 한참 못 미치지만, 4년 간의 방황, 그리고 오지 생활과 깨달음(enlightenment)이 내 인생에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오지 경험은 내가 살아온 길과 완전히 반대의 경험이었기에 내 시야를 넓히는데 큰 기여를 했고, 그걸 발판 삼아 나는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매일 내가 못 가본 길에 도전을 하며 꾸준히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P.S. 내게 모튼 아일랜드는 첫사랑과 같은 곳이라 또다시 방문하면 그 아름다운 기억을 더럽히게 될까 무서워 그 섬을 떠난 이후론 한 번도 그곳을 재방문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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