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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닭 Apr 03. 2023

비유와 시

은은하게 매력적인

내 비유가 뭐가 어때서



      하늘

                       유태윤


바다가 얌전하다


                      2009. 9. 17.
                      *도운이 : 교사 서단


  대학교 재학 시절에 한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주도하시는 어린이시 공부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어린이시'는 어린이가 직접 쓰고 본인이 화자인 시로, '동시'와는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보통 '시'가 '시적 허용'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표현에 관대한 것에 비해서, 교수님이 주도하신 '어린이시'는 확연하게 좋은 시, 나쁜 시를 구분했다.

  이 모임에서 나쁜 시를 정하는 기준 중 하나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의미 없고 애매모호한 비유'를 잔뜩 사용한 시였다. 차마 예시를 가져올 순 없지만, '나쁜 비유'를 사용한 시는 시인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도 않을뿐더러, 이해의 책임을 독자에게 넘겨버리고 마는 무책임함도 가진 것이다. 반대로 좋은 어린이시의 예시로 소개된 것이 위에 인용한 '하늘'이라는 시다. 위 시는 1학년 초등학생이 쓴 시로, '비유'의 관점에서 볼 때 어린이의 마음을 어린이의 표현으로 훌륭하게 비유해 냈고, 누가 읽어도 하늘과 바다를 연관하여 썼기에 좋은 시로 본다.

  매 모임 때마다 자신의 시를 써가야 했기 때문에, 나의 시도 질타받기 일쑤였다. 특히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이 비유는 네 의도대로 이해될 수 없단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나는 이에 반발하여 '일반적인 사람'의 기준이 무엇이냐, 교수님이 어떻게 '일반적인 사람'의 기준을 정해서 말할 수 있냐라고 반문하곤 했다. 그렇게 구르고 깨지며 시에 대해 배웠고, 자연스레 '비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비유'라는 개념과 함께 변화한 나에 대해 적어보겠다.



모호하고 애매함



  '비유'는 나와 먼 개념이었다. 나는 본래 비유가 자주 사용되는 시, 소설 같은 '문학' 보다는 설명하는 글, 주장하는 글 등의 '비문학'이 더욱 친숙하고 쓰기 쉬웠다. 상대의 이해 수준을 고려해 자세히 풀어쓰는 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때, 나는 보통 오해의 원인을 잘못된 단어의 선택이나, 단어의 의미에 대한 상반된 해석 때문이라 생각하여, 상대에게 내 의도를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몇몇 상황에서, 풀어 설명하는 습관이 때론 독이 됨을 느꼈다. 가령, 내가 전달하려는 '사랑'은 듣는 이에 따라 '행복', '연민', '열정', '애정', '장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이 되었다. 나는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려 했지만, 듣는 이는 점점 지치게 되었고, 설명조차 본래 의도했던 뜻과는 멀어졌다. 나의 표현능력의 부족인가? 아니면 상대의 이해 능력의 부족인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지? 고민의 해답은 시모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시모임에서 내가 작성한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비유적인 표현에 대한 모두의 이해가 달랐다. 내 의도대로 이해한 사람은 적었고, 교수님은 항상 '일반적인 사람'의 기준을 강조했다. 나는 오기가 생겨 몇 번이고 시를 고쳤다. 내 방식대로 풀어썼더니 재미없는 글이 되었다. 나름 압축하여 비유했더니 의도가 전달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깨달았다. 내가 비유를 어려워 한 이유는, 결국 마음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해 수준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대한 고려가 더 필요했다. 나는 그제야 나의 의사소통 방식이 오해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상대방의 '이해'는 고려할 수 있었으나, '마음'은 고려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나의 '마음'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렇기에 상대의 '마음'도 고려하기 힘들었다. 마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나 감상 같은 추상적 개념은 모호하고 애매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나의 모호하고 애매한 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단건, 결국 남이 보는 내가 모호하고 애매한 사람이었다는 뜻이 되었다.

  


미묘함



  나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비유'를 연습했다. 비유를 하기 위한 마음과 감정들에 집중하다 보니, 나와 남을 더 살펴보게 되었다. 나라는 '집'에게 많은 감정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느꼈다. 잘 부탁드린다고 이사 떡이라도 돌려야겠다. 똑똑 문 두드려 감정들을 부른다. 열린 문 틈으로 보인다. 낯선 얼굴도 있고, 어디서 본 듯한 얼굴들도 있다. 쭈뼛거리며 인사드린다. 나 말고 '남'의 '집'도 찾아가 본다. 감정의 이름은 같아도 얼굴은 나의 감정과 다르다. 집구조도 다르다. 새로운 상대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비슷하나 같은 것은 없다. 미묘하기 짝이 없다.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전에, 나에게 타인은 '모호하고 애매한' 대상이었다. 마치 어두운 골목길 속의 어슴푸레한 형체처럼 불안함과 불편함을 주면서 말이다. 상대가 나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웠던 것이다.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진 후에, 타인은 점차 '미묘'한 대상이 되었다. 알고 보니 골목길 속 형체 또한 나의 형체를 보며 두려워하고 있었고,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한 우리는 약간의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가진 채 서로를 지나쳐 가는 느낌이다. 상대에게서 느끼던 불안함은 줄고, 약간의 기대와 설렘도 깃들기 시작한다.

  시모임 초기에 쓴 시에서는 상황을 설명하는데 집중했다면, 점차 주변에서 보이는 미묘한 마음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는 모임에 써간 시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시다.

            조심해서 써!   
                              
                                                  2017. 6. 7 햇닭

“나 펜 하나만 빌려줄래?”

망가진 펜들이 대부분인 필통에서
하나 남은 멀쩡한 펜을 꺼내 건넨다.

그런데 주고 보니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아끼는 펜이었다.

“잠깐...!”
차라리 내가 쓰던 펜으로 바꿔주려 했는데

아!

내가 쓰고 있던 펜도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펜이었다!

“왜?”
“아..아냐”

줬다 뺐는 것도 이상해서
그저 친구의 손에 잡힌 펜만 쳐다보다 말한다.

“그거 심이 약하니까 살살 써야 해!”

  당시 나의 필통에는 망가진 필기구가 대부분이었는데, 유일하게 멀쩡한 것이 선물 받은 볼펜이었다. 그러나 이 펜 또한 낙하의 충격으로 망가지고 만다. 마음을 보는 연습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는 실망감을 붙잡아 어린이시의 형태로 다듬어 썼다. 물론 모임에선 교수님으로부터 무수한 질타를 받았으나, 미묘한 감정을 '시'로 쓰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애정한다.



은은함



  글을 쓰는 지금도 비유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제는 비유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이전에 '비유'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애매함, 모호함, 미묘함에서 오는 긴장감이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의 비유는 와인을 입 안에서 굴리듯, 은은하게 스며드는 재미로 대하게 된다. 또한 잘 만들어진 비유는 뜻을 잘 익힌 고기처럼 씹을수록 감칠맛을 주거나, 싸구려 팝핑캔디처럼 자극적인 톡 쏘는 맛을 줄 때도 있으며, 아이스크림 튀김처럼 것과 속이 다른 매력을 주기도 한다. 그런 탓에 마음에 드는 비유가 사용된 문구를 저장하기도 하고, 나도 멋진 비유를 만들어내고 싶어 끙끙대기도 한다.  

  특히 소중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나만의 비유를 붙이고 싶다. 나와 상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단어들 -고맙다, 행복하다, 사랑하다, 응원한다-은 나의 마음을 표현에는 다 담을 수 없어서, 새로운 비유를 붙여 주고 싶다. 먼저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떤지 돌아보고, 내가 언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느꼈던 마음이나, 듣고 싶었던 말을 상대에게도 들려준다. 나에게 베푼 감사함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받는 하루가 되기를, 힘들었던 오늘이라도 내일엔 추억이 되길 등. 사실 단순히 비유라기엔 멀어졌지만, 비유 덕에 발전한 마음을 생각하는 표현이 되겠다.

  비유를 통해 발전한 나란 사람도, 누군가에겐 비유처럼 은은한 매력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비유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아직은 '나다움'보다 '대중적'인 게 더 어렵다. 나의 마음을 풀어쓰는 건 상대적으로 쉽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는 건 아직 어렵다.

  시간이 흘러 이 글을 통해 나를 되돌아볼 때, 나는 무엇으로 나를 비유할 수 있을까? 미래의 나는, 내가 성장했든 아니든, 나를 긍정적으로 비유하는 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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