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달 후에 느끼게 된 일상의 소중함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면 한인 커뮤니티를 접하게 될 기회가 한 번쯤은 있는데, 몇 차례 한인분들과 만나게 되면서 참 당연하면서도 특이하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 그들의 유별난 김치 사랑.
사실 한국에서는 김치가 매 끼니 식탁마다 으레 올라오는 찬이기에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도 김치 얘기로 대화를 꽃피울 기회가 흔치는 않다. 하지만 한국에선 들판에 자란 웬만한 풀뿌리를 절여서 김치 담가먹던 그 취향이 미국에서 버려지지 않을 터. 구하기 힘든 양념으로 범벅된 김치가 우리에겐 늘 대화의 화두이다. 어디 한인마트의 김치가 맛있더라. 김장을 하러 한인마트에 장을 보러 갔었다 등의 대화가 늘 한인들이 모이면 으레 하는 빈출 대화 중에 하나이 곤 했다.
어디 김치뿐이겠는가, 미국에 오면 한국에서 숨 쉬듯 무의식적으로 누리던 사소한 일상들이 그리워진다. 그때는 그럴 줄 몰랐지만
지긋하던 직장으로의 출근길이 그립고, 내 전 직장은 잘 있나 괜스레 인터넷을 두들겨 보기도 한다. 늘 가까이 있어서 그렇기에 한 번씩 대화 나누던 부모님이 멀리 있으니 그렇게 그립고, 집 앞의 편의점, 집 주변의 맛집이 그토록 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만약에 내가 한국에 계속 살고 있었더라면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란 것을
미국에 이민오기 한 5일 전쯤, 시간이 되어 하루정도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사실 서울에 살고 일하면서 남산타워, 경복궁, 한강공원은 그리 자주 가는 장소가 아니었던 듯하다. 내 집과 직장을 왔다 갔다 하며 그리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번 가보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언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비용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마음속의 확신이 있었기에 그랬는지, 이날의 하루는 나한테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늘 보던 서울의 모습이 가는 길목마다 각별하게 담겼고, 희한하리만큼 발길이 닿는 곳 구석구석마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 있었다. 집에 가는 발길이 아쉬워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캔 따고 담배를 연신 물어대며 혼자 자정이 될 때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서 이렇게 편안히 돌아다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에 매 시간마다 아쉬움을 두고 다녔다.
그리고 미국에 이민을 와서 내가 지금 정말 귀중하게 추억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예전엔 당연히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것."
내 부모님과 가족, 우리 동네, 내가 일했던 직장의 따뜻한 동료들, 내가 자주 갔던 음식점. 그 모든 것들이 이곳에선 너무도 각별하다. 그렇기에 그때 충분히 누리고 나의 마음을 충분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지금은 사무치게 후회되기도 한다. 물론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 언제든 다시 누릴 수 있지만, 지금 다시 돌아가서 누리는 그 한때의 일상은 그때와 같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 인생의 한 장이 너무 두텁게 넘어가 버린 것 같아 씁쓸함이 감돈다.
흔히들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했다. 난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있을 땐 귀한 줄 몰라 홀대했고, 떠나니 귀해져서 뒤만 돌아보는 것.
어쩌면 그래서 누군가는 현실에 충실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치열하게 지냈던 순간순간은 그래도 다른 시간들에 비해 지금은 아쉬움과 후회의 감정보단 "그땐 그랬었지" 정도로 무던하게 기억되는 것 같다. 지금은 어쩌면 당연히도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펼쳐진다. 공부할 때나 연필 쥐고 쓰던 외국어로 부딪치며 내 일상의 업무를 해결해야 하는 시간들은 끊임없는 도전이자 시련의 연속이지만,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치열하게 이 시간을 어쩌면 "기회"로 여기면서 충실하게 겪어내면 나중에 남는 건 후회가 아니라 추억이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어릴 때의 나와 달리 누가보아도 예전보다 더 힘들 지금의 상황에서 "출근하기 싫다"는 감정은 쉬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매 순간 후회를 두지 않기 위해 내가 몸소 겪어가며 얻은 나의 작은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