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이 함께 망설이는 이월이다. 간간이 햇살에서 흘깃 봄기운이 스쳐 지나가고 언덕 아래 수양버들의 노랑이 짙어지긴 했지만, 결국 수요일 아침 함박눈이 펄펄 날렸다. 마음이 움찔 뒤로 물러섰다. 봄은 아직 먼 것 같으니 아무래도 내가 반격에 나서야겠다.
실내에서 싹을 틔우기로 했다. 화분용 흙에 씨앗을 심어 남향 창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며칠이나 봄을 앞당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지난해 실내에서 키워 내다심은 꽃들이 냉해를 피해 잘 자라주었으니, 올해도 씨앗의 반격을 기대해 본다.
그로서리에 들렀다. 습관처럼 꽃 진열대를 훑어보다가 눈길이 멈췄다. 마침내! 오래 기다렸던 리시안셔스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꽃을 제철도 아닌 2월에 만나다니. 섬세하고 우아한 선이 아름다워 넋을 잃었다. 한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장미꽃인가요? 아니요. 리시안셔스예요. 여자는 꽃의 미모에 감탄을 연발하더니 보라 한 다발을 카트에 실었다. 나도 분홍 한 다발을 안았다. 마음에 봄볕이 성큼 들어섰다. 여린 꽃잎의 반격이다.
리시안셔스의 별명은 ‘가난한 남자의 장미’다. 장미를 닮았지만, 값이 더 싸서 붙은 이름이다. 꽃 이름에 웬 경제관념, 그것도 가난이라니! 처음 들었을 땐 어쩐지 거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름의 반짝이는 이면이 보였다. 가난한 남자가 내민 장미란 모멸을 감수한 용기일 테니. 그 마음은 절절하겠다.
언제부터인가, 멜로가 뜨악했다. 영화를 보다가 로맨틱한 장면이 나오면 생뚱맞게 느껴지고 이야기 속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흔한 사랑 이야기가 식상하기만 했다. 그런 중에도 드물게 마음을 울렸던 장면이 있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응급실로 실려 가는 선배에게 마음을 고백하던 김혜수는 그지없이 사랑스러웠다. 범인 잡는 이야기에 웬 멜로냐고 툴툴댔지만, 아이같이 울음을 터뜨리던 그녀의 순수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구애란 스스로 약자의 자리에 내려앉는 모양 빠지는 일이지만, 누군가를 향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다는 건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빛을 가두지 못하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란 값싼 꽃을 빌어서라도 기어이 표현될 수밖에 없으니. 해야 할 말을 담아둔다면 속에서 불이 될 것이다. 쌀쌀맞은 내게 오늘 리시안셔스를 든 남자가 왔다. 그도 오래 내 기억에 남게 되겠지.
화병에 꽃을 담았다. 절반은 이미 피었고 절반은 아직 봉오리다. 봉오리마다 꽃받침에서 올라온 초록의 사선이 꽃잎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있다. 선이 쥔 손을 펼 때쯤 봄이 오려나. 여인의 마음을 얻기 원하는 가난한 남자의 간절한 마음처럼 나는 지금 봄을 기다린다. 긴 우기의 덫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시애틀 여자에겐 사랑보다 봄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