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에게 새로운 선물을 하나 주었다. 생일도 무엇도 아니지만 휴직의 절반에 가까워 오면서 뭔가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 길어질수록 왠지 모르게 무료감과 허무감이 비례해서 커가는 기분이라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뭔가 전환의 계기가 필요했기에 겸사겸사.
나는 밤에 혼자 달리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지만 이율배반적 이게도 숨이 차오르며 쓸데없는 생각이 없어지며 온전히 지금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러닝 크루니 뭐니 누군가 함께 달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왠지 내게는 잘 맞지 않는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때로는 혼잣말도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낮게 으르렁거리며 그렇게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가는 게 나한테는 맞다.
그래서 좀 더 부지런하게 뛰기 위해서 작은 동기 motivation을 선물했다.
바로 요놈
suunto vertical titanium solar
핀란드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나온 순토 버티컬 티타늄 솔라라는 녀석, 무려 100만원이 넘는다.
사실 난 아웃도어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이미 비슷한 포지션의 시계가 하나 있다. Garmin사의 tactix delta solar라고 역시 100만원이 넘는 제품.
둘 다 어마어마한 아웃도어 기능들을 제공하는 워치지만 내가 그 기능을 십분 활용할 정도의 전문적인 활동을 하느냐 물으면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는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과, 하지 않는 일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그저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넘볼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후자는 당당하게 난 하지 않을 권리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상당한 궤변이지만 나는 그렇게 나 스스로의 자존감을 조금은 뻔뻔스레 챙겨보려 한다. 나는 분명 Halo Jump를 못하는 게 아니라 내 손목에서는 뛰어내릴 준비가 되어있는 시계가 감겨있지만 내가 뛰어내리지 않을 뿐이다.
트랙에 올라서지 않으면서 BMW M8을 왜 사나, 산길을 질주하지도 않을 거면서 Jeep Wrangler는 왜 사나! 다 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서일 뿐이다.
이아린 마라토너와 함께한 나의 달리기
싸구려 자존감은 여기서 잠시 접어두고,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Nike Run이라는 앱에서 러닝 코치라고 달리는 내내 누군가가 응원해 주는 그런 앱을 사용하는데, 그중에서도 목표지점을 돌파할 때마다 '이아린'코치의 인사가 내 마음을 흔들곤 한다.
"다음 스타트 라인에서 기다릴게요"
어찌 보면 별거 아닌 수사적인 인사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큰 위로가 되곤 한다. 오늘 하루가, 지내온 나날이 얼마나 엉망이던지 하루의 끝이라는 골에 다다르고 나면 언제고 다시 용기 내서 올라설 수 있는 스타트라인이 존재한다는 믿음.
최근 들어 내 삶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실패만이 가득할 거라는 부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 부담은 언제나 나를 짓누르며 나날이 늘어가는 정신과 약만이 이를 버티게 하는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다시금 달리면서 느낀 건 '아니 뭐 좀 넘어지면 어때? 내일은 다른 스타트라인에서 다시금 뛰면 되잖아?'
삶은 외줄 타기가 아니라 언제나 다양한 길과 기회가 끊임없이 놓여 있다. 경주마처럼 달리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 때로는 걸으면 어때? 때로는 쉬어가면 어때? 다양한 삶과 다양한 기회가, 언제나처럼 내 앞에 펼쳐져 있을 텐데, 늘 새로운 스타트 라인에서 숨을 정돈하면서 스스로 외쳐보고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