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9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것이 없다’
(『몰개월의 새』 中).
우리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수많은 추억들과 더불어 수많은 후회들을 양산해낸다.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이라는 개념 속에서 우리들은 행위를 하고, 그 행위들은 결국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남게 된다.
초 단위로 흘러가는 이러한 시간의 속성에 관하여 깊게 고찰하다보면, 결국 그 종착지는 허탈함에 다다르게 된다. 어쩌면 모든 일들은 이미 일어났던 것이고, 우린 이미 일어난 그 일들을 시간에 맞춰 과거로 만들고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닐까? 과연 ‘현재’, ‘지금’ 이라는 순간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 생각을 한 순간 조차도 결국 과거로 남아 현재는 또 사라지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이 망상을 멈출 방법은 오직 하나. 환기를 시키는 것이다. 현재는 없을지언정, 언젠가 과거로 묻히게 될 이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후회 없이 남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작품 속 ‘나’는 미자가 준 오뚜기를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 그 후에야 그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눈치 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몰개월의 새』 中).’ 라며 회고한다.
삶은 유치함의 연속이다. 난 특히나 유치한 것들을 더 좋아한다. 여전히 어린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들을 좋아하고, 디즈니랜드를 선망하며, 미니마우스와 관련된 물건들을 사 모으는 것을 즐긴다. 이러한 개인적 취향과 더불어 표현에 있어서도 유치함이 간혹 드러나곤 한다. 사랑은 사람을 더 유치하게 만든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기분을 대기권에서 맨틀까지 끌어내리기 일쑤다.
그 사소함에서 비롯된 서운함은 참을 수 없이 커져 어린아이처럼 상대방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싶은 충동을 들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유치함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순간순간을 사소하게 포착하여 그 상황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상황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감정이다. 혹자는 물건 하나에 의미부여를 모두 하는 것은 피곤한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고 하얀 플라스틱 오뚜기 하나에 의미부여를 한다면 당시 나의 감정을 형상화한 산물로 남게 된다. 순간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그렇기에 난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이 순간들 사이에서 더 매력적인 과거를 만들기 위해 유치함으로 나의 미래를 꾸려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 애를 웃게 해주고 싶을 땐 유치한 편지지에 유치한 내 마음과 이모티콘을 가득 담아 전해줄 것이고, 아주 유치하게 단 맛의 케이크를 구워 내 마음을 표현해줄 것이다.
시간의 속성과 더불어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나의 유치함. 하지만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것이 없다’ 이 문장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하다. 난 여전히 유치할 예정이지만, 인생엔 유치한 것이 없다. 결국 이 글도 과거에 쓴 글로 돌아가겠지만, 결코 유치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