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먹으랬지?
부엌 창밖에 벌새 먹이통을 달아 두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이 작고 신비한 새들을 관찰하는 즐거움이 컸다. 여러 달 동안 애나, 루비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벌새들이 부지런히 오갔다. 그들은 모두 사이좋게 긴 부리를 꽃 모양 구멍에 넣고 설탕물을 빨아 먹었다. 먹이통엔 구멍이 다섯 개라 두 마리 이상이 동시에 식사를 즐기는 모양도 일상이었다.
늦가을 마당에 피었던 꽃들이 지고 먹이의 공급이 줄어들자 문제가 생겼다. 빨간 얼굴의 애나 벌새 수컷 한 마리가 먹이통을 독점했다. 날카로운 눈과 오동통한 몸매에서 과한 욕심이 뚝뚝 떨어졌다. 제 배를 다 불린 후 베란다 앞 사과나무 가지에 앉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먹이통을 종일 감시했다. 다른 벌새가 먹이통 가까이에 오면 바로 달려드는 모습이 매우 위협적이었다. 새들은 삑삑 소리를 내며 혼비백산 달아나버렸다. 녀석의 횡포를 보다가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녀석이 항상 앉아있는 그 나뭇가지는 바로 찰리가 매일 앉아 있던 자리였다.
지난봄이었다. 딸이 손가락으로 일러주었다. 자세히 봐야 찾아낼 정도로 아주 작은 벌새였다. 매일 같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아직 부리가 짧은 아기였다. 딸은 그 녀석을 찰리라고 불렀다. 어른 벌새들이 다녀간 한가한 시간에만 포르르 날아와 단물을 마시고 다시 제자리로 날아가 앉곤 했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요즘 독점으로 심술을 부리고 있는 녀석이 다 자란 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몇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섯 살 즈음의 일이다. 아버지가 대문 옆 대추나무에 그네를 달아주셨다. 어린 날의 그네란 어찌 그리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아슬아슬 아득하게 바람 속을 오갔다. 어느 날부터 그네가 쉬고 있을 때면 동네 개구쟁이들이 살며시 대문을 열고 들어와 그네를 탔다. 집 안에서 놀다가도 삐꺽 철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나는 달려 나가고 아이들은 대문 밖으로 내달리곤 했다.
동네 오빠들이 자꾸 그네 타러 온단 말이에요! 볼멘소리로 아버지께 일렀다. 아버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함께 사이좋게 타야지. 야단치시는 소리가 아닌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부드러운 눈빛에 담긴 뜻은 너무도 명확했기에 어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그네 때문에 속을 끓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이른 시간인데 벌써 찰리에게 쫓기는 새들의 자지러지는 소리가 닫힌 창을 넘어 들어왔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나가니 찰리는 사과나무 제자리로 휙 날아가 앉는다. 넌 좀, 나눠 먹으라구! 나는 아버지처럼 부드럽게 타이르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녀석이 놀라 등을 보이며 멀리 날아갔다. 아무래도 결정을 내려야겠다. 무한 공급이 보장된 나의 은총을 접기로 했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 줄을 풀고 먹이통을 내렸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먼저 보통 독점자는 수컷인데 영역 싸움이 치열하다. 강자의 우월한 유전자가 전달되는 방식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설명했다. 새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몇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찰리는 그저 본능에 충실하며 자연의 이치에 따랐을 뿐이었다. 괜시리 노다지를 내다 걸어 새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킨 것은 오히려 내가 아니었을까?
사람의 세상은 어떠한가? 여기도 소란한 것은 매한가지다. 기득권의 욕심은 불 번지듯 슬며시 불법과 횡포로 옮겨 붙는다. 이런 일을 저질렀을 때 부끄럽게 여기지 못하고 오리려 당당하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댄다면 그 양심은 이미 병이 중하다. 동물세계에서 강자의 독점이나 폭식은 자연의 이치라 부르나, 사람의 세상에선 강자가 약자를 학대하고 독식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지나 풍요의 땅에 들어가기 전, 창조주는 그들에게 법을 주었다. 그 중 유독 마음을 다독여주는 구절이 있다. “너희 땅의 곡물을 거둘 때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과 타국인을 위해 버려두라.” “너희도 이집트에서 타국인이었다.”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찰리가 몇 번 왔었다. 먹이통을 매었던 줄 근처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개를 퍼덕이다 떠났다. 그거 봐 내가 뭐랬어. 다 떨어지면 다시 채워 줄 텐데. 나눠 먹으랬지? 혼자 중얼댔다. 녀석이 더 이상 오지 않는 창밖엔 빛이 주연이다. 열매를 내려놓은 사과나무 가지에, 가을걷이가 끝난 허전한 밭에, 남은 해바라기 씨앗이라도 건져볼까 찾아오는 다람쥐의 등에도, 가을볕이 두루두루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