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파수꾼
시작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그 당시 친구들은 '소갈머리 없는 놈'이라고 부르곤 했다. 남중 남고를 나오면서 짧게 자른 머리였는데, 기본적으로 머리숱이 적고 비쳐 보였다. 난 그때까지도 유전적 요인이 절대적이라는 대머리에 대해서 단 한순간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무려, 아버지, 삼촌(2명)이 모두 타민당 최고위원정도는 되고 남을 텐데 말이다. 특히, 작은 아버지는 30대 후반에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에는 어깨 넘어까지 길러보기도 했다. 묶기도 하고 염색도 하고 더블컷으로 꽁지머리를 해보기도 하고 나름 해볼 건 해봤다는 게 다행일까?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할 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이전과는 뭔가 다른 느낌. 대략 23살 정도부터 내 일생의 유일한 예언을 할 수 있었다.
반드시 사라진다.
직장을 구하고는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썰물의 흐름처럼, 거의 걷잡을 수 없는 속도랄까. 다행히 먹는 약을 알게 되어서 진행을 조금 늦출 수 있었고, 그리고 박명수 옹의 흑채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매운 음식을 생각만 해도 땀이 흐르고, 먹기라도 할라 치면 비 맞은 사람처럼 변하는 탓에 흑채의 도움도 제한적이라는 게 흠이었다. 그 당시 만나던 몇 여성들과도 결과적으로는 잘 안되었다. 난 그게 타민당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대기업 회사에서 머리를 민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장기 프로젝트를 세우고 진행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1CM 정도였다. 다들 난리가 났다. 한 3개월은 만나는 사람마다 들어야 했다.
무슨 일 있어? 머리는 왜 (그렇게) 한 거야?
예상은 했지만, 일면식이 있는 사람까지 모두 설명해야 하는 탓에 곤란하기도 했다. 물론 친절히 다 답변해 주었다. 저는 타민당이라, 가리느니 그냥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문제는 어디까지 허용해 줄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분기에 3mm씩 이발기의 칼날 간격을 줄였다.
빌딩에는 약 3~4명의 잠재적 타민당원 후보가 존재했다. 뭐, 당원의 자격을 갖춘 사람끼리는 두상이나 헤어라인만 봐도 감이 오기 때문에 몰라볼 수가 없다. 그리고, 매우 높은 확률(이라고 쓰고 100%라고 확신한다)로 패션기술의 도움을 받는 다수의 군중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유일하게 타민당원임을 내세운 첫 번째 케이스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지만(그리고 높은 확률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잠재적 당원 후보들이 당원화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나의 프로토 타입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였다. 역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에도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거의 없던 당원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난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을 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저들의 정신건강을 구해줬을지도 몰라!
이제는 금기 시 된다는 스킨헤드족이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시 대머리는 놀림이나, 부정적 이미지의 대상화가 되기에 충분하다. 유럽이나 미국도 다수 당원이 있어서 그렇지, 놀림이나 고민은 충분히 많다고 들었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검은색 머리털이 있어야 할 곳에 없거나 짧은 경우, 상당히 안 좋은 시각으로 본다.
내게는 수염이 안 나서 기르지 못하는 사람이나, 팔이나 다리에 털이 없어서 단무지 같은 사지를 흔들며 다니는 사람이나 머리에 털이 안나는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되지만, 유독 머리카락은 달리 평가된다. 물론 나도 헤어스타일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민당인 사람들에 대해서 사회가 좀 더 이해하고 지나갈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을 뿐이다.
사원증을 제시하면 1,000원 할인해 드려요!
카페에서 점원 앞에 기다리는데, 저 멘트가 들리지 않는다. 뭐 나 역시 굳이 할인받으려 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간혹, 회사 앞을 지나다 농성하는 시위대를 만나는 경우도 많다. 삭발식이라도 하거나 짧게 자른 머리에 빨간 띠라도 두른 분들 옆을 지나가면 해당 회사 경비원의 눈초리가 심상찮다. 그래서 그런가? 타민당 분들 중에서는 김구선생님이 떠오르는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분들이 꽤 많다. 마치, "나는 투쟁 아니에요. 중도 아니에요. 직장인이라고요!"라고 non-verbal 언어를 말하는 것만 같다.
엄마 저 아저씨 대머리야! 쉿~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아이고, 괜찮아요 아주머니! 얘 대머리 처음 보니?"라고 웃어 보여주는 여유 정도는 타민당원으로서 필수 덕목이다. 아... 이런 경우가 제일 난감하다. 성인이 눈 똥그랗게 뜨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야 보이는 대로 말하는 거니, 일종의 아이들의 fact 체크랄까? 물론, 괜찮지 않다. 딱 "엄마 저 아저씨 머리가 투블록이야, 저 아저씨 머리가 꽁지머리야. 저 아저씨 머리가 상고머리야"라고 하는 정도만큼 괜찮지 않다. 굳이 말할 것까지는 없잖니? 이 예쁜 꼬마 아가씨야.
바람이 있다면, 타민당원이 더 많아져서 굳이 팩트 체크를 당하거나, 이유를 묻지 않는 세상이 되는 정도다. 아! 한 가지 더 생각났다. 제이슨 스타뎀이나 드웨인 존슨, 브루스 윌리스, 윌스미스처럼 멋진 타민당 액숀 스타 정도는 나와줬음 한다. 물론, 우리에게도 일찍이 조춘 옹이 계셨지만...
사소한 것에서 할 수 없다면, 더 큰 어젠다에서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대머리 정도쯤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그 이상도 꿈꿔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양성에 대한 존중 말이다. 너무 나갔을까? 뭐 너무 나가면 어떤가? 나 스스로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살아가는 거지!
나는 오늘도 이 사회가 한층 다양해지는 것에 작은 노력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