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약을 줄이는 대신, 증상이 나올 때만 드시는 약을 따로 드릴게요.
정신과 상담은 보통 이전 상담일로부터 어떻게 지냈는지 가벼운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대화 속에서 의사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어떤 증상을 보이고 있는지 등의 다양한 단서를 취하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려준다.
이 과정에서 어색한 부분은 일반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약 처방의 주도권이랄까, 물리적인 병환을 치료하는 데는 의사의 머릿속과 차트에 담긴 빅데이터를 기반해서 적절한 처방전이 나오게 마련이기에 환자는 다소 수동적인 역할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정신과는 처방을 내리면서 내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
"그동안 수면에는 큰 장애가 없으셨으니 밤에 먹는 약 중에 신경 안정제 하나를 줄여보는 건 어떨 거 같으세요?"
아무래도 심리적인 문제는 환자의 의지가 상당 부분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막역한 추측이다. 여기서 그동안 느껴온 증상을 감안해 볼 때 충분히 수용 가능한 상태인지를 환자인 내가 결정하고 의견을 내어야 한다. 그렇기에 환자 역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나름의 각오와 혼란이 따른다.
"네, 어차피 휴직 중이니 증상이 조금은 나오더라도 견뎌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럼 약을 줄이는 대신 증상이 심하게 나올 때만 드시는 필요시 약을 따로 드릴게요"
그렇게 내 지갑 한편에는 비상약이 자리 잡게 되었다. 평소의 여유가 없던 나라면 약을 줄이는 시도는 함부로 하지 못했을 거 같다. 나날이 외줄 타기 같은 위태로운 순간의 연속에서 잠시의 휘청임은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리스크가 따랐기에 감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이 쉼을 가장 절실히 체감하는 순간은, 평소 줄을 서는 식당에서 의도하지 않게 오픈런을 하며 여유롭게 맥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다던가 하는 보편적인 직장인들과 다른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인 거 같다.
그렇기에 휴직 기간에는 집에만 누워있기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직장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에 상대적인 여유를 즐기면서 나의 쉼을 세포 하나하나로 느끼려 노력한다. 인간의 행복은 상대치니까.
'나는 정말 열심히 쉬는 중이야, 그러니 잠시 아픈 것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 이렇게나 여유롭잖아, 그러니 괜찮아'
놀부 같은 심보.
숨 가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볼 때야 비로소 내가 쉼을 느낀다는 사실이 다소 부끄럽다. 하지만 평생을 달려오기만 한 삶에서 쉰다는 게 뭔지, 그저 집에 누워만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한다.
바쁜 출퇴근 길에 수염이 그득한 한 백수가 카페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더라도 너무 한심하게 바라보지는 말아 달라. 전력질주를 하다가 숨이 목에 차올라 지금은 잠시 멈춰서 있는 환자일 뿐이니까. 결코 내가 백수로 오인받아 한 소리를 들어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머 저거 봐, 나는 취업준비 하느라 정신없이 사는데 이 시간에 카페에서 게임하고 있어"
(실제로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