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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의 지질공원 인증은 유일의 선택인가?

생활 속 과학 이야기

by 전영식

UNESCO는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의 약자로 1946년에 발족한 UN의 전문기구다. 기구의 목적은 유엔 헌장에서 선언된 기본적 자유와 인권 그리고 법의 지배, 더욱 보편적인 정의의 구현을 위하여 국가 간의 교육, 과학, 그리고 문화 교류를 통한 국제 사회의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 뜻은 높고 숭고해서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다. 유네스코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영향력 발휘, 무상교육 및 의무교육 등 교육 관련 활동, 문화운동으로서 1960년부터 실행된 누비아 운동(Nubia Campaign),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European Council for Nuclear Research) 설립, 이 연구소에서 탄생한 월드 와이드 웹, 세계생물보호권 보호구(Man and the Biosphere Programme), 세계유산(문화, 자연), 기록유산, 무형유산 및 지질공원 인증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2023년 7월 기준으로 194개 회원국, 준회원 12개 지역이 가입되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유네스코의 방만한 재정을 비롯한 관리 운영 문제, 정치적 편향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여론은 21세기까지 이어져, 영국과 미국이 탈퇴와 복귀를 반복하고 있다. 미국은 1984년 12월 탈퇴, 2003년 10월 복귀, 2017년 12월 탈퇴, 2023년 7월 복귀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UN특사 장면(張勉)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유네스코 가입을 신청, 1950년 6월 14일에 , 북한은 1974년 10월 18일에 가입했다.


지질공원의 정의


유네스코 지질공원 사이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UNESCO Global Geoparks)은 지질유산을 보호하면서도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정의된다. 단순한 보호구역이 아니라, 지질학적 가치를 교육·관광·경제 활동과 연계시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따라서 세계문화유산과는 달리 주민들의 경제권 행사에 지장을 주지 않아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질공원 앞에 100층짜리 건물을 지어 그늘이 드리워도 문제는 없다. 세계지질공원은 46억 년의 지구 이야기를 보존하고, 사람과 경제, 문화가 동반성장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전북서해안권 지질공원의 명소 중 하나인 채석강, ⓒ 전영식

2025년 기준으로 50개 국가에서 229개의 지질공원이 지정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 (2010년 지정), 청송 (2017), 무등산 (2018), 한탄강 (2020), 전북서해안권 (2023), 경북동해안(2025), 단양(2025) 등 7개가 있다. 북한은 백두산(2025) 1개가 등재됐다.


그랜드 캐년은 지질공원인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와 그랜드캐년 (위키미디어: Williamgayde , Luca Galuzzi)


지질명소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미국의 그랜드 캐년, 요세미티 파크, 나이아가라 폭포, 옐로스톤 공원, 서부지역의 세인트 헬렌스 활화산 등을 들 수 있다. 또 호주의 호상철광산, 스트로톨마이트 등도 손꼽힌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산, 요르단 와디럼, 남아공 다이아몬드 광산 등은 어디보다 확실한 지질 사이트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질공원자체가 신청에 따른 선정을 하는데 이러한 필요가 없다면 굳이 신청할 이유가 없다. 절대적 순위로 지질학적으로 훌륭한 곳을 선정한 것이 지질공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질은 선진국, 개발도상국 구분 없이 어찌 보면 평등하고 나름 의미가 있는 지질명소는 산재해 있다. 하지만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인증된 세계지질공원의 편재가 심한데 주로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서유럽이 많은 지질공원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호주는 그 크기와 지질학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한 군데도 없다. 이는 지질학적 매력도, 가가 아니라 제도 자체에 맞게 서류, 현장검토 등을 통해 신청하면 규정에 따라 인증해 준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랜드 캐년이 지질공원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안 갈까? 그래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지질공원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지역적 분포



결국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지질학적인 특징이 있으면서 그것을 유지 관리할 의지가 있고 이것을 증명할 자료, 제도 준비 상태를 인정받는 신청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앙 정부에서 지방정부에게 신청과 인증을 독려한 중국이 그 수에서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중앙에서 시키면 일사불란하게 다 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지질유산이 많거나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이런 타이틀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유도하게 하는 장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UNESCO는 공정한가


사람이 하는 일은 돈이 든다. 유네스코도 마찬가지다. 유네스코의 2022-2023년 총재원은 12억 7500만 달러로 크게 정규 분담금(44%), 사용처가 지정된 자발적 기여금(32%), 사용처가 유동적인 자발적 기여금(21%), 공여국과 수혜국이 동일한 자발적 기여금(3%)으로 구성된다. 정규 분담금 기준(약 7,850억 원)으로 우리 문화재청의 예산규모(2024, 1조 3,659억 원)의 절반정도 수준이다. 정규분담금은 5억 6,284만 달러로 1,2위인 중국과 일본이 각각 19%, 10%를 차지한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집권할 때마다 복귀와 탈퇴를 반복하고 있다(2025년 7월 탈퇴선언, 2026년 12월 말 발효). 우리나라의 분담금은 1,777만 불로 9위(3%)이다. 당시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했다가 복귀하면서 분담금이 6위에 그쳤다. 미국의 분담금이 가장 크기 때문에 유네스코는 미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돈 많이 낸 사람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돈 많이 내는 나라의 눈치도 봐야 한다. 요직도 그들이 차지한다. 그들이 누군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2022-2023 유네스코 국가별 기여금,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사도광산 문화유산 등재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맥상 금은광산인 사도광산(佐渡金山)이 2024년 7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의해 공식 등재되었다. 등재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내용이 제외된 점이 한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도광산은 에도 막부 시기인 1601년에 발견된 일본 최대 금광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인 1896년 미쓰비시 그룹이 인수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되었다. 2006년부터 등재 신청이 추진되어 18년 만에 등재가 되었다.


사도 광산 구역은 에도시대 흔적이 남은 '소다유코'와 근현대 유산인 '도유코'로 구분되는데,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등 근현대 유산을 등재 신청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꼼수를 써서, 세계유산위원회 21개국 전원동의(한국도 포함)로 등재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전근대 시설과 근대 시설이 뒤섞여 있고 일반인이 그것을 구분하긴 불가능하다. 다른 나라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 억압적이고 위험한 일을 시킨 것이 세계유산으로 기릴만한 일인가.


우리 정부는 등재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반영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했으나, 어쩐 일인지 최종 등재 안에는 관련 내용이 제외된 채 결정되었다. 군함도의 등재 때에도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명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이행되고 있지 않다.


이처럼 많은 분담금을 내는 향후 중국, 일본 등이 등재 유산의 해석과 활용을 하면서 역사 왜곡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네스크 유산등재에 문제로 우려되고 있다. 우리는 분담금의 비중에 비해 적절한 대접을 받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왜곡되는 현실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왜 분담금을 내야 하는 것인가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만의 가치관 만들 때 됐다.


유네스코는 가치를 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조직이지만 분명히 한계는 존재한다. 유네스코에서 인증을 하든 안 하든 가치는 변하는 것이 없다. 인증이란 고유의 가치를 가름하는 것이 아니고 기준에 적합하게 신청을 하면 인정해 주는 것이다. 중국만 100개의 유산이 있다고 중국이 유일하게 문화적이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유네스코는 등기기관 같은 곳이다. 요건에 맞으면 등재해 준다.


유네스코 인증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아적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유네스코에 걸맞은 발언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결코 돈만 내는 맘 좋은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고 인류 유산을 결정하는 기준에 우리의 시각을 반영시켜야 할 때이다. 문화나 지질은 나라마다 각각이고 일률적일 수 없다. 이제 지질공원을 비롯한 문화유산 전반에 걸쳐 우리만의 기준을 더 중시하는 시각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네스코의 이름보다 대한민국의 이름이 브랜드 가치가 더 높은 게 현실이니까 말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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