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iden Sep 17. 2024

아빠, 이거 뭐 그린줄 알아요?

장 줄리앙 스타일이랑 완전 똑같은데?

예전부터 딸아이는 전시회 보는 걸 참 좋아했더랬다.

평소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21년에 아이가 좋아할 거 같은 느낌의 작품들이 많아서 후지시로 세이지 작품전에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메모지에 작품을 따라 그리는 게 뭔가 흥미로워서 그 뒤로 전시회에 종종 데리고 다닌다.

'22년. 시립 미술관, 바닥에 주저앉아 스케치

그 뒤로 어딘가 전시회를 다닐 땐 꼭 노트와 책받침을 들고 가곤 한다.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모르는 일이지만 아이 나름대로 작품을 소화하고 즐기는 방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수학 공식 하나 외우고 영어단어 하나 외우는 것보다 아이에게 어떠한 것이든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전시회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다 싶으면 아끼지 않고 가는 편이다. 그리고 전시회뿐만 아니라 캠핑이나 체험활동 등 경험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24년. 타나카 타츠야 : 미니어처 라이프

나이를 조금 먹어 핸드폰을 사주고 난 뒤에는 사진 촬영이 허가되는 곳에서는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곧잘 스케치를 하곤 한다. 

아무래도 사진은 너무 쉽게 기록이 남는 반면에 손으로 그리면서는 스스로 소화되는 무언가의 감상이 있는 모양이다. 해드폰에 너무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아직은 연필을 손에 쥐길 좋아해 다행이다.


그러던 어느 날 '22년 장 줄리앙의 작품 전시회를 딸아이가 무척 재밌게 봤던걸 기억하고 조금 더 머리가 자란 지금은 어떻게 감상할지 궁금해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하고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야, 혹시 장 줄리앙이라고 예전에 막 고양이도 있고 그 전시회 기억나요?"

"아빠 기억나요! 거기서 책도 사줬잖아요!"


'22년. 장 줄리앙 : 그러면, 거기

작품들이 너무나도 말랑하고 부드러워 아이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작품 도록을 사줬더랬는데 용케 기억한 모양이다.


"아빠, 이거 뭐 그린줄 알아요?"

"어, 이거 뭐야 장 줄리앙 아저씨 스타일이랑 완전 똑같은데?"


전시회 이야기를 듣자마자 책장에 가서 도록을 한참이고 뒤적이던 딸아이가 잠시 뒤에 내게 내민 작품.

점토로 만들어서 입체감도 재밌긴 했는데 간결하고 말랑한 표현방식이 장 줄리앙의 스타일과 너무나 비슷했다.

아이가 클레이로 만든 아빠, 엄마


나도 과거 미술학도로 각종 전시회를 꽤나 쏘다녔지만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서 고집이 가득한 뒤라 그런지 늘 보면서도 '잘 만들었네, 좋네, 흐음 그래애'라는 마음으로 딱히 깊은 감상을 소화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반면에 아이는 감상을 하면서 느낀 어떠한 생각을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사실이 가슴이 뭉클하다.

어찌 보면 딸바보 아빠의 콩깍지 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집 벽지에 뜻 모를 낙서만 가득 채우다가 어머니께 얻어터진 나보다는 진일보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쉬면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의 질도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자문.

앞으로의 아이의 삶은 남들과 같은 길을 그저 따라 걷기 보다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결정하고 걸어갈 줄 아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에... 다음엔 어떤 경험을 먹여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