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 이야기/일상 속 과학 이야기
공교롭다는 말이 이렇듯 적합한 경우는 좀처럼 없다. DNA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운명이라는 주제를 그린 <가다카 GATTACA>(1998)가 2025년 11월 20일부터 메가박스에서 재상영된다. 그런데 DNA 구조를 발견하여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미국의 분자 생물학자 제임스 D. 왓슨이 1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별세가 재개봉하는 영화의 흥행에까지 이어지지는 절대 않겠지만 공교롭다.
영화 <트루먼 쇼>의 각본을 써 유명한 앤드류 니콜(Andrew Niccol, 1964~)의 감독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다. 풋풋한 에단 호크(Ethan Hawke), 주드 로(Jude Law)와 우마 서먼(Uma Thurman)이 주연이다(이 영화로 에단과 우마는 결혼했다). 타고난 유전적 성향이 사회 지위를 결정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도전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SF 영화이다. 영문 제목인 <GATTACA>는 인간의 유전자의 구성요소인 뉴클레오타이드를 구성하는 질소 염기(Nitrogenous base)인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의 머릿글자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오프닝 크레디트에도 위트 있게 제작진 이름의 A, G, T, C만 볼드체 처리되어서 표시된다.
근미래,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의 가장 우수한 인력으로 손꼽히고 있는 제롬 머로우(에단 호크 분)는 키도 크고 잘생겼고, 우주 과학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탁월한 지식, 그리고 완벽한 우성인자를 갖춘 남자다. 치열한 선발 끝에 토성 비행에 선정되어 이제 발사까지 일주일 남았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우주 비행은 어림도 없는 부적격자 빈센트 프리만이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빈센트의 운명은 유전자에 따르면 심장 질환에다, 범죄자의 가능성을 지니고, 31살에 사망하는 것이었다. 빈센트의 운명에 좌절한 부모는 시험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유전인자를 가진 동생 안톤을 낳는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대한 못 말리는 꿈을 꾸던 빈센트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가 우주 비행사의 꿈에 도전한다.
가능한지, 아닌지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잖아
두 형제는 어렸을 때, 무모한 도전으로 섬까지 수영 시합을 하는데, 악착같은 빈센트는 익사하려는 동생을 구하고는 유전자보다는 정신력의 힘을 믿게 된다. 최고의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에서 청소부로 일하면서 우주로의 꿈을 이어나가게 되는데, 위험한 도박을 시작한다. 유전자를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피, 타액, 피부조각 등을 DNA 중계인 게르만과 결탁하여 나쁜 시력, 키까지 교정하며 도전과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가타카에 함께 근무하는 아이린(Irene Cassini: 우마 써먼 분)과 사랑에 빠지는 행운을 덤으로 누리는데 비밀은 끝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DNA는 디옥시리보 핵산(Deoxyribo Nucleic Acid)의 약자로 대부분의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디옥시'는 산소 원자가 하나 적다는 뜻이고, '리보'는 리보스(ribose)라는 오각형 모양을 갖은 당(5탄당이다)의 약어이다. 핵산은 핵에 있는 약산성물질이라는 의미다.
DNA는 기본적으로 H(수소), C(탄소), N(질소), O(산소), P(인)로 이루어진 뉴클레오타이드의 사슬이다. 뉴클레오타이드는 DNA의 기본구성단위로 당(Sugar), 염기(Nitrogenous base), 인산기(Phosphate)로 구성되어 있다. 인산기 때문에 DNA는 전체적으로 음전하를 띤다. 염기에는 아데닌(A), 티민(T, RNA에서는 우라실 U로 대체), 구아닌(G), 시토신(C)의 네 종류가 있다. 뉴클레오베이스(Nucleobase)는 염기, 뉴클레오사이드(Nucleoside)는 염기 + 당,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는 염기 + 당 + 인산기를 의미한다. 이런 건 이미 20세기 초에 다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DNA의 구조를 모른다는 거였다.
195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혈기왕성한 연구원 제임스 왓슨이 킹스칼리지 런던(KCL)의 뉴질랜드 출신 연구원 모리스 윌킨스(Maurice H. F. Wilkins, 1916~2004)를 찾아갔다. 왓슨은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자가 DNA 구조를 알아냈다고 주장한 논문의 사전 인쇄본을 들고 미국에 뒤져선 안 된다고 윌킨스를 설득했다. 결국 윌킨스는 동료 연구원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이 찍은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동의 없이 보여줬다. DNA 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증거로 밝혀진 이른바 ‘51번 사진(photo 51)’이다.
이를 보는 순간 대박임을 직감한 왓슨과 동료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은 철사와 금속판을 가지고 DNA 입체 모형을 만들어서 화학적 조건을 만족하는 이중나선 구조를 찾아냈다. 모델을 완성한 이들은 기쁜 남어지 학교 복도와 술집을 뛰어 다니며 “우리가 DNA의 구조를 알아냈다”라고 소동을 일으켰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1953년 4월 네이처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논문(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을 게재했다. ‘우리는 DNA의 구조를 제안하고자 한다’로 시작하는 900 단어 분량의 한 페이지 정도의 조악한 논문이었는데, DNA 가 두 가닥의 사슬이 연결된 이중나선임을 주장했다.
왓슨은 나중에 자서전에서 프랭클린의 사진을 본 “DNA는 두 가닥의 서로 꼬인 구조라는 것을 직감했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자신의 논문의 마지막에서는 ‘윌킨스, 프랭클린 박사 등의 미공개 실험 결과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모호하게 한 줄만 담았다. 프랭클린은 37세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DNA 사진을 왓슨이 몰래 본 것을 몰랐다고 한다. 노벨상은 고인에게 상을 주지는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프랭클린의 업적을 훔쳐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외신에 따르면 제임스 D. 왓슨(James D. Watson, 1928~2025)이 생전 오랜 기간 근무했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CSHL)와 아들인 던컨은 왓슨이 6일(현지시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향년 97세)했다고 밝혔다. DNA 구조의 발견이 워낙 획기적인 발견이고 20세기 초의 이야기라 왓슨이 아직 살아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왓슨은 1928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시카고대학교에서 동물학 학사 학위를,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1916∼2004)을 만나 함께 1953년 DNA가 이중 나선 구조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유전자 공학 및 치료 등 생명공학 발전의 토대가 됐다. 왓슨과 크릭은 이 공로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왓슨은 말년에 인종차별 발언으로 자기 무덤을 파서 스스로 들어갔다. 왓슨은 입이 문제였는데, 2000년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강연에서 햇빛 노출로 인한 피부색과 성적 욕구가 연관됐다거나 과체중인 사람을 절대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 후에는 2007년 영국 언론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고 주장했다. 왓슨은 "모든 사회 정책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실험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며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라고 발언해 인종차별주의자로 비난받았다.
인터뷰 공개 이후 왓슨은 "그런 믿음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라며 전적으로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모든 강연이 취소되고 일주일도 안돼 40년 가까이 근무하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에서 소장 직위를 사임했다. 이후 2019년 유사한 발언으로 연구소의 명예교수직까지 박탈당했다.
2014년 왓슨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당시 판매 수익금으로 가족 부양하고 일부는 자선다체와 과 과학 연구 기금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일각에서는 메달 경매가 자신을 버렸다고 느낀 과학계에 대한 반항의 표시라는 추측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러시아의 억만장자 알리셰르 우스마노프(Alisher Usmanov)가 410만 달러(현재가치 57억 4천만 원)에 메달을 낙찰받아 왓슨에게 돌려줬다.
왓슨에 대한 사후 평가는 더 지나 봐야 나오겠지만, 그의 부고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부드럽지만은 않다. 그는 직접 행동으로 직접 백인유전자가 특별히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람은 그가 이룬 것보다 평소의 마음 씀씀이와 행동거지로 평가된다. 아무리 부와 명예와 권력을 쥐었더라도 쓸쓸한 말년과 사후 평가를 받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인과응보다.
참고문헌
전방욱, DNA의 거의 모든 과학, 이상북스, 2025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