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과학 이야기
석류(石榴, Punica granatum, 영어: pomegranate)는 중동에서도 귀한 과일이어서 클레오파 정도가 되어야 흑석류를 즐겼고, 중국에서는 당태종이 양귀비에게 직접 먹여주어 주변의 시샘을 받았다고 한다. 석류는 빨간 씨가 많기 때문에 다산을 상징한다고 해서 예로부터 임신 전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에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로 포도문양과 석류문양·동자문양을 많이 그렸다.
요즘은 이란하면 험악한 이미지만 떠 오르지만, 한때는 자유가 넘치던 서방 같은 나라였다. 그런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과일이 있었는데 그게 석류다. 이란산 석류는 가장 맛이 있고 품질도 좋다. 따봉이다. 석류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해발 고도가 높아야 하며, 한겨울 밤낮 기온차가 심해야 꽃눈이 잘 분화된다고 한다. 또 이란의 고온 건조한 기후 때문에 특별한 병충해가 없어 농약도 안친다. 그래서 붉은 씨알에 단물이 가득 채워진다. 늦가을부터 수확이 되어 12월 겨울에 절정을 이룬다. 석류의 계절인 가을과 겨울철로 접어들면 이란 전국적으로 석류 축제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동의보감에서는 석류가 성질이 따뜻하며 맛은 달고 신맛이 있어 갈증을 없애고 기운을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폐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안 된다(性溫, 味甘酸, 無毒. 主咽燥渴. 損人肺, 不可多食)라고 쓰여 있다.
석류는 천연적인 여성호르몬인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상당히 많아서 여성을 위한 최고의 과일이라며 홍보되고 있다. 대표적인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이소플라본·쿠메스탄·리그난 등 세 종류다. 이중 정확하게는 석류에 들어 있는 것은 이소플라본이다. 또 이소플라본에는 다이드진(Daidzin), 글리시틴(Glycitin), 제니스틴(Genistin) 등이 있다.
이소플라본(Isoflavone)은 에스트로겐*의 구조와 매우 유사해(동일하지는 않음) 우리 몸속에서 여성 호르몬과 경쟁하듯(?) 작용하여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한다고 시중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소플라본은 식물의 자연 방어 체계의 일부로, 주로 식물을 해로운 곰팡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에스트로겐(estrogen): 스테로이드 화합물의 모임으로 여러 종류가 있으며, 여성의 성 호르몬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정 주기(estrous cycle)의 개입으로 붙여진 이름.
이소플라본의 효과에 관련된 많은 연구들이 있는데 Jeune 등(2005)은 유방암세포를 이용한 연구에서 석류의 추출물 및 제니스틴(이소플라본)이 유방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결과를 보고 하였다. 이후 Seidi 등(2016), Shirode 등(2014) 여러 연구자들이 비슷한 연구를 통하여 석류 추출물이 유방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전 (원리)을 발표하였다. 2-4 한 단계 나아가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도 석류 추출물을 투여한 쥐에서 유방암의 크기와 무게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세포 및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과장해서 각종 미디어에는 ‘유방암에 석류가 좋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간절한 심정의 유방암 환자들의 귀에 대단한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이런 연구결과를 이해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아직까지 유방암 환자에게 석류 추출물을 투여했을 때, 유방암이 치료되거나 유방암의 크기를 줄였다는 인체실험이 보고는 된 적이 없다. 유방암의 치료에 이용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의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데 이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둘째, 과량의 이소플라본은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하여 유방암의 크기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가끔씩 간식으로 과육을 먹는 정도는 괜찮지만, 석류 농축액과 같은 고농도의 형태, 즉 제품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장기간 복용하거나 직접 달여서 섭취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셋째, 유방암환자가 흔히 치료제로 사용하는 타목시펜(tamoxifen)이라는 항에스트로겐 제재와 상호 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타목시펜은 유방에서 에스트로겐 작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며, 재발률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이 함유된 석류는 타목시펜의 작용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유방암 환자가 석류 추출물을 섭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전문 용어로 “약물상호작용(drug interaction)”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소플라빈이 유방암을 키운다거나 줄인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방암 치료에 사용되는 복용약품인 타목시펜의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이 때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석류는 파격적인 생김새 때문에 요즘 그림에는 많이 등장하는데, 정작 우리나라 옛 그림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화려한 외양이 다른 과일과 어울리지 않고 색상 또한 수묵화로 표현하기에 적절치 않아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중에서 두 가지 그림을 소개해 본다.
반쯤 연 입술이 붉은 구슬 터 뜨리니
아름다운 여인이 방긋 웃는 것같네
단옹이 술에 취해 그리다.
아래 김홍도의 그림은 구한말 미국 공사(1897~1901)로 근무했던 호레스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1924년에 뉴욕시립미술관에 기증한 그림이다.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며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는 그 사람이다. 먹으로 그린 그림으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화면 아래위를 바위로 꽉 채웠고, 새와 석류를 그려 넣었다. 언제 그렸는지는 불명확한데, 바위 왼편에는 김홍도가 직접 재기를 적어 놓았다.
윤두서의 '윤씨가보' (보물 제481호)는 다양한 크기의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등이 실려있는 화첩이다. 산수와 및 산수인물화 23점, 풍속화 5점, 나한도 2점, 인물화 4점, 사생도 3점, 마도 5점, 화조화 2점 등 모두 44점의 작품이 실려있다. 살펴보면 어디서 본 그림들이 여기 실려 있다.
그중 <석류매지도>에 석류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윤두서는 여름 과일과 익어서 껍질이 벌어진 석류를 한 그릇에 담아 그렸는데 그릇의 요철에 따른 명암을 서양화 기법으로 잘 표현했다. 주황색 표면이 울퉁불퉁한 감귤 같은 남도 과일과 잎사귀를 곁들였는데, 여기에 활짝 핀 매화 가지를 곁들였다. 계절을 넘나드는 소재의 선택이다. 정물화는 윤두서에게 낯선 화풍이다. 그전에도 풀이나 꽃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직접 꽃과 과일을 정돈해 놓고 그림은 윤두서에게도 처음이었고 또 유사하게 그린 조선 화가도 없었다.
집 앞에서 문득 보게 된 주렁주렁한 석류로 인해 멀리 이란까지 마음이 움직였고 석류의 과학에 맛을 보았으며게다가 선조의 그림으로 옛정취도 느꼈으니 석류가 다산의 의미가 있다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참고문헌]
1. Jeune, M.A., J. Kumi-Diaka, and J. Brown, 2005, Anticancer activities of pomegranate extracts and genistein in human breast cancer cell, J. Mde Food 8: 469-475
2. Seidi K, Jahanban-Esfahlan R, Abasi M, Abbasi MM. Anti Tumoral Properties of Punica granatum (Pomegranate) Seed Extract in Different Human Cancer Cells. Asian Pac J Cancer Prev. 2016;17(3):1119-22. doi: 10.7314/apjcp.2016.17.3.1119. PMID: 27039735.
3. Shirode AB, Kovvuru P, Chittur SV, Henning SM, Heber D, Reliene R. Antiproliferative effects of pomegranate extract in MCF-7 breast cancer cells are associated with reduced DNA repair gene expression and induction of double strand breaks. Mol Carcinog. 2014 Jun;53(6):458-70. doi: 10.1002/mc.21995. Epub 2013 Jan 28. PMID: 23359482.
4. 위키백과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