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떤 동료 교사가 교직 사회를 다룬 ‘블랙독’이라는 드라마를 꼭 보라며 강력히 추천했다.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는 기간제 교사를 주인공으로 교직 사회의 정치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달 전에 또 넷플릭스에 블랙독이 올라온 걸 보았지만 결국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는 못 했다.
나는 첫 교직을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로 시작했다. 요즘은 사립학교들이 국가교원임용고사에 위탁하여 신규교사를 임용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재단 자체 전형으로 신규교사를 선발했다. 때는 사학법 개정과 기간제 교사 비율 확대로 어수선한 2006년이었고, 정교사를 뽑지 않는 학교가 많았다. 내가 지원한 사학재단도 이례적으로 임용 공고문에 정교사 정원을 명시하지 않고 기간제 교사 모집 공고문을 냈는데, 모집인원 아래 기간제 교사로 임용된 자에 대하여는 일정기간의 근무평가 및 별도의 심사과정을 통하여 정규교원으로 임용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그리고는 시험, 면접, 수업 시연, 심층면접까지 4차에 걸쳐 기간제 교사를 선발하였다. 정규직과 동일하게 여러 단계를 거쳐 임용이 되었기에 혹시나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살짝 했지만 아쉽게도 김칫국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어수선한 때에 나의 첫 교직생활이 시작되었다. 재단의 한 학교에 발령받기 전 오리엔테이션부터 함께 참가했던 신규 기간제 선생님 3명과 제일 먼저 친해졌고, 이후 기존에 근무하고 있던 기간제 선생님, 동교과 선생님, 동부서 선생님과도 곧 친해졌다. 실제적인 학교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기존에 근무하던 기간제 선생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그 중에서 이 재단에서 근무한 지 3년차이자 나와 같이 학생부에 소속된 사회 선생님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 선생님과 나는 학생부 소속으로 아침 등교지도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사회 선생님은 맡은 업무 외에도 다른 업무를 많이 하고 계셨다. 점심시간에는 그린존에서 학생들의 분리수거를 지도하셨고(이건 환경부 업무인데?), 총학생회선거 때는 실시간 개표방송(이건 학생부 다른 선생님 업무인데?)을 아주 멋지게 준비해서 진행하셨다. 총학생회선거가 끝나자마자 연간업무계획서(이건 교무부 업무인데?) 편집을 부탁받아 기꺼이 맡아 하셨는데, 이때는 학생부장 선생님께서 교무부장 선생님을 찾아가 화를 내셨다. 그 사회 선생님은 당황해하며 학생부장 선생님을 말리셨다. 또 학생부 부서회식 때는 그 선생님이 장소를 예약했고 끝난 후에는 다른 선생님께 대리 운전을 불러다 드렸다. 1학기말에는 1박 2일로 친목회 연수를 갔는데 마트에 가서 과자, 음료, 사탕 등 간식을 사서 간식 팩 80개를 만들었다. 이때는 나를 비롯한 다른 기간제 선생님들도 친목회장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함께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학교 3년차인 그 사회 선생님은 그 해 정규직이 될 거라고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립 재단 상황이 좋지 않아 정규직에 임용되지 않았고, 아마 그 선생님은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 선생님은 다음 해에 정규직 교사가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는데 마음 한켠에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른 학교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더 무시무시했다. 담임은 물론이거니와 기존 선생님들이 맡기 싫어하는 업무를 모아서 기간제 교사 업무로 배정하는 학교도 있었다. 또 “쌤, 이거 한번 해볼래? 이런 것 배워놓으면 쌤한테 도움이 될 거야.” 하며 거절하기 힘든 입장을 이용해 은근슬쩍 자신의 업무를 넘겨주는 곳도 있었다. 반대로 힘든 일도 주지 않지만 일 년 후에 갈 사람이라 생각하고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근무한 친구는 급한 공지를 듣지 못해 당황하기도 했다고 했다.
일 년이든 육 개월이든 기간제 교사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교육에 임하고 있는데, 학교마다 사람마다 기간제 교사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달랐다.
2006년 겨울, 나는 임용고시를 재수하고 낙방을 거듭하며 너무 지쳐 있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교직에 뜻을 두었던 마음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 가서 교육 활동의 기쁨을 느껴보고 교직에 대한 꿈을 되살려 보고자 기간제 교사를 시작하였다. 내가 경험한 학교는 교육에 대한 열정과 배움의 기쁨이 충만한 곳이기도 했지만 지위와 권력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과 차별, 소외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첫 해 교직 생활이 끝날 때 즈음 내 마음 속에는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내가 가고자 하는 학교는 어떤 곳인가?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