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스러운 일본 영화다. 등장인물도 별로 없고 액션도 없고 대사도 별로 없다(단 누드신이 있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과 침묵뿐이다. 직업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남자의 하루하루를 다큐멘터리 같은 담담한 카메라 워크로 담아냈다. 루틴이 정해진 하루의 생활은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이런 날과 날 사이에는 하루의 기억을 정리하는 잠의 시퀀스가 있다.
<베를린 천사의 시>(1993), <파리, 텍사스>(1984) 등으로 유명한 독일 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 1945~)가 감독을 맡았고, 우리에겐 <쉘 위댄스>의 주연으로 유명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Yakusho Koji, 1956~)가 주연을 맡았다. 코지는 이 영화로 2023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제공: 티캐스트
중년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화장실 청소부다. 이웃 주민의 빗자루질 소리에 깨어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일상은 한결같은 루틴이 잡혀 있다. 먼저 키우는 식물에 물을 주고 간단히 세수하고 정성껏 콧수염을 다듬는다. 작업복을 입고 집 앞의 작업용 차량에 타기 전에 자판기에서 BOSS 캔커피를 한 개 산다. 예불을 준비하는 수도승처럼.
직장인 시부야구(渋谷区)의 화장실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올드팝이 배경으로 깔린다. 제목과 내용을 가져온 듯한 Rou Reed의 <Perfact day>를 시작으로 포인트마다 꽃이 피듯 흘러나온다. 그것도 올드한 장치인 카세트를 통해 레트로감성을 뿜뿜 풍기면서 말이다.
제공: 티캐스트
그는 정성을 다해 맡은 몇 개의 아름다운 화장실을 청소해 간다. 불성실한데다 시시껄렁한 동료가 뭐라고 투덜대도 웃기만 한다. 급한 볼일이 있는 이용객에게 청소를 멈추고 기다려주는 배려도 그의 몫이다. 점심은 야트막한 동네공원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는다. 늘 만나는 사람과도 그저 미소뿐, 이야기를 하는 법은 없다. 필름카메라로 같은 장소의 나뭇잎 사진을 한 장 찍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제공: 티캐스트
일을 마치고 조용히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지하철역 복도 식당에서 한잔 하며 저녁을 먹는다. 가끔 문고판 책을 한권 사거나 단골 술집을 가서 가벼운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하루의 끝은 언제나 방에 누워 문고판 책을 읽으며 잠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잠은 그의 기억을 차분하게 정리해 준다. 똑같지만 완벽한 하루가 오기를 바라면서.
제공: 티캐스트
제공: 티캐스트
어느 날 조카딸이 갑자기 나타나며 그의 루틴 한 삶에 균열이 약간 생긴다. 다음날 삼촌의 일에 동행하게 된 조카를 통해 살짝 히라야마의 과거가 드러나는 듯하지만 다음날도 여전히 똑같은 날이 시작된다.
THE TOKYO TOILET Project
영화에는 특이한 화장실이 몇 군데 나온다. 이곳은 2018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재단이 공공 화장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개선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실현을 목표로, 도쿄의 3대 부도심 중의 하나인 시부야구와 협력하여 구내 17개소의 공공 화장실을 새롭게 바꾸는 'THE TOKYO TOILET'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16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참여하여 화장실 자체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유지관리 개선에도 힘쓰는 등 색다른 도전을 했다. 마지막 화장실은 2023년 3월에 완공되었고, 빔 벤더스(Vem Wenders) 감독을 초청하여 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 했으나 감독의 제안으로 장편영화인 'PERFECT DAYS'가 만들어졌다. 촬영에 16일이 걸렸다고 한다.
Source: The Tokyo Toilet Web site
유명한 건축가의 참여와 깔끔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도쿄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의 면면이 매우 화려하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안도 다다오도 참여했다. 또한 유지관리에도 신경을 써도 대도시의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화장실이지만 깔끔한 외양과 실내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위와 아래의 사진은 개별 화장실의 특징과 참여 건축가를 소개하는 프로젝트 홈페이지(tokyotoilet.jp)이다.
Toilet Location, Source: The Tokyo Toilet Web site
변색유리의 비밀
Yoyogi Fukamachi Mini Park, Source: The Tokyo Toilet Web site
영화의 소재가 화장실 청소여서 예쁜 화장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요요기 푸카마치 미니공원 화장실이다. 사람이 들어가 있는 않을 때는 벽체가 투명하고 사람이 들어가면 불투명해진다. 저녁에는 자연스럽게 가로등 역할도 한다. 영화에서도 간단한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기술은 전기변색유리인데 이미 여러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어 낯설지 않은 기술이다. 우리가 보잉 787 드림라이너를 타보면 창문가리개가 없고 +- 버튼만 있다. 이것을 조작하여 창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이착륙 시에 '모든 창문을 올려주세요'라는 멘트도 없이 조종사가 한 번에 투명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기변색기술을 적용한 창이다.
Boeing 787-8 전기변색창문, Source: wikimedia commons bSpaceaero2
전기변색기술(Electrochromic Technology)은 두 개의 유리판 사이에 전기의 단락에 따라 유리창을 투명하게도 불투명하게도 하여 투명도를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기술이다. 변색유리는 아래 그림과 같이 몇 개의 층으로 구성되는데,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전해액(elctrolyte) 층을 중심으로 양쪽의 전도성 전극에 전원을 연결하면 전기변색층(EC layer)에서 변색이 일어난다. 전기변색기술은 이미 오래전에 개발되었는데, 아직 크기를 확대하거나 곡선의 형태로 만들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존기변색장치의 구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d Halim Hossain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때 벽은 확실히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되어야 한다. 만일 안에 앉아 있는데 지진, 단전, 고의적 장난 등 어떤 이유로 모든 창이 투명해진다면 두고두고 꿈에 나올 일이다. 따라서 변색판넬에 전원이 안들어 올때 불투명하게 하여야 한다. 이렇듯 과학의 원리를 적용시키는 것은 사용자의 이용환경인 것이다.
화장실은 자체가 일상생활 중에 꼭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화장실 청소도 루틴 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매일의 루틴이 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다른 일들에 줄줄이 영향을 미쳐 완벽한 날이 되지 못할 것이다. 청소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이웃들 모두에게도 그렇다.
루틴 한 일의 특성상 꾸준한 반복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어느 수준에 올라서게 된다. 입산수도를 하면 스승님이 먼저 마당 쓸기와 밥 짓기를 몇 년 동안 시킨다. 수도자의 마음은 급하지만 스승님은 까딱도 안한다. 고행과 수도의 길은 반복하는 일들로 점철된다. 이처럼 우리의 하루하루 매 순간을 성의를 다한다면 그날이 완벽한 날일 것이다. 그래서 히라야마는 마지막 순간에 득도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