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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rrick Kim RN Sep 14. 2022

간호사를 하고 싶지만 더이상 간호사를 할수 없다

직업과 수행 그 사이 모호한 경계

내 모교는 한해 간호사 면허증을 들고 일터로 향하는 이가 100 명 내외쯤 된다. 해마다 100명,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데, 지금 이 순간 그 면허증을 가지고 임상에서 고군분투를 하는 동기는 기껏해야 10분의 1 정도 될까 말까이다. 그마저도 환자 곁, 그야말로 참된 임상을 떠나 그냥 병원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만 그 정도쯤 될까 싶으니, 무슨 일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건 우리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직업에 대한 개념을 갖춰나가던 그때는 평생을 업에 헌신하고 몸담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의미도 충분한 직업이기에


 학생으로서 우리는 직업 세계에 몸을 담기 전에 "양성소"와 같은 훈련을 병행하게 된다. 4년이라는 기간, 길다면 또 길수 있지만 이대로는 도저히 환자 케어에 의미 있는 행위를 습득하기엔 모자란 시간을 통해 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며 기술과 지식을 익혔다. 그때는 주어진 과제에 급급해 쳐내기 바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조금 더 충실하게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 시기의 마지막쯤에 도달하면 대부분의 루키들은 사명감에 한껏 고무되어 있다. 물론 들려오는 풍문이 있으니 두렵기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내 일이 되기 전에는 남일이듯, 이 조차도 "나는 기능을 잘하는 의료인이 되겠다"는 다짐에 앞서지 못했다.


간호사는 봉사자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받고 간호 행위를 수행하는 "직업"이라는 점을 인지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신규 때의 적응은 나에게 너무나도 고되었다. 4년간의 교육은 임상에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고, 혼나고 배우는 과정을 몇 달간 거쳐야 했다. 잘해도 혼나고 못해도 혼나는 그 시절의 나에겐 가장 중요한 게 자존감을 정립시키는 일이었다. "기능을 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친다"는 생각에 끝도 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을 부여잡으며 점점 단련되어갔다. 그즈음 되어가자 간호사는 원하는 것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해주는 사람이라는 신조가 자리 잡았다. 아무리 친절해도 투약이나 시술에 큰 실수가 있게 되면 그 친절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때론 비치료적인 행위에 단호히 만류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드물긴 하지만 잠깐 짬이 나면 마음을 나눠 조금이라도 정서적인 안정 상태를 도모해 치료의 과정에 고단했던 몸과 마음을 풀어줘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은 "수발드는 직업",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직업"이라고 비하하기 일쑤였지만 내 직업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환자의 일생일대의 고비를 넘기는 이 순간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서


하지만, 연차가 쌓여가면서 한 가지 느끼게 된 것은 우리 사회 대부분은 나를 "그래 봤자 간호사"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모 병원에서 신생아에게 과량의 약물이 투여되어 사망한 의료사고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었다. 우리 정도쯤의 연차가 되면 "도대체 저 약을 왜 저 용량으로, 무슨 생각으로 줬을까?"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그 간호사가 처방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고, 용량을 정확하게 재서, 정확한 경로로 투여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여유는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한 명씩 공들여하게 되면 내가 맡을 반절의 환자는 방치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간호행위는 병원에서 수가로 책정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은 구태여 많은 간호사를 뽑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공짜 간호를 하고 있고, 환자는 우리를 처방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오더리"정도로 알고 있으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처방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고, 처방이 잘못된 경우엔 의사에게 처방의 정정도 요구해야 하며, 머리 맞대 공부하고, 최신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가면서 환자 간호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학습하고, 남의 실수를 메워주고, 수시로 필요한 간호를 판단해서 적시적기에 제공하며 게다가 신규 교육까지 동시에 수행하는 연차가 쌓인 간호사의 경제적인 보상은 신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선진국과 같이 간호사의 능력에 따라 갖춰진 직급도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보상도, 대우도 "내가 환자의 생과 사를 함께하는 직업"이라는 사명감을 덮어버리기 십상이다. 물론 그 와중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나는 우리끼린 공부와 최신의 임상지식을 공유하며 전문직으로써의 사명감을 가지자는 상황과 돌아서면 투약 중에 물건 좀 주워달라고 윽박지르고 뭔가 간호행위에 대해 설명하려 하면 의사 불러오라는 상황의 괴리를 병동에서도, 지역사회 검진센터에서도 극복할 그릇은 되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을 계기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 시국을 맞아 간호사들이 고생이 많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난 말하고 싶다. 우린 항상 그렇게 일해 왔어요.


그렇게 우리는 늘 최선을 다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서로 피드백을 줘가며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다듬는다. 우리라고 즐거운 근무환경을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실수을 보듬고 수습해 주고 교육해주면 어느새 몇명의 환자가 방치된 현실을 외면할수 없어 우리는 우리의 직장에서 소소한 즐거움은 포기한지 오래다. 밥을 먹는다는 건 병동에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뭘 마시는 것도 화장실 갈까 봐 부담스러워서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늘 그렇게 간호사로써 환자 곁에 있어왔다. 그래 봤자 매스컴에선 스테이션에 앉아 커피나 마시면서 의사 처방에 "네 선생님" 하면서 수다나 떠는 한가한 직업으로 비치지만.


간호사로써, 내가 정말 필요했던 것은 경제적인 보상보단, 내가 사회에서 귀중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차의 대부분의 동료들은 이미 임상을 떠났고, 그렇게 우리 사회는 유휴 간호사가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다. 소위 사회가 규정하는 "유능한 인력"은 비영어권 국가로썬 이례적으로 상당히 많은 수가 말도 문화도 정 반대에 가까운 미국으로 이민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간호사 생활을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지금은 임상에서 손을 떼었지만, 가끔 임상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약간 피가 들끓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 여력이 되는 한 간호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의 신규 때 다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내 여력이 되지"가 않을 것이란 점을. 보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적당한 보상을 받아가며, 무엇보다 사회의 존중을 받아가며 국민건강을 지키는 허리 역할로 인정받는 다른 선진국의 간호사와 똑같은, 아니 오히려 더 많은 능력치를 요구하고 인식은 그러하지 못하다면 역설적이게도 나와 같이 간호사를 평생의 업으로 하고 싶어 떠나는 간호사가 앞으로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임상에선 간호사가 모자라 늘 인력난에 허덕이는 모국을 안타가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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