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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은 Feb 18. 2023

어떻게 지내, 식상한 말이 이 제목이 될 줄 몰랐어

you and i just can't say goodbye.

이건 여름이네

  새 해가 밝고 이젠 더 이상 신년이라는 것에 대한 감흥이 줄어들 1월의 말이 되어 갈 즈음이면 문득 스쳐가는 수많은 잔상들.

  

  겨울의 향기는 늘 내가 즐기던 올드팝, bobby caldwell의 그루비한 선율을 담은 채 스산하게 내게 다가왔다. 나의 열정, 나의 사랑, “내가 널 이다지도 사랑해!”라고 온몸을 통해 표현하는 이 노래는 이 계절과 상반되는 듯하다.


  20살을 갓 넘긴 난 매일 너의 앞에 앉아 늘 똑같은 캐모마일 티를 마셨다. 어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죽도록 파헤치는 날 알듯, 넌 늘 나의 앞에 캐모마일 한 잔을 내어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계절은 늘 일관적이었지. 예쁜 토파즈 빛의 부드러운 캐모마일 향, 추위에 약한 날 위해 늘 데워놓았던 너의 차 조수석, 그리고 우리가 늘 걷던 그 강변, 지겹도록 반복해서 듣던 나의 플레이리스트.


  지겹도록 하나에 파고드는 나처럼이나 너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어느 한 노래에 꽂히면 그 노래의 한 구절만 주구장창 부르던 너였으니 말야. 그 해의 겨울은 “어떻게 지내”였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무언가를 그려내길 좋아하던 끼 많던 넌 늘 내 앞에서 ‘어떻게 지내, 식상한 말이-’ 이 구절만을 반복해 불렀다. 한 계절을 듣다 못한 내가 지겨우니 이제 좀 그만 부르라며 노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었을 정도로 말이다. 금지 조항으로 무엇을 덧붙였는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이젠 아득해진 그 해의 겨울이 그저 야속할 뿐.




  Bobby caldwell의 can't say goodbye는 그 시절의 내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였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노래가 나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과연 우연인 것일까? 그 겨울의 너의 차에선 늘 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우린 이 선율에 맞춰 흥얼거리기 일쑤였다.


  ‘You and I just can't say goodbye. till the day I die, i will love you.' 영원할 것 같던 우리 사랑에 걸맞던 가사였으니까. 내가 널 사랑하는 그날까지, 우린 작별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사랑했는가 보다.

  

  허나 결코 식지 않을 것만 같던 그런 공고한 사랑은 결국 작별을 고하게 되어버려 더 이상 이 노래를 쳐다도 보지 않게 만들었다. 지난 2년 간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이 앨범을 틀어 볼 수도, 캐모마일 티를 마실 수도, 그 강변을 걸을 수도 없었지. 그 해의 맑았던 나를 복기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공고한 사랑을 믿지 않는 나는 안다. 작별 없는 관계란 없다는 것을. 여울 속에서 잔뜩 빛을 머금던 윤슬은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늘 반짝이는 사랑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니.


  그래서 이젠 이 노래를 널 떠올릴 때마다 한 번씩 열어본다. 그저 너를 복기하는 것이라기 보단, 그 시절의 사랑에 젖어 온몸이 축축해 누르면 설탕물이 나올 듯 사랑에 절여진 날 떠올리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은 나도 모르게 네가 자주 부르던 그 노래의 구절을 흥얼거려 본다.


어떻게 지내, 식상한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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