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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Oct 19. 2024

사랑을 잊지 못한 아이1

서인우-1

*저번 화에 추가하지 못한 시우의 내용을 이번 화 앞에 넣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가 뭐라고 생각해?”


 시우가 하늘을 보면서 고민했다. 한참 동안 대답이 나오지 않자 현이 답해주었다.


신호등.”


신호등?”


“응. 신호등은 분명 사람들을 사랑했을 거야. 그러니까 매일 쉬지 않고 무수한 사람들과 접촉하지. 그런데 아무도 그런 신호등을 돌아보거나 머물지 않아.”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신호등이 있다면  사랑해 줘.”


신호등이 나를 사랑하는  맞을까?”


“분명해.”


  현은 핸드폰을 보더니 이제 가야겠다고 일어섰다. 시우는 그런 현의 머리를 한번  헝클어뜨렸다. 고맙다는 인사도 빼지 않았다.


 시우는 심호흡을 하고 도어락을 해제했다. 윤의 신발은 아침에 본 그대로 놓여있었다. 토요일인데 인우를 만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의문은 들었으나 호기심까지 가지는 않아서 조심스레 방문 앞까지 걸어갔다.


“점심은 먹었어?”


 부엌에서 들리는 윤의 목소리에 시우는 방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꾸 없이 터벅터벅 부엌으로 가 윤이 앉은 식탁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 아저씨 언제부터 좋아했어?”


 시우는 재안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물었다. 윤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갑자기 그게  궁금해?”


“늘 궁금했는데 지금 물어보는 거야.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도 좋아했어?”


 윤이 대답하지 않고 머그잔만 만지작거리자 시우는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봐 걱정했었는데. 시우는 조금이라도 윤을 믿어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쩌지. 내 사랑이 신호등한테는 과분한 것 같은데.






서인우-1


 금요일 밤인데도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쯤 부엌에 가서 수면제를 적당량 입에 털어 넣었지만 역시나 소용은 없었다. 하는  없이  시간을 흐지부지 보낼 생각으로 식탁에 앉았다. 아무 연락도 없어 그저 핸드폰을 의미 없이 배회하던 손가락이 이내 사진첩에 머물렀다.  스크롤을 하려다가, 즐겨찾기로 저장된 앨범을 선택했다. 인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쭈르륵. 윤의  사진들이 정렬되어 나왔다. 이건 유치원 체육대회 . 이건 중학교 입학 첫날 가기 싫다고 찡찡대던 윤의 사진. 이건  학원 야간 연습을 빼먹고 같이 영화 보러  . 사진 하나하나 윤에 관련된 모든  읊을  있었다.


 30 정도 추억에 잠겼던 인우는 핸드폰을 끄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한숨을 쉬고 근래의 윤의 표정을 떠올렸다.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이제는 행복, 설렘 따위의 감정이 아닌 피곤하고 지친 얼굴이었다. 언제부터였나, 고민하다가 시우의 허리에 관련된 얘기를 했던 그날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인우는 실수한 것이 없었다. 진심으로 시우 허리에 대해 걱정을 했으며 해결방안도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분명했다. 그날 이후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뀐 것이. 단순히 시우에 대한 걱정 때문은 아닌  같았다. 나도 아니고 시우도 아니라면? 이주현. 인우가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결국 잠을 자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한 인우는 7 20분쯤 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시우의 학원 공식 계정에 올라온 동영상 링크와 함께. 시우   추더라. 춤을 추며 웃는 시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다. 읽음 표시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다시 한번 지끈거리는 머리에 몸을 침대에 뉘었다. 커튼을 쳐서 어두웠지만 군데군데 틈으로 빠져나오는 빛에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최대한 괜찮은  둘러대도 나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풍경과 닮은  같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의 윤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잠들기  마지막 모습은 시우와 인우,  셋이 나란히  있는 장면이었다.


 윤은 인우의 우주이자 세계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함께하지 않은 처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안에서 책을 읽고 윤과 수다를 떠는 모습은 따돌림의 타깃이 되었지만 그다지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계기로 윤이 항상 지켜주겠다며 인우의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으니까.


 인우의 가정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도 윤을 통해서 알았다. 그러니까 원래는 엄마 아빠가 얼굴이나 몸을 멍이  정도로 때리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공부  한다고 옷장에 가두지 않는  일반적인 거야? 인우는 순수하게 묻는 자신에 울먹거리던 윤의 표정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눈물에 걱정이 스며들면 소중해지는 거구나. 봄이 언제 왔는지,  경계선을 알아? 너한테  봄의 경계 같은 거야.


 인우는 스스로가 덤덤할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평생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고 매일 없어져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사라지니 자기도 모르게 가슴의 한 공간이 미친 듯이 아려왔다. 마음의 중간에 큰 구멍이 났고 그 구멍은 눈물로만 채울 수밖에 없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빗물에 미끄러진.


“이유가 없을 때도 있는 거야. 감정에 물음표 다는 순간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는 거야.”


 윤은 장례식 3 내내 인우의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실성한  인우를 끌어안고 우는 할머니를 위로해 주었고 인우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니까  이상하지.  아무에게도 보이기 싫어했던 부분을 너한테만 보이게 . 그리고 너처럼 불쌍하게 여겨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아닐까?


 윤이 춤을 추지 못한다고 울 때, 이제는 힘들 때마다 자신이 아닌 주현을 찾을 때, 주현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주현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고 슬퍼할 때. 그럴 때마다 인우는 생각했다. 봄을 잊은 줄 알았는데,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인지할 필요도 없이 평생 봄 속에 살아서 그랬구나. 인우는 우주가 매일 밤 멸망하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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