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개학을 했다. 2학기의 첫 등교는 왠지 손을 잡아주고픈 생각이 들어 등원도우미를 자처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붙어있는 학교라 혼자서도 갈 수는 있지만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 생각하니 꼭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사실 등원길에 오르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어나기 싫다며 투덜대는 딸아이, 아침을 먹으면서도 자잘한 투정을 부리는 딸아이 그리고 양치를 시키고 옷을 입히면서도 벌어지는 사소한 티격태격. 그동안 잠들어 있는 모습만 보고 출근하는 사이에 나 몰래 벌어지고 있던 우리 가정의 소소한 일상들이다.
내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서려는데 와이프가 설거지를 하다 말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함께 집을 나섰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사진으로 남겨준다며 괜히 따라나선 엄마
아침부터 따사롭다 못해 뜨거운 햇살, 슬글슬금 딸아이의 손바닥에 피어오르는 땀방울. 아이는 일상에서 자주 보지 못하던 아빠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좋은지 절대 손을 놓지 않는다.
어릴 때 아이가 좋아하던 동요, 멋쟁이 토마토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는데 아이가 듣더니 씨익 웃고는 금세 따라 한다. '나는야 주스 될 거야~' 알고 보면 굉장히 잔인한 가사인데 흥겹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두 부녀.
며칠 동안 사진을 찍다 간신히 건진 독사진
교문 앞에 도착해서는 딸아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한다.
"안녕히 계세요 아빠"
주변 다른 학부모의 시선에 화들짝 놀란 나.
"아니, 너 어디 가출하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안녕히 '계세요'와 '가세요'도 서툴게 구분하곤 했는데, 아직 딸아이의 머릿속엔 헤어짐의 인사가 그렇게 풍부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아빠가 출근하면서 마주쳤다면 '아빠 다녀올게요' 정도는 들려주었을 텐데 늘 자고 있을 때 사라진 아빠였으니 할 말은 없었다. 주변 다른 학부모들의 낮은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교문 안을 들어서는 딸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일할 땐 나는 늘 주목받는 위치에 서 있었다. 업무로도 다른 사람들을 지휘하고 리딩하는 역할이기도 했고, 주변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언제나 좋은 조언자와 상담가가 되어주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 본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르는 일이 없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렇게 따스한 이야기들은 쉴 새 없이 피어나고 지나갔음에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회사일에만 몰두하느라 나 스스로를 불태우고 더 이상 서 있기도 힘든 몸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친구의 말처럼, '가족이 아니면 평생 다시 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일지도 모르는 직장동료, 이들에게 가족에게 향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이 옳았던 일일까 아이의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쥐었다 펴면서 자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