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지구과학
진도는 우리나라 남서쪽 끝의 섬이다.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3번째 큰 섬이다. 진도는 예술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은데 현지 사람들은 이게 모두 유배온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서울로부터 거리가 멀어 죄를 짓거나 밉보인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안성맞춤이라는 뜻이다. 고려 때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삼별초가 거점으로 삼은 곳이다. 그만큼 외지에서 들어오기 힘들다. 물론 지금은 진도대교가 놓여 육지나 매한가지다. 2024년 현재 인구는 28,704명이고 6월 말 기준 외국인은 2,279명이어서 진도읍에 가면 밤에는 외국인이 많이 보인다.
한국영화 최초 100만 관객이 든 영화 <서편제>(1993)에 나온 롱테이크 씬의 진도아리랑으로 유명한데 사실 그 장면은 완도군 청산도에서 찍었다. 2019년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유명해진 뒤에는 '송가인마을'도 생겨 사람들이 찾아든다. 추사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운 남종화 화가인 소치 허련(許鍊, 1808~1893)의 말년 화실을 꾸민 운림산방도 볼만하다. 2019년에 쏠비치 리조트가 개장하여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진도는 우수영을 통해 육지인 해남과 연결된다. 우수영은 울돌목에 위치하는데 유속이 빨라 이순신 장군이 1597년 음력 9월 16일 정유재란 때 수군 12척으로 외함선 133척을 격파한 곳이다.
진도대교에서 5km쯤 진도군 쪽으로 18번 국도를 내려가면 우측으로 금골산이 보인다. 높이 198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평지에 있어 웅장해 보인다. 특히 산의 형태가 마치 뼈를 잘라 놓은 듯 움푹움푹 파여 있고 암석이 노출되어 있다.
금골산은 진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개의 굴이 있고 산록부에는 오층석탑이 있으며, 산 중턱 굴 속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음각되어 있다. 성종 때 예문관 검열과 사간원 정언을 역임한 이주(李胄,1468~1504)가 무오사화로 진도로 유배되어 왔다가 금골산에 반해 <금골산록>을 지어 서거정의 동문선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유배지에 이런 명산이 있다면 유배도 덜 힘들었을 듯하다.
금골산 오층석탑
금골산을 잘 보려면 금성초등학교로 가면 되는데, 학교 교정에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금골산 오층석탑(보물 제529호, 높이 4.5m)이 있다. 주차장에 정자까지 주변이 잘 조성되어 있다. 원래는 고려말에 지어진 해월사(海月寺)라는 절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석탑만 남아 있다(표지사진은 5층 석탑에서 바라본 전경).
보주는 망실되어 없지만 1층 몸돌이 늘씬하고 다른 몸돌에 비해 길며(150cm) 기단이 매우 좁아 백제계의 석탑 모양을 보여주는 멋진 석탑이다. 지붕돌 받침이 층간에 차이를 보이는 것이 특이한데 1~4층은 5단이지만, 5층은 3단이다. 지붕돌 추녀의 끝 부분이 곡선이 아니고 잘라내어 3각형 단면을 보이는 것도 특이하다.
진도에는 고려시대 유적이 하나 더 있는데 용장성(龍藏城, 사적 제126호)이 그것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년)에 몽고와의 강화로 개경환도가 이루어 지자, 6월 삼별초(三別抄)군이 벽파항을 통해 진도로 들어와, 현종의 8대손 승화후 온(溫,?∼1271)을 왕으로 추대하고 왕궁과 군사시설을 지은 곳이다. 이듬해 5월 토벌 당해 10개월밖에 존재하지 못했다. 이후 진도 주민은 몽고로 끌려가고 1350년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전주민이 육지로 피난 가 조선 태종 14년(1414년) 진도거주가 허용될 때까지 143년 동안 행정기관이 없는 거의 무인도가 되었다. 그래서 현재 주민은 그 후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성은 평지가 아니라 축대를 쌓아 층층으로 나눈 층단식(層段式) 평지로 되어 있고, 건물터 등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자리에는 원래 용장사라는 절이 이미 있었는데, 삼별초군이 중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행궁을 지은 듯하다. 지금은 용장산성홍보관 뒤쪽으로 조그마한 용장사(태고종)가 새로 지어져 있다. 염불당이 따로 지어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용장사 석불
극락전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석조 약사불좌상(전남유형문화재 제17호)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의 높이는 195cm, 우협시불 164cm, 좌협시불 170cm으로 거의 비슷한 크기이다. 본존불은 민머리에 둥근 얼굴에 귀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U자이며 도식적인 층단문으로 되어 있다. 복부에 댄 왼손에는 약호가 있어 약사불로 보인다. 광배도 없고 중대석과 하대석도 유실되었다.
불상의 얼굴이 매우 이색적인데, 발굴 후 주민들이 시멘트를 발라 보수하면서 이렇게 현대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암질이 응회암이어서 표면이 유약해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는 나름 미술적인 조애가 있는 분이 보수했던 것으로 보여 그 시절의 단편을 보는 듯하다. 결가부좌한 다리는 매우 크게 강조되어 있다. 부처의 상체와 하체를 보는 시각이 각각인 듯하다.
진도의 지질
진도의 이웃 해남에는 지름 30km 정도 되는 중생대 칼데라가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진도의 대체적인 지질은 선캠브리아기의 변성암류를 기반암으로 하여 백악기의 퇴적암층과 화산암류가 그 위를 덮고 있는 형국이다. 지질도를 보면 백악기에 얼마나 엄청난 화산폭발이 인근에서 발생했는지 상상해 보며 오싹해지곤 한다. 지금의 인도네시아 같았을 것이다.
사실 이 지역의 지질도인 우수영도폭은 1929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서 현재 기준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 오래된 지질도가 남아 있는 지역이 여러 군데 있는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계속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우리 국력에 이런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에 민망함이 앞선다.
금골산과 용장성 인근은 중생대 백악기 산성분류암질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서 굳어져 만들어진 퇴적암이다. 산성암질이라 암석의 색상이 밝다. 따라서 구멍이 많은 다공질이며 강도가 약해 장식용 제품을 만들기에 적합하다. 마애불을 새기기에 좋은 강도를 가지나 풍화에 약해 보존에는 취약하다. 가공성이 좋아 석탑을 만들기에도 좋다. 구체적인 암종은 자세한 조사를 하여야겠지만 금골산 오층석탑이나 용장사 석불도 이 재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응회암으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이 흔치 않아 좋은 자료가 된다.
진도는 천연기념물 진돗개로 유명하다.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습성이 우직한 우리 민족의 모습을 닮았다. 첫 정을 준 주인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강아지 때부터 키워야 한다. 하지만 진돗개는 이제 애견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품종이 되어 홀대받고 있다. 최근엔 진도군청이 진돗개 26마리를 유기견 보호센터로 보내 논란이 일었다(조선일보 24년 8월 13일). 입양되지 않는다면 안락사를 당할 형편이다. 견주가 사육을 포기하여 천연기념물에서도 해제되었다고 한다. 진돗개 품종을 보호한다고 다리를 건너는 차를 수색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관청의 행태와 작고 살살거리는 외래종을 선호하는 세상풍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참고문헌
1. 문화재연구소, 전라남도의 석탑 1, 2005
2. 문희수, 송윤구, 전남 해남지역 납석, 명반석 및 도석광상의 분포, 광물조성 및 형성 기구, 광산지질, 25권 제1호, p.41-50, 1992
3. 박경식, 한국의 석탑, 학연문화사, 2008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