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시작은 멜버른의 피츠로이에서 맞이하기로 했다. 멜버른의 홍대, 멜버른의 성수라고 불리는 피츠로이는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왜 그렇게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나에게 있어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선 벽돌건물들은 흡사 4년 전에 갔던 미국 브루클린도 연상케 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갈 곳은 카페 LUNE. 크루아상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오히려 차이티라테에 더 반한 후 다시 거리로 나와 생각해 두었던 서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큰 대로변 양 옆에 다양한 색감을 뽐내는 조금은 연식이 느껴지는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노란색, 푸른색, 분홍색 등등. 그렇게 다양한 색감들이 서로 따로 놀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서 있는 건물들 중 한 곳에 Brunswick Street Bookstore가 자리 잡고 있다.
서점에 다다르니 아이보리 색을 바탕으로 예쁜 파란색의 책장들이 나를 반겼다. 서점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역시나 나는 가장 안 쪽에 자리 잡고 있는 어린이서적 섹션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갔다. 많은 동화책들 중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한국 작가 분의 동화책이었다. Tiny Wonders라는 책으로 귀여운 꼬마아이의 무언가 설레어하는 모습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장 안쪽 책장의 책들을 구경하다 우연히 책장 뒤쪽에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호기심에 슬쩍 뒤를 보니 뒤편에도 책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나의 눈길을 끄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청록색 표지에 귀여운 고양이 일러스트가 함께하는 고양이에 관한 책이었다. 뒤이어 칼튼 가든과 피츠로이 가든을 갈 생각이었던 나는 그 책을 보자마자 '아, 가든에서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 집사인 친구에게도 소개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며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책을 또 한 권 구매하는 기쁨을 얻었다.
Bruswick Street Bookstore는 여행 중에 갔던 그 어떤 서점보다 눈길을 끄는 책표지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쨍한 노란색과 분홍색, 녹색과 핑크색이 조화를 이룬다던가, 글을 쓰다가 마치 볼펜으로 막 지운듯한 책표지까지. 새삼 표지디자인의 중요성을 느꼈달까. 첫 독립서적을 준비하며 표지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던 나에게 이곳은 살아있는 교과서 같은 느낌이 드는 서점이었다.
멜버른 서점투어 8) Kaycraddock Antiquarian Bookseller
사실 이곳은 여행 전 멜버른 서점을 검색할 때 찾은 곳은 아니었다. Assembly Hall 빌딩에 있는 서점으로 위치상 성당과 호시어레인을 가기 위해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나도 그 근방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보게 된 곳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벌써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일단 입구 사진을 찍고 꼭 다시 오겠다고 눈여겨 두었던 서점이었더랬다. 그리고 이 날 피츠로이에서 시내로 돌아와 드디어 이곳을 향했다.
서점 이름과 입구에 나와있는 Licenced Second Hand Dealer라는 간단한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중고서적들을 취급하는 서점으로 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중고'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앤틱 서적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우선 인테리어 자체도 고풍스러웠는데 서점 곳곳에 부엉이 장식이 눈에 띄는 것이, 운영하시는 분이 부엉이를 사랑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겨주는 부엉이와 인사를 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짙은 와인색 카펫 위로 넓게 펼쳐진 서점 공간이 나온다.
여기서도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과 어린이책 섹션으로 먼저 달려갔는데, 세상에! 물론 그렇지 않은 서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엄두 내지 못할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서점 내의 다른 책들도 아주 천천히 살펴보았다. Novels & Letters of Jane Austen은 무려 7,500달러를 자랑했다. 서점에는 서적뿐만 아니라 다른 앤틱 물품들도 있었는데 일본 군사지도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쪽 벽에 붙은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56년간 호주의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던 The Second Folio Shakespeare. 그 가격은 무려 450,000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4억 가까이 되는 금액이 아닌가? 와우! 비록 이번 생애는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엄청난 물건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라도 보게 되어 영광이었다.
이렇게 살면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앤틱 서적들과 함께 하다 보니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이곳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누가 봐도 이곳의 책을 살 것 같지 않은 평범한 관광객이 서점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몇십 분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고 본인의 일에만 집중하던 직원 분. 그분께도 새삼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마치 서점에게 전하는 편지 같군) 멜버른에서 다녔던 다른 서점들과는 완전히 다른 콘셉트와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 서점을 우연히 걷다가 발견하게 되어 너무나도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