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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6. 2022

3.3 갑 & 을

  재외한국학교에서 학교의 문제와 해결책을 알고 있으나 차마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한편 재계약을 원치 않는다며 교육활동에 소극적인 선생님들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학교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갑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학교에는 갑질하는 사람이, 갑에게 아부하고 아첨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년 3월, 재외한국학교에 2년제 계약직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한국의 학교에는 고용휴직을 신청하여 허가를 받았으며, 재외한국학교에서는 임용계약서를 작성하였다. 그 당시에는 임용계약서를 쓴다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선생님들과 교무실에서 차를 마실 때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은 국공립학교 교사예요?” 이 질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네”라고 대답을 했지만, 이 질문에 대한 의미는 몰랐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은 2년만 여기에 계실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잘 모르겠어요.” 였다.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학교에서 근무를 하던 중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에 대한 불만이 있거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업무가 있을 경우에는 선생님들과 의논하여 부장님,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눈치를 보고 계시는 것이었다. ‘왜? 왜 눈치를 보시지? 뭐가 문제이지? 함께 건의를 하면, 함께 행동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뜨거운 여름이 가고 9월이 되니, 선생님들께서는 삼삼오오 모여 교원평가, 재임용, 업무분장에 대한 이야기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계셨다. 많은 불평 불만들이 있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으며, 충격적인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어도 교사가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국공립학교에서 온 선생님, 사립학교에서 온 선생님, 사립학교를 그만두고 온 선생님, 현지에서 채용이 된 선생님,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가 채용된 선생님 등이 계셨다. 그리고 이 학교에 온 이유와 목적도 너무나 다양했다.


  이런 각기 다른 목적과 이해관계로 인해 갑과 을의 관계는 늘상 존재하고, 그 관계는 유동적이다. 즉, 교사와 학교의 관계에서 갑과 을은 시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 오래 근무하고 싶은 교사와 학교 관계에서는 임용권을 가진 학교가 갑이 된다. 하지만 교사가 재임용을 원하지 않는다면 학교가 교사에게 피치 못할 업무 요구를 하더라도 교사는 거부할 수도 있다. 즉, 서로에 대한 요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권력을 잡는 쪽이 갑이 되고 반대쪽은 을이 된다. 갑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을이 되면 눈치를 살펴야 한다. 대등한 관계가 좋은 걸 알지만 현실적으로 권력의 차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누가 권력을 잡더라도 갑은 을에게 갑질(자신이 가진 주도권을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을이 되어 갑에게 아첨과 아부, 자율적 복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학년 초에 나에게 했던 질문(“선생님은 국공립학교 교사예요?”, “선생님은 2년만 여기 계실 거예요?”)의 의미를 조금은 알 거 같다. 그리고 학교일에 함께 행동하지 못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선생님들마다 처한 상황, 교육철학, 여기 온 이유 등이 다르고, 국공립학교 교사, 사립학교 교사, 기간제 교사, 현지 채용 교사, 시간 강사, 교감, 교장 등 계약 조건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똑같이 교육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권력을 통해 지배를 하고,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와야 할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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