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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은 Jan 03. 2023

사랑의 정의

사랑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난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그것이 사랑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그 어떤 무엇이든 간에.

    이삿짐을 정리하며 정말 많은 물건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뒤져본 책상 아래 수납장 속을 보곤 잠시 멈칫했다.

    아주 오래 전 내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다고 자부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탕병을 받은 지 오늘로 딱 6년이 되는 해인 듯 하다. 2016년 화이트데이 때 받은 저 사탕을 비롯하여 그 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수많은 쪽지와 잡동사니들이 지난 6년 간 내 수납장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난 너무 아끼고 소중한 물건은 사용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이 사탕병 또한 겉 비닐 포장조차 뜯지 않은 채로 그대로 보관해왔다.


     참 많이도 아파했었다. 어린 마음에 대체 무엇이 날 그렇게 아프게 찔러대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로 홀로 수 년 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열여덟, 어린 마음에 난 이 친구를 좋아했던 그 마음이 사랑이라 판단해왔고, 그를 첫사랑이라 치부했었다.

    그 때 그 감정을 부정하진 않겠다만 성장한 현재의 나로서 열여덟의 나를 바라보자니 참 애석할 따름이다. 그 때의 난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던 듯 하다.

     첫사랑은 내가 처음으로 좋아하고, 가장 많이 좋아하는 대상을 일컫는 것이라 스스로 정의했다. 나의 첫사랑 정의법이 통용된다면, 내 첫사랑은 현재 내 남자친구일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참 낯설고도 아이러니하다. 그 때의 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했다. 표현법이 늘 서툴렀고 그 친구는 그런 나의 표현법을 이해하지 못 했었다.

     현재 내 남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난 가능한 한 나의 감정을 최선을 다 해 표현하려 노력한다. 그 친구가 이 글을 본다면 웃을 지도 모르겠다.

늘 내 자존심이 너무 세다며 어떻게 고쳐내야 할 지 고민하는 그 친구는 어쩌면 이젠 고민거리가 조금 줄었을 수도 있겠다.

     그 자존심 세던 난 상대방을 위해 자존심을 굽히는 방법을 배웠다. 늘 바쁜 그 친구에게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서운하다는 말을 하기 보단, 고생했다는 따듯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갖는 법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난 소중한 하루하루를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영위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한다.

     주어진 우리의 시간 속에서 난 최선을 다 하고 싶다.

며칠 전 그이에게 네가 내 첫사랑이야 라고 장난스레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장난을 빙자한 진심이었다.

그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거짓말 하지 말라며 앞만을 응시한 채 운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 봤다. 그 애의 슬쩍 올라간 입꼬리를.


     이제 난 더 이상 편집증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불필요한 모든 잡동사니들을 처분했다. 더 이상 보지 않는 입시 서적들, 내가 죽도록 열심히 써서 냈던 500여 편의 논술 포트폴리오들, 중고등학생 시절 나를 빛내주었던 트로피들, 오래되어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나의 립스틱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6년 전 화이트데이였던 오늘, 받았던 그 사탕병의 포장을 뜯었다.

유통기한은 이미 3년이나 지난 터였지만 게의치 않았다. 난 망설임 없이 딸기맛 사탕을 골라 입에 넣었다.

보기에도 참 달콤해보였는데, 입 안에 넣으니 더 달콤하더라.


     이로써 다시금 체감한다. 사랑은 관상용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딸기맛 사탕 하나를 입에 문 채 사탕병을 분리수거 통에 넣었다. 내 마음 속 단 한 톨의 후회와 미련 없이 모든 것들을 버렸다.

     쥐고 있던 것들을 놓고 나니 두 손이 가벼워졌다. 이젠 이 빈 손으로 마음껏 그 친구를 안아주고 싶다.

먼 훗날 현재의 우리를 바라보았을 때, 한치의 후회도 없을 만한 과거로 회상되길 바라며

난 오늘도 더 최선을 다 해 물건들을 버린다.

앞으로 채워나갈 사랑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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