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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Oct 26. 2024

사랑을 잊지 못한 아이2

서인우-1(2/2)

 익숙하지 않은 축축한 느낌에 인우는 꿈속에서 깼다. 커튼 틈으로 가리지 못한 빛들이 베개를 비췄다. 눈물범벅이 되어 회색 자국이 가득한 베개를.  옛날 꿈꿨구나. 인우는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시였다. 그래도 다섯 시간은  것이었다. 수면제 때문은 아닌  같았다. 그건 확실했다.


 여전히 윤에게서부터 연락은 없었다. 어떻게 이 영상을 얻었는지, 혹은 시우의 허리를 고치는 방법이라든가 시우가 춤을 못 추게 막는 또 다른 방법 같은 건 없는지. 이러한 연락이라도 원했지만 핸드폰 창은 조용했다. 인우는 느린 침을 삼키고 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윤이 받았다.


 영상 봤어?”


“으응, 아침에 봤어.”


 그런데도 왜 연락을 안 했지? 궁금한 게 없었을까? 의문들을 곱씹었다.


점심 먹었어? 시우랑 같이 나올래?”


“아냐,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아빠 얘기를 꺼내더라고.”


 인우는 순간 멈칫했다.


뭐라고 그랬어? 아는 눈치는 아니었지? 상처받을 거야. 절대로...”


“간섭 그만하면 안 돼?”


 오랜만에 듣는 신경질 섞인 목소리. 날카로운 말끝. 인우는 윤을 잘 알고 있었다. 싫은 사람한테 저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가 편해서 저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나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간섭이라니?”


“가족 얘기야.”


 윤은 인우가 두려워했던 걸 실현시키고야 말았다. 가족으로 선을 긋는 것. 영원히 자신이 윤의 옆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해 버렸다.


도움 필요한  있으면 말해줘. 목요일에 식사 자리 갖는  변동 없는 거지?”


그것도... 다시 생각해 볼게. 이렇게 계속 만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어.”


무슨 소리야?”


애초에  주현이 때문에 힘들까 봐 네가 봉사해 주는 거잖아.”


“... 다시 연락할게.”


 인우는  회피했다. 홧김에, 순간의 기분 탓에 윤을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분노를  조절 못하는 인우였기에 윤의 앞에서는   걸음 물러섰다. 누구는 답답하다고 해도 어쩔  없었다. 그게 인우가 윤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봉사. 봉사라고? 인우는 눈을 감고  기억 속으로 도망쳤다.


 인우와 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 윤이 인우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다. 학원 끝나고 밤에 집에 걸어갈 , 누가 자꾸 자신을 따라온다고. 인우는 곧바로 걱정하며  학원이 끝나면 데려다준다고 했었다. 그렇게 윤을 집으로 데려다주고 30분이나 다시 걸리는 버스를 타고 집에   인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스스럼없이 부탁한 거지? 자신이 무섭다는  바로 나한테만 알려준 거지? 내가 조금은 특별한 걸까?


 바람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던 일들이 어느  자각과 함께 새롭게 찾아왔다. 가슴 설레는 달콤한 기분이 새롭게 들었던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우는 그런 낭만은 윤과 자신의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우의 하루들은 점점 윤으로 끝나기 시작했다. 첫날은 정말 누군가 따라오는  같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그런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시작했던 걱정은 끝날 수가 없었다. 가로등 하나인데 위험하지는 않을까? 걸어서 15분이라니. 너무 위험하잖아. 실제로는 자신이 집에 가는 길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고 걸어서는 거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계산적일 틈도 없었다. 윤을 생각하면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이 온통 환하게 밝혀졌다. 그러다 가만히 인우는 생각했다. 가로등이  개가 있더라도 자신은 윤을 걱정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만으로 어두운 길을 이겨내는데 너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 같은 생각을 하길 바라면 내가 이상한 걸까?


 인우는 그날 집에 가면서 우연히 자신의  앞에 세워진 가로등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제 가로등  때마다, 어쩌면...


 인우의 가로등은 몇 주 뒤에 바로 꺼졌다.


이제  도와줘도 .”


? 아직 모르잖아. 누가  따라올지도 모르고.”


“너 시간 낭비하는 거니까. 애초에 네가 나한테 일방적으로 봉사해 주는 것도 미안했어.”


 인우는 봉사라는 단어가 마음에 아리게 박혔다. 왜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내 마음을 받지? 그냥 내 마음처럼, 그렇게 쉽게 받아주면 안 되는 건가? 왜 그렇게 복잡하게 계산해? 인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물음표를 달아보았다. 윤은 늘 인우에게 물음표였다.


 인우는 기억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눈을 떴다. 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윤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인우의 마음을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지? 그냥 내 마음을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는데. 수신인이 거부하는 마음은 사랑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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